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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글 꾸러미가 아니다

by 이소희

책을 만드는 일을 글을 모아두는 일쯤으로 생각했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듯 차곡차곡 쌓아두면 책이 되는 줄 알았다. 실제로 첫 전자책은 그렇게 엮어냈다. 막상 내놓고 보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콘셉트가 부족해 보였다. 책은 처음부터 주제와 구성을 설계하고 글을 써야 하는 거라는 걸 후에 알게 되었다.

그러나 책을 기획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글은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책은 처음부터 주제와 흐름을 잡아야 한다. 여행을 갈 때도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지도를 펼치고 여행 경로, 숙소, 필요한 짐까지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책을 내는 일도 이런 준비가 없다면 나오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책이 완성되기까지는 크게 기획, 집필, 퇴고라는 세 단계를 거쳐 구체화된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건 기획이다. 기획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나머지가 집필과 퇴고로 이어진다. 비율은 달라질 수 있지만, 어느 과정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글을 쓰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앞뒤 과정 역시 가볍지 않다. 그 뒤에는 편집과 교정, 디자인을 거쳐 책의 형태를 갖추고, 제작과 출간 과정을 통해 비로소 실물이 만들어진다. 보통 한 권의 책이 기획에서 출간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6개월, 길면 1년이다. 독자 입장에서 몰랐던 일이지만,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시간과 노력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거친 책조차 출간 후 3개월이 가장 중요하다. 이 짧은 골든타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책의 운명이 달라진다.

나 역시 『슬니멀라이프』를 준비하며 이런 과정을 하나하나 거쳤다. 먼저 서점에 들러 ‘미니멀리즘’, ‘정리’, ‘심플 라이프’ 같은 키워드의 책들을 훑어보았다. 그런데 살펴볼수록,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은 단순히 ‘물건 줄이는 법’에 머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기존 책들은 대체로 정리 기술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내가 내고 싶은 건 삶의 태도 변화와 회복의 과정이었다.


온라인 플랫폼 조사도 꼼꼼히 했다. SNS에서 #미니멀리즘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주 독자는 30~40대 살림살이를 꾸려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실천 후기를 공유하는 글이 절반 이상이었다.

그런데 나는 독자 타깃을 조금 다르게 잡고 싶었다. 정신없이 직장생활을 하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한 사람들, 특히 오랫동안 일하며 쌓아온 물건들이 어느새 마음의 짐이 되어버린 이들을 떠올렸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단순한 ‘버리기’가 아니라, 스스로를 회복하는 삶의 태도였다. 그래서 내 책의 초점도 ‘마음을 가볍게 하는 변화’에 두기로 했다.

이후에는 독자 타깃을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야 했다. “이 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어조와 사례가 일관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가상의 독자, 이른바 ‘페르소나’를 설정했다. 이름과 직업, 나이와 고민까지 구체화된 독자를 떠올려야 글이 흔들리지 않는다. 내 머릿속의 독자는 퇴직을 앞둔 55세 직장인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치열하게 일하며 가족을 책임졌지만, 서류와 물건들로 가득 찬 서재 앞에서 막막함을 느낀다.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 하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미루고 있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건네듯 글을 써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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