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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 윤 Aug 13. 2022

몽상이 데려다주는 강가

루소,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읽다 잠든 지 며칠째다. 꿈속에서 루소와 만나 메닐 몽탕 마을의 언덕을 내려오기도 하고, 어느 날은 그에게서 로지에 신부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성난 군중이 던지는 돌에 언제 맞아 죽을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 다시 모티에를 떠나, 영국으로 피신하라는 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성 베드로 섬에서 식물 채집과 몽상에 잠겨 지내는 루소와 실개천가를 거닐기도 했다. 그러다 잠이 깨었다.      


그의 인생은 험난한 폭풍 그 자체였다. 정해진 역사를 거스르는 사람들의 길, 한 세기를 짊어진 사람들의 길이 그랬던 것처럼. 그 폭풍우의 시작은 <인간 불평등 기원론>, <사회계약론>과 <에밀>에서였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과 <사회계약론>은 사회의 근간을 흔들었고, 에밀에 삽입된 <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고백>은 많은 철학자들을 비롯, 기독교인들을 격앙시켰다. 국회는 저서의 발행을 금지하고 루소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소르본느 대학은 대학대로 <에밀을 준엄하게 비판함>이라는 글을 발간하여 루소를 전방위로 공격하기 시작했고, 교회는 교회대로 주교의 교서를 발간하여 규탄했다. 그에 대한 증오심은 기득권층에게만 국한되지 않았고 결국은 전염병처럼 세상 전체로 확산되어 갔다. 실로 그들 사이의 '동맹은 총체적이고 영구적'으로 느껴졌을 정도였다고 한다. 루소는 자신이 세상에서 혐오스럽고 추악한 괴물로 간주되며 몸부림치면 칠수록 뻘에 자신의 몸이 더 깊이 빠져들 뿐임을 깨닫는다. 마지막 배수진 속에서 세상을 향해 말의 포탄을 날린 것이 <고백> , <루소-장 자크를 심판하다-대화>. 그리고 말년에 자신의 생을 마감하기 전에 써내려 간 것이 바로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은 열 번째의 산책까지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산책은 완성되지 못했다. 읽다 보면 첫 번의 산책에서 마지막 산책까지의 시간이 선조적으로 읽힌다. 그 산책을 통해 또다시 영혼의 성장과 성숙을 거듭해가는 루소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순서대로 읽었고, 이제는 읽고 싶은 산책 부분은 찾아가서 읽곤 하는데 그때마다 다른 울림을 주는 것도 매력인 것 같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세상을 살았고, 그래서 내쫓겼고, 부서졌고, 돌을 맞아야 했고, 가혹한 운명에 시달려야 했던 사람이 끝내 이른 내면의 평화란,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대충 꿰매어 버린 봉합이나 거짓 화해와는 달라 보인다. 내면의 피할 수 없는 고투와 세상에 대한 피해의식, 의심, 그러면서 소소한 것에 열정과 호기심을 갖는 루소의 존재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서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두 번째 산책과 다섯 번째 산책 부분이다. 두 번째 산책. 메닐 몽탕의 언덕을 내려오다 큰 개에 부딪혀 심하게 다친 날이다. 너무도 격렬하게 엎어지는 바람에 그는 의식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깨어난 순간 그가 느낀 것은 통증도 두려움도 불안도 아니었다. 첫 지각의 순간은 감미로웠고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몇 개의 별과 초록빛이 도는 하늘이었다. 그는 시냇물이 흐르듯 그의 몸에 피가 흐르고 있음을 느끼고 전존재에서 어떤 황홀한 평온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후 그것을 기억할 때마다 자신이 느낀 모든 쾌락의 행위 가운데 그것과 비교될 만한 것은 결코 발견하지 못했다고도 덧붙인다. 집에 돌아와서 그는 자신의 부상이 심각함을 타인을 통해 깨닫게 되고, 며칠이 지나며 자신의 사고에 대한 이웃과 기관들의 태도들을 읽어내게 된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경찰청장이 근황을 궁금해하고, 사고로 혹시 사망할 경우 집에서 발견될 원고들에 대해 출판 구독 신청 접수를 출판사들이 다투어 시작했다는 사실들이다. 그 과정에서 루소는 개인과 개인에 대한 평판의 운명은 현재의 모든 세대가 공모하여 이루어놓은 것이기에 자신이 어떤 노력을 기울인다 한들 그 운명에서 피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것은 가혹함과 고통스러움을 느끼게 하지만 또 다른 위안과 평온, 체념을 도와주기도 했다. 루소는 신은 정의로우며 신은 자신이 인내하기를 원하며 이 세기가 아니라도 언젠가는 모든 것이 질서를 찾을 것이며, 머잖아 자신의 차례가 오리라는 생각을 한다.     

