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엽홍매를 찾아가는 길- 선암사
선암사에 처음 갔던 날이 생각납니다. 겹벚꽃이 막 지기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이십 대 중반이었고 공부를 중단한 것에 대한 아쉬움, 현실적 진로 등 그 나이에 갖는 고민 꾸러미들로 속을 끓이던 참이었습니다. 어느 밤 갑작스레 전라선 밤기차를 탔습니다. 예정된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밤기차는 어둠을 내쳐 달려 미명 속 순천역에 저를 내려다 주었습니다. 기차 역사에 몸을 옹송거리고 앉아 밤 열차의 노곤함에 젖어 한식경 졸았습니다. 소금 발에 젖은 듯 온몸이 무겁게 가라앉더군요. 이윽고 날이 밝았고 선암사행 버스를 탔습니다. 날은 좋았습니다. 마음의 무거움과는 아랑곳없이 선암사길에 들어서면서 햇볕 아래 박새처럼 뾰조록하게 혀를 내민 찻잎이 예뻐서 발걸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사월이지만 햇볕은 뜨거웠고 제법 더웠지요. 홍매, 백매는 이미 지고 말았겠지 생각하니 아쉬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매화와는 인연이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매화를 보겠다고 광양 매실마을에 찾아가 섬진강에서 하룻밤을 묵었던 적이 있습니다. 매화가 만개했다고 날이 밝으면 그 자태를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잠이 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새벽녘 갑작스레 비가 내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 일찍 나가보니 매화는 떨어졌고 땅에는 낙화 천지였습니다. 가지 끝 매화만이 온전한 매화는 아닐진대, 지난밤 비와 바람이 원망스럽더군요. 꽃잎 떨어진 벌판에 오도카니 앉아 어제 좀 더 서둘러 길을 나서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선암사 들어가는 길은 긴 숲길입니다. 맑게 흐르는 계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풋풋합니다. 부도밭을 지나 장승들을 만나고 조금 있으니 반달 모양의 다리가 보입니다. 승선교의 아름다움을 놓칠 수가 없어 계곡 아래로 내려가 봅니다. 승선교 뒤편으로 강선루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계곡물에 비친 다리 그림자는 어느새 온전한 보름달 모양. 선암사 대웅전도 아름답습니다. 기단은 막돌로 쌓고, 그 후에 초석을 놓아 민흘림 두리기둥을 세웠습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겹처마 팔자 지붕 집 양식이지요. 꽃에 취하기 전에 대웅전에 들어가서 삼배를 하고 탱화를 보는 일을 잊지 않으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꽃만 보다 돌아오기 일쑤랍니다.
선암사 스님들은 조경의 전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대웅전 뒤쪽은 응진전, 원통전, 각황전 영역인데 이곳에는 꽃나무들 지천입니다. 벚꽃, 목련, 모란, 앵두, 철쭉, 영산홍, 동백, 상상화, 백매, 홍매, 부용꽃, 연못에는 옥잠화까지. 겹벚꽃나무도 즐비한데 마침 바람이 불어와 눈물 나는 연분홍 꽃잎들이 흰 눈처럼 하롱하롱 흩날립니다. 한 아주머니가 나뭇가지 아래서 상기된 목소리로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아주머니의 볼에도 겹벚꽃이 내려앉아 분홍 물이 들었습니다. 태어나서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본 적이 없다는 말을 덧붙이면서요. 아주머니도 어느덧 한그루 벚꽃나무처럼 보입니다. 그 옆 스님 한분이 빙그레 웃으시며 '백매화, 홍매화 필 적에나 영산홍 필 때는 더 아름다운 걸요.'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절에서 사는 스님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미혹한 중생은 수행의 고단함은 생각지 않고 부럽기만 합니다.
선암사의 또 다른 명물은 뒷간입니다. 재래식 화장실을 그대로 살리며 살창을 두어 자연스럽게 환기가 되게 했는데 볼 일을 보며 살창 너머 숲 속 경관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것보다는 저 아득한 아래쪽을 눈여겨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참 후에나 소리가 날 정도로 깊디깊어요. 시인 정호승의 <선암사>라는 시를 떠올려 봅니다. 왜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라고 했을까요. 마음속 울음을 다 게워내고 비워내고 가는 곳이 바로 해우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며칠째 계속 선암사 생각입니다. 그 후 선암사를 여러 번 갔지만 여전히 백매, 홍매를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매화에 대한 갈급이 마음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산각도인은 앉아 있는 성질이 도무지 아닌데 매화를 얻은 후 십여 일을 문 밖 출입을 하지 않더라>는 추사의 글 때문일까요. 단엽 백매를 찾아다니다 추위 속에 복엽 홍매가 피자 그 생명력과 절조 또한 사랑할 수밖에 없다던 이태준의 수필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보니 매화는 매화만이 아닌 듯도 합니다. 간절히 바랐으나 닿지 못한 것, 매화는 늘 지금 여기의 저에게 닿을 수 없는 저만치의 거기에 있습니다.
선암사는 멀어서 한동안 가지 못할 듯합니다. 백매화, 홍매화는 아름답게 피웠다 이울겠지요. 향기는 남쪽에서 바람을 타고 북으로 밀려들겠지요. 그러면 다만 눈을 감고 내음을 맡겠습니다. 진하고 화려하지 않지만 맑고 담담하고 진실한 것이 가지는 힘을 기억하겠습니다. 박차 소리를 내며 힘차게 발을 내딛고 싶지만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입니다. 내비게이션도 없이 하루하루의 지도를 스스로 그려가야 하는 삶. 어느 날은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딘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돌부리에 걸려 좌회전, 우회전, 유턴을 반복하다 마음의 정박지마저 잃고 돌아오기도 합니다. 어느 날은 당신과의 교신이 모두 끊어진 채 황막한 우주에 홀로 떨어진 심정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은은한 매화 향기가 작은 길을 이어줍니다. 당신과 나 사이의 길을 이어줍니다. 때로는 개여울을 만나고 때로는 돌부리 사이로 숨어들지라도 내가 기억하는 향기를 따라 걸어가겠습니다. 올해도 찬바람 속에 복엽 홍매는 피어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