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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정 Aug 13. 2022

사람은 아무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로뎀나무가 필요한 순간

     

“사람은 아무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이다;

흙 한 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가면, 유럽은 그만큼 작아진다.

그건 곶이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이고, 네 친구의 영지나 너 자신의 영지가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이다.

누구의 죽음이든 그것은 나를 줄어들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해서 저 종이 울리는지 알아보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그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 – 존 던


시골에서 여자중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상급학교로 진학했다. 친한 친구들이 여상으로, 여고로, 타 지역으로 흩어졌다. 그녀는 공부를 아주 잘했지만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산업체 특별학교에 진학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학교를 다녔다. 고교 진학 이후 길은 달라졌지만 서신 왕래는 계속되었다. 그건 순전히 그녀의 성의에 힘입은 바였다. 그녀는 새로운 상황에 힘겨운 듯했으나 꿈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대학에 진학한 후 나는 그녀와의 소통에 흥미를 잃어 갔다. 띄엄띄엄 편지가 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편지는 달라져 갔다. 글은 잘 이어지지 않고 횡설수설이었고, 글씨는 그녀의 것이 아닌 듯했다. 붉은색 펜으로 휘갈겨 써서 알아볼 수 없는 날도 있었다. 그때 내가 조금이라도 다감했더라면 균열들을 감지해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럴 깜냥이 못되었다. 그리고 설령 알았다고 한들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시간이 한참 지난 후 병이 깊어져 집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곧 정신병원에서 장기 입원하다가 어느 먼 곳의 요양병원으로 옮겨진 후 소식이 끊겼다.


보스니아 여성들을 생각했다. 그녀들은 보스니아 세르비아 내전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가해자들은 전쟁범죄의 이유로 헤이그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처벌을 받은 사람은 몇몇에 지나지 않았다. 전쟁범죄의 특성상 증거가 부족하고 피해자들이 보복을 우려해 증언을 기피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고통은 엄청났다. 학살로 인한 트라우마는 성장이 멈추거나 느려지는 등의 외상으로 나타나는데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잠재된 정신적 상처였다. 심리학자들, 목회상담학자들, 여성학자들이 상처받은 보스니아 여성들을 찾아갔다. 그러나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 깊은 트라우마가 실어증으로 나타난 것이다. 무력한 상태에서 시간이 지나갔다. 심리학자와 여성학자들은 로뎀나무라는 공간을 만들어 놓고 그러한 공간이 있다는 것만을 알려 주었다. 그곳은 통곡할 수 있는 나무였다. 처음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그녀들이 한둘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벙어리처럼 낮은 목소리로 울었다. 그러다 곧 절규가 터져 나왔다. 그녀들의 통곡은 빛도 없는 암흑 속에서 오랜 밤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다. 조금씩 말문이 트여갔다. 절망이 희망의 서사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내면의 트라우마를 바깥으로 끌어내어 표출하는 것. 거기서부터 가능한 기적이었다.


그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자신의 세계로 잠겨 들어 어떤 소통도 할 수 없었다. 다만 그녀에게도 그런 로뎀나무가 있었으면 달라질 수 있었을까 질문을 던져본다.  어렸을 적 손수건 돌리기나 의자 뺏기 게임을 했었다. 누구든지 술래가 될 수 있었다. 불행도 환란도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도 로뎀나무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리고 로뎀나무는 옆에 서서 연대의 손길을 거두지 않는 우리 자신이어야 할지도 모른다. 누구의 불행이든 그것은 우리의 존재를 줄어들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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