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를 다 짜놓고 나면, 눈앞에 제목들이 벅차게 느껴진다. ‘이걸 언제 다 채우지?’ 하는 걱정이 된다. 이럴 땐 완성된 글을 한 번에 쓰려 애쓰기보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두는 편이 낫다. 집을 지을 때 뼈대를 먼저 세우고, 그 안을 채울 재료를 준비하듯이 말이다.
가장 먼저 할 일은 각 장의 핵심 질문을 잡는 것이다. “이 장에서 꼭 전하고 싶은 건 뭘까?” “독자가 이 부분을 읽고 어떤 걸 가져가길 바랄까?” 나아가 '독자가 이 챕터를 덮을 때, 머릿속에 어떤 하나의 키워드가 떠오르게 할까?' 하고 독자의 경험을 미리 그려보는 것이다. 이런 질문이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된다. 나침반이 없으면 자료를 마구 모으다가 하루가 훌쩍 지나가지만, 질문이 있으면 필요 없는 건 쉽게 걸러낼 수 있다.
자료를 고를 때는 양보다 쓸모가 중요하다. 마구잡이로 쌓아두기보다는 “지금 이 챕터에 꼭 필요한가?”라는 기준으로 살펴보는 게 좋다. 나는 글을 쓸 때는 챕터별 폴더를 만들어 이미지, 인용문, 기사 링크 같은 것들을 담아둔다. 냉장고에 재료가 가지런히 들어 있으면 괜히 든든해지듯, 글 재료가 모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리고 바로 본문을 쓰기보다, ‘재료 박스’를 채운다는 마음으로 접근해 보자. 각 제목 밑에 핵심 문장 한 줄, 참고할 만한 글귀, 떠오른 아이디어 같은 것을 (때로는 그저 두서없는 키워드만으로도) 적어두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일단 뱉어내는 게 중요해!'라는 마음으로. 문장이 다듬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이렇게 모아둔 조각들이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이어져 문단이 되고, 문단들이 모이면 한 장이 된다.
글이 어느 정도 쌓이기 시작하면 ‘느슨한 계획표’를 세워보는 것도 좋다. “이번 주에는 2장, 다음 주에는 3장” 같은 작은 목표 말이다. 이때 중요한 건 '완벽히 끝내겠다'는 부담이 아니라, '이만큼은 해보겠다'는 의지다. 꼭 지키지 못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정해둔 목표 하나를 마침표 찍듯 완료하는 경험은, 다음 챕터로 나아갈 힘이 된다. 지금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표시판 같은 역할만 해도 충분하다.
물론 쓰다 보면 중간에 막히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땐 과감히 다른 챕터로 건너뛰어보자. 지금 당장은 막히더라도, 다음 부분을 쓰다 보면 의외로 앞의 막힘이 풀리기도 한다.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숙성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글은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써야 하는 게 아니다. 책은 작은 조각들이 모여 완성되는 것이니까, 마음 가는 대로 써 내려가도 괜찮다.
다시 돌아왔을 때, “이 장의 목적은 무엇이었지?” “이 문단에서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뭘까?” 같은 질문을 던져보자. 나침반을 다시 확인하듯, 글의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준비가 단단할수록 책 쓰기가 쉬워진다. 자료와 구조, 메모와 방향. 이 모든 예열 과정이 있어야 글이 비로소 힘을 얻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한 장에서 막히면 멈춰 서는 대신 다른 장으로 건너뛰어 다시 흘러가게 만드는 일이다. 완벽한 문장을 처음부터 써야 한다는 부담은 내려두자. 지금은 그저 작은 재료들을 모아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