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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순이, 100일 책 출간 도전기

by 이소희

약삭빠르진 못해도 버티는 건 자신 있다. 단군신화 속 곰이 사람이 되기 위해 100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으며 동굴에서 지냈다면, 나도 그 끈기를 빌려 100일 동안 글을 써보기로 했다. 동굴 대신 책상 앞에서, 쑥과 마늘 대신 키보드와 원고를 곁에 두고 말이다. 습관 형성에는 개인차가 있지만 평균 66일 정도 걸린다는 연구를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100일 정도 글을 쓴다면, 글쓰기가 내 삶에 단단히 자리 잡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지난 3월, 모 대학교에서 ‘내 이름으로 책 한 권 쓰기’ 강좌가 개설되었다. 12주 동안 원고를 쓰고, 직접 출간까지 해보는 강의였다. 내 계획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고, 게다가 책 출간 과정까지 배울 수 있어 주저 없이 신청했다.


사실 내가 원했던 건 ‘매일 글을 쓰는 나’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매일 3시간 글쓰기를 목표로 삼고 시작했다. 어떤 날은 3시간을 넘기기도 했고, 일이 생겨 3시간을 다 채우지 못한 날도 있었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을 썼다.


수업 중에 만난 한 분이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미라클 모닝’으로 자서전을 썼다고 했다. 그녀는 흐뭇한 미소를 띠며 자신이 만든 책을 보여주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일어나 삶을 되돌아보며 사부작사부작 써 내려간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꾸준함과 집중력에 존경심이 일어 미라클 모닝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도전 첫날,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온라인 화면에는 백여 개의 작은 창이 켜져 있었다. 누군가는 펜을 움직이고 있었고, 누군가는 책장을 넘기며 각자의 새벽을 채우고 있었다. 모두가 잠든 줄 알았던 시간에 분주한 세계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나도 그 대열에 섞여 ‘새벽 곰’이 되어 보기로했다. 하루를 길게 사는 것 같아 뿌듯했다.


하지만 그 뿌듯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늦게까지 깨어 있는 습관이 전혀 바뀌지 않은 채 억지로 새벽에 일어나니, 하루 종일 영혼이 반쯤 빠져나간 사람처럼 멍했다. 머리 속은 뿌옇고 몸은 축 늘어져 도무지 집중되지 않았다. 그렇게 버티기를 일주일쯤 했을까. 어느새 알람을 끄고 다시 눕는 날이 늘어나더니, 미라클 모닝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세상의 모든 아침형 인간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지만, 내게는 ‘미라클’이 아니라 그저 ‘미스매치 모닝’ 일뿐이었다.


나는 다시 내 방식으로 돌아갔다. 억지로 새벽을 깨우기보다, 내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 책상 앞에 앉기로 했다. 가끔 하루쯤은 그냥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꾀가 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글은 엉덩이 힘으로 쓴다”라는 작가들의 말을 떠올리며 버텼다.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수행이었다. 글은 많이 못써도 수행은 했으니 남는 게 있지 않겠나 하는 마음으로 버텼다. 20여 일이 지나니 저항감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나면 자연스럽게 책상에 앉게 되었다.


40일쯤 되었을 땐 글쓰기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카페든 지하철이든, 심지어 친구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노트북을 열었다. 예전에는 글쓰기 전 커피를 내리고 음악을 고르는 의식 같은 준비가 필요했지만, 이제는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일상 대화 중에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메모해 두는 습관도 생겼다.


프랑스계 미국인 작가 아나이스 닌(Anaïs Nin, 1903~1977)은 “우리는 인생을 두 번 맛보기 위해 글을 쓴다. 한 번은 그 순간에, 또 한 번은 되새김 속에서”라고 말했다. 나도 그 말에 공감한다. 일상을 들여다보고 기록하는 일, 그 과정은 두 배의 삶을 사는 것 같았다. 글을 쓰며 그저 푸르기만 숲에 풀벌레의 날갯짓과 바위틈에 이끼라는 생명이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100일이 지나고, 나는 기획부터 집필, 퇴고, 출판까지 직접 해내며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단순히 원고만 쓴 게 아니라, 출판사 등록과 ISBN 발급, 서점 유통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해냈다. 쉽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저자’를 넘어 책의 전 과정을 책임지는 ‘출판인’이 되었다.


그렇게 완성된 책이 바로 『슬니멀라이프』다. 100일 전만 해도 책상 앞에 앉는 것조차 버거웠던 내가, 이제는 글을 쓰지 않으면 어색한 사람이 되었다. 어쩜 작가란 번뜩이는 영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오늘도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슬니멀라이프』를 쓰며 얻은 배움과 경험을 이제 차근차근 풀어놓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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