 

다섯 번째 산책에서 루소는 성 베드로 섬에서 보낸 두 달여의 시간을 이야기한다. 책  에밀과 사회계약론이 던진 파문으로 피신하여 1762년부터 스위스에 머물게 되는데 모리에의 투석 사건이 있은 후 루소가 숨어든 곳이 바로 성 베드로 섬이었다. 징세관 부부와 하인들 말고는 다른 교제도 없었고 다만 아내와 함께 지낸 시간이 전부였다.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채 세간살이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급박하게 떠밀려온 곳이었다. 내일 새벽이라도 당장 떠나야 할지 모르는 위태로운 나날이었다. 그러나 그 섬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불안에 떨며 지내는 것이 아니라 한가로움에 탐닉하며 소일하는 것이었다. 책을 풀 수도 없었고 자신의 책상조차도 마련되지 않았던 곳에서 그는 우중충한 종이와 헌책들에서 벗어나 그는 섬 식물지를 만들며 체류기간을 보내게 된다.  클로버와 잠두 등으로 덮인 작은 모래언덕 꼭대기를 오르거나 온갖 종류의 관목 사이로 칩거하는 듯한 산책을 하면서 아르고의 선장 이아손보다 자신이 더 흥분되었을 거라고도 말한다. 어느 날은 호숫가 은밀한 은거지의 조약돌 밭에서 물의 출렁임을 오감을 집중해서 바라보며 달콤한 몽상 속으로 빠져들기도 했다. 생각해야 하는 수고 없이 즐겁게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온갖 세상사의 불안정에 대한 성찰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긴 인생의 파고 속에 강렬한 쾌락과 달콤한 즐거움을 준 시기가 언제나 가장 매력적이거나 큰 감동을 준 시기로 기억되는 것은 아니며, 우리 마음이 그리워하는 행복은 결코 일시적인 순간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강렬한 것은 없지만 그 지속이 마침내 지극한 행복을 느낄 만큼 도취되게 해주는 소박하고 영구적인 상태임을 깨닫는다.     

 

그가 다 쓰지 못한 열 번째 산책... 어느 꿈에서 다시 루소를 만나 산책을 완성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것은 몽상에 잠겨서만 가능한 일일 터.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행복은 우리가 인생의 쾌락 가운데 느끼는 것과 같은 불완전하고 가변적인 것이 아니라, 채워야 할 어떤 공허함도 영혼도 남겨두지 않는 만족스럽고 완전하며 충만한 행복이다. 그것은 바로 성 베드로 섬에서 물결 따라 흐르도록 내버려 두었던 돛배에 누워서, 파도치는 호숫가에 앉아서, 아름다운 시냇가나 자갈 위로 졸졸졸 흐르는 실개천 가에 앉아서 고독한 몽상에 잠긴 내가 자주 빠져들곤 하던 상태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즐길까? 결코 자기 밖의 것이 아님을 안다. 오직 자기 자신과 자신의 존재만을 즐긴다. 불행하게도 상상력이 쇠퇴해감에 따라 그러한 경험은 갈수록 쉽지 않으며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다. 슬픈 일이지만, 상상력이 가장 무디어지는 것은, 그래서 더 이상 몽상에 잠길 수 없는 순간이 바로 그 인간이 죽어가기 시작하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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