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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 윤 Aug 18. 2022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마음에 혼돈을 품어야 한다

니체와 도스토에프스키

가끔 손님처럼 찾아오는 병을 앓다 보면 병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픈 동안은 기름진 것을 끊고 절제된 생활을 하고, 억지로 일을 내려놓고 쉬게 됩니다. 통증은 고통스럽지만 그동안의 건강이 얼마나 행운이고 감사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조지훈 시인은 병을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좋은 친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출구가 없는 질병이면 다른 문제가 됩니다.  1868년 니체는 군대에서 낙마 사고로 크게 다칩니다. 이후 스위스 바젤대에서 고전문헌학 교수로 재임할 적에도 편두통과 안질로 고생하고요. 완전히 실명할 거라는 진단을 받고 늘 뿌옇게 만든 안경을 쓰고 다니며 시력이 사라진 때에 익숙해지려 연습했습니다. 1889년 1월 3일 이탈리아 토리노의 카를로 알레르토 광장에서 난폭한 마부가 지친 말을 매질하는 것을 보고 말에게 달려가 키스하며 통곡하다 졸도하죠. 마침 그 자리에 니체를 아는 다비데 피노가 있어 그를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이건 <토리노의 말>이라는 영화에 나와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집으로 옮겨진 후 깨어나지만 그 후 광증이 발작, 10년간 정신병을 앓다 1900년 8월 25일 바이마르에서 사망합니다.  토리노의 발작 후 8일간 그를 관찰한 의사는 니체의 증상을 매독 말기에 나타나는 진행성 마비로 진단 내립니다.


니체의 오랜 병과 죽음의 근본 원인은 이렇듯 매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천재들의 질병'이라고 할 정도로 근대의 많은 천재들의 죽음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뇌연화증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에 뇌질환이 유전이 아닐까, 군대에서의 낙마가 뇌질환과 안질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매독의 증상과 니체의 병력이 정확히 일치하는군요. 니체가 앓았던 극심한 시력 장애, 격렬한 두통, 주기적 쇠약 그리고 이후 정신이상, 전신마비 등은 매독의 합병증이라 합니다. 매독은 1, 2기가 지나면 그 균이 중추신경계, 눈, 심장, 뼈, 관절까지도 침범하게 됩니다. 베토벤이 귀가 먹은 것, 슈만이 천사가 음악을 들려주는 환상을 본 것도 모두 매독으로 인한 합병증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데버러 헤이든, <매독> 참조)  우리나라 20-30년대 작가들 중에도 폐질환을 앓다가 최후 사인은 뇌매독인 경우가 있기도 하지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오면서 그 대가로 유럽에 퍼졌다고 보는데 그 후 4-5년 만에 전 유럽을 강타했고 500년 동안 유럽 인구의 15%가 이 병으로 사망합니다. 매독을 다스린 것은 페니실린인데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은 1928년, 의료용으로 정제되어 치료제로 활용된 것은 40년대에야 가능해집니다. 1900년 8월 25일 니체가 영면했으니 니체 사후로도 한참 후의 일이군요.


질병이 삶의 질곡이 된 작가들은 많습니다. 분열증으로 고통받다 우즈강에 투신자살한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읽으면서 탄식하는 것은 20세기 초반을 살았던 작가가 어떤 현대 작가보다 현대적이라는 점입니다. 그녀는 현대적인 의식의 흐름 기법을 적실하게 보여주는데 그것은 작가에 의해 의도되고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손을 떠나 우리 정신의 실질적 지리멸렬함 그 자체라는 생각을 줍니다. 그러면서 문득 그녀가 앓고 있구나, 앓으면서 그 아픈 영혼의 부리로 지상에 무언가를 새기고 있구나를 알아차리고 울컥해집니다. 알렉산더 포프는 키 140센티미터로 평생 꼽추에 다리를 절고 만성적인 폐질환을 앓았지만 탁월한 문학적 재능을 바탕으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오디세이>를 완역해서 최고의 명성을 얻게 됩니다. 희랍어를 몰랐던 그가 일리어드와 오디세이 번역을 위해 통째로 희랍어를 배우고 그 어려운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완역해 낸 것을 보면 그의 투지와 역량을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질병은 천형이지만 한편으로는 위대한 자취를 남기게 하는 동력이기도 합니다. 니체는 질병과 광기가 인간의 마음을 새로운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루비콘강에 데려다 놓을 수 있다고 믿었고,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인간은 먼저 마음에 혼돈을 품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절망적이네. 고통이 내 삶과 의지를 집어삼키고 있어'라고 부르짖다가도 '고통의 깊이가 깊을수록 생각도 깊어져 그전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생각들이 떠오른다'라고 오버베크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평생 뇌전증으로 고통받았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측두엽 간질 발작 환자들의 초기 전구증상인 다양한 정서적 체험을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작품 백치에는 뇌전증 발작의 순간을 "지혜와 정서는 더없이 밝은 빛으로 빛나고 온갖 의혹과 모든 불안은 조화를 이룬 환희와 희망에 넘치는 신성한 평온 속에 한꺼번에 용해되어 버린다. 그러나 이 눈부신 광휘는 발작이 일어나기 직전의 1초 동안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묘사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의 질병이 그의 창작활동에 큰 영감을 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런 경우를 보면 질병이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개인의 삶으로는 얼마나 불운했을까 생각이 듭니다. 고락상평이 인생의 진리이고, 병과 건강이 서로를 껴안고 있는 것이라 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삶이 건강하고 즐거움 쪽에 더 기울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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