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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정 Jul 25. 2022

비목처럼 그렇게 당신을 향해

고달사지 가는 길

  

지난 일요일 여주 답사를 다녀왔어요. 당신도 아시겠지요. 제가 신륵사에서 전화를 드렸지요. 햇살이 지고 있다고. 이대로 가면 고달사지의 황혼을   있을 거라고. 당신과 함께  모든 것을 나눌  없어 안타깝다고. 그렇게 메시지를 남겼지요. 일행들은 모두들 재미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저는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었어요. 당신 때문입니다. 희미하고 쓸쓸한 불빛 저편에 있던 당신 모습이  마음에 젖어 있습니다.


 신륵사를 향해 한참을 걸으니 일주문이 보입니다. 열대지방에서 베어 온 듯한 큰 나무 기둥은 우리나라 소박한 절집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다만 절집 앞에 이렇게 큰 강이 있다는 것, 그리고  강줄기 위로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 조포 나루터가 있어서 강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암벽에 가려 절이 보이지 않으니까 다층전탑만 보고 벽절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는 인상적입니다. 신륵사의 은행나무 이야기는 언젠가 당신이 들려주었지요. 은행잎이 노랗게 날리고 하얀 백사장에 강물이 여울질 때 그때 제가 당신과 이 나루터에 다시 서 있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내 마음속에만 있는 당신, 당신을 꺼내어 언제나 볼을 비빌 수 있을지요.


 적묵당을 지나 명부전으로 갑니다. 지장보살을 모시고 양 옆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서 있습니다. 사후세계를 주관하는 시왕들이 엄숙한 눈길로 저를 바라봅니다. 염라대왕은 면류관을 쓰고 업경대를 앞에 두고 앉아 있습니다. 그 업경대에 제 얼굴을 비춰보고 싶습니다. 문 좌우에는 일직사자와 월직사자가 부월을 들고 시왕의 명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편하고 아늑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왠지 두려워집니다. 극락보전에는 아미타 삼존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발을 돋워 풍경을 건드려 봅니다. 명징한 소리가 가슴으로 번져 옵니다. 깨어진 기와를 이용해 만들었다는 굴뚝에선 아직도 온기가 느껴질 것만 같습니다. 언덕을 약간 올라가 보제존자 석종비와 석등을 구경합니다. 석등의 모습은 정말 화려했습니다. 납석을 이용해 비천상과 용무늬를 새겼는데 난숙기에 오른 장인이 한껏 그 재주를 뽐낸 듯합니다. 소슬한 달빛을 받으며 석등을 조각하고 있을 장인의 모습을 한참이나 상상해 보았습니다.


 다층전답을 구경한  강월헌에 앉아 여강을 바라봅니다. 여강에 살았다는 비목, 외눈박이 물고기를 아시는지요?  물고기는 두눈박이처럼 살자고 암수가 항상 서로 붙어 다닌다는 전설상의 물고기랍니다. 최근의 우리는  떨어져 비목처럼 걸어본 적이 없었던  같아 갑자기 옆구리가 서늘해 옵니다. 비목처럼 당신과 그렇게 다정하게 걷고 싶습니다. 언제나 서로에게 스며들며 살자고 하던 당신.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서로의 눈이 되어 세상의 물길을 넘나들던 시간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당신을 밀치고 어깨를 좁히며 홀로 걷기를 좋아했습니다. 미간을 좁히고 삶은 함께   없는  여정일 뿐이라고 중얼거렸지요.  


  고달사지 가는 . 서서히 사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황혼에 젖은 절터를   있겠다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러나 고달사지로 가는 길은 너무 멀고 고달팠습니다. 가족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불사에 혼을 바쳐 고달사를 조성했다는 석공 고달의 정신에 닿기 위해선  정도의 고달픔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즈음 주위는 어느새 깜깜해지고 지척을 분간할  없는 막막한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달사지에 도착했습니다. 어두운 숲길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참으로 오랜만에 어둠이 주는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인적이 드문 숲길, 천지사방으로 높게 둘러쳐진 , 이곳이 폐사지라는 생각은 아직 춥지 않은 계절임에도 한기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무언가 숲의 정령이  손목을 낚아챌 것만 같아 몸이 후들거렸습니다.


  처음 우리 일행 앞에 다가온 것은 석불 대좌였습니다. 소지한 전등 불빛으로 비추어 보았는데 상중하 지대석을 갖춘 높이 1.5미터의 큰 대좌였습니다. 대좌의 크기로 보아 그 위에는 굉장히 크고 웅장한 장육불상이 높여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덧 불상은 사라져 버려서 저는 제 마음의 불상 하나를 옮겨 세워 봅니다. 어두운 산길을 재촉해 올라가다 드디어 고달사지 부도를 만납니다. 아 이 아름다움을 말로 표현해야 하다니요. 지극한 아름다움은 언어를 넘어섭니다. 어둠과 침묵이 주는 느낌 때문에 더욱 강렬한 아름다움을 느꼈던 것도 같습니다. 온몸을 떨면서 부도를 탑돌이 합니다. 이 부도는 어느 스님의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규모로 보아 매우 뛰어난 공력의 스님을 모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단부, 탑신부, 지붕돌을 모두 갖춘 팔각 원당형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중대석의 몸둘레에는 거북과 네 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습니다. 불빛 속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용은 금방이라도 땅을 박차고 승천할 듯 역동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팔각 몸돌에는 자물통이 달린 문짝과 창살문, 사천왕이 번갈아 조각되어 있습니다. 스님이 남기신 흔적을 아주 소중하게 보관한다는 마음을 담아서 문짝을 만든 석공의 섬세한 마음이 놀랍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부도를 대면하고 서니 두려움이 어느새 사라집니다. 이름 모를 고승의 부도 앞에서 길게 심호흡을 합니다. 어둠과 침묵에 가득 휩싸여 저는 고달사지에 이르는 이 길이 결국은 제 마음에 닿아있는 길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저 자신을 찾아 두려움에 떨며 생의 먼 뒤안길을 돌아 또 이 어두운 밤숲을 걸어온 것이라는 깨달음. 어둠과 침묵이 아늑함으로 바뀌면서 저는 이제 당신에 대한 두려움도 떨쳐버릴 수 있어야 하고, 세상의 많은 일에 대해 어떤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비껴가지 않고 당신 앞으로 다가설 수 있는 용기. 결국은 제 자신을 외면하지 않고 상처는 상처대로 아픔은 아픔대로 현실은 현실대로 나를 직면하면서 나아갈 용기 말입니다.


  당신도 느끼시지 않으셨는지요. 어둠과 침묵의 숲 그늘에 앉아 제가 당신을 떠올릴 때 당신 가슴속에도 밝고 차가운 별 하나 떠오르고 있었을 겁니다. 그때 잠깐 제 생각하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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