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팔의 기억 속으로 (2)그리고 1편 덧붙임

기억 저 편 어딘가,

by Grace k

장충동 어느 커피숖에서였다.
펜팔남을 한 번 더 만난 건.
첫 만남의 그 어색함이 호감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서울 오면 꼭 연락 주세요." 하고 당부하는 그에게 건성으로 "네, 그럴게요."라고 대답을 했다.
내 속마음은 대답과는 반대 지점에 있었다.
한편으로, 환상은 깨졌으니 다시 만나면 혹시 대화가 통할 수도…라는 미진한 기대를 가졌다.
당시 용인에 살던 사촌 언니가 첫 조카를 출산했다.
언니를 보러 상경하는 김에 펜팔남에게 연락을 취했다.
전화 너머로 반색하던 목소리가 생생히 전해졌다.

초면이 아니기에 저만치서 걸어 들어오는 실루엣을 금세 알아챘다.
이번에도 혼자가 아니었다.
곱슬하게 어깨까지 머리를 늘어뜨린 평범하지 않은 용모의 친구를 내게 소개했다.
심심하고 맥없어 보이던 펜팔남 옆이어서였을까.
이번에도 내 눈길은 같이 따라 나온 친구의 외모에 머물렀다.
"저는 음악을 하고 밴드에서 보컬을 맡고 있습니다. 혹시 시나위라고 들어보셨나요?"
"글쎄요, 알 것 같기도 하고… 음…"
"최근에 녹음을 마친 테이프를 가지고 왔는데 드릴게요, 들어보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저 음악 좋아해요."
록 음악을 한다는 그 친구는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다시 펜팔남의 존재감은 더 옅어져 갔다.
연애 경험이 없던 내게도 그때 드는 생각이 있었다.
"아니, 뭘 믿고 본인보다 훨씬 멋져 보이는 친구를 대동하고 나타나지?"
차 한 잔에 잔잔한 대화가 이어지다가 펜팔남과의 임팩트 없는 두 번째 만남도 그렇게 완전히 끝이 났다.
집에 오자마자 그 친구가 건넨 녹음테이프를 들었다.
기존 내 취향의 곡이 아니었는데도 노래들이 너무 좋았다.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
'크게 라디오를 켜고'
앞뒷면 전곡을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다.
대학 2학년쯤의 일이니 강산이 세 번 바뀌고도 남을 오래전 이야기다.


그리고 십여 년 전, 신선한 음악 프로그램이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나는 가수다'
그중에서도 가수 윤복희의 '여러분'을 소울풀하게 자기만의 해석으로 부른 임재범은 단번에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도 그 매력적인 가수의 팬이 되었다.
이력을 찾아보다가 오랜 옛 기억과 오버랩되는 부분에 '엇' 하고 시선이 멎었다.
밴드 시나위 출신, 데뷔 앨범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
"설마?"
"그 테이프 지금은 어디 있을까."
삼십 년이 훌쩍 지난 추억의 책갈피 같았던 그 테이프의 행방을 알 수는 없었다.
남들이 전혀 모를 그 데뷔곡을 나는 따라 부를 수 있다는 기억만이 실재했던 추억을 증명해 주었다.
그때 펜팔남의 친구가 '나는 가수다'의 '여러분'을 멋지게 열창한 가수였을까.
아니면 시나위를 거쳐 간 보컬 연습생이었을까.
잊고 싶지 않아서일까.
그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내 추억 회로 속에서 빛이 바래지 않은 채 머문다.
때로는 흑백에서 더 선명하게 복원된 칼라사진처럼 또렷한 그것이 되어 있다.
지난 시절을 추억하며 길어 올린 한 장의 사진.
소장하고 싶어서 앨범 한켠에 고이 간직한 이야기를, 문득 꺼내 보고 싶어진 오늘이다.


먼저 썼던 1편을 덧붙힙니다


대학 1학년 때 펜팔을 한 적이 있다.
서울 소재의 K대학 일문과 남학생이었다.
전공이 같았고, 서로 간에 글쓰기를 좋아해 꾸준히 편지쓰기를 이어갔다.
악필인 나에 비해 명조체의 글씨도 멋진 그는 펜 벗으로 딱 좋았다.
스마트폰과 LTE의 속도감이 없던 아날로그의 시대였다.
소통의 의미와 기다림의 설레임을 동시에 충족시켜 주는 수단은 편지가 적격이었다.
그렇게 삼개월 정도 지난 시점, 그 펜팔남이 내가 살던 도시를 방문한다는 연락이 왔다.
먼저 든 생각은 "왜?" 였다.
글쓰기 벗으로 우정을 나누어 좋은데 그 환상이 깨지는 게 싫었다.
배우 송승환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닮은 나긋한 서울말도 듣기 좋았다.
글은 유려했기에 내 머릿속 이미지는 '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 쯤에 머물러 있었다.
그 환상을 깨고 싶지 않은 맘이 컸다.
그래도 학교 앞 카페까지 입성해서 기다린다는 펜팔남을 마지못해 만나러 갔다.
펜팔남으로 추정되는 이와 친구로 보이는 이가 함께 앉아 있는 곳으로 조심히 걸어갔다.
얼굴도 못 들고 소심히 있는 이는, 내가 아니길 은근히 바랬던 펜팔남이었다.
본인도 차마 그 자리의 어색함이 두려웠던가 보다.
얼핏 노홍철만큼이나 자유분방해 보이던 친구를 대동하고 와 있었다.
"하... 그럴 것 같으면 왜 만나자고 했냐고, 이 감동 파괴남 같으니라고."
쭈뼛거리며 있는 펜팔남을 옆에 두고, 사진을 전공한다는 친구와 주로 대화를 이어갔다.
어떤 특별한 재미도 기억도 나누지 못한 펜팔남과의 서신교환은 이후 식은 커피 같아졌다.
씁쓸하고 김 빠진 모양새로 몇 차례 더 드문드문 편지를 이어갔다.

서울에서 한 번의 만남이 더 있었는데,

2편으로 먼저 적어 발행했던 위의 에피소드이다.
그러다가 '유학이랬나' 뭐 그런 석연치 않은 핑계로 펜팔은 멀어지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끝낼수 있어서 안도했다.
눈치 없는 펜팔남도 내 속을 읽다가 내린 결정이었을 것 같았다.
편지를 이어가다 만난 상대가 로맨스로 발전하는 그런 핑크빛 사연은 없었다.
흑역사 같은 빛바랜 추억 이야기 한 편이다.

그 펜팔남은 지금은 눈치와 숫기를 챙긴 글 잘 쓰는 중년이 되었을까.
그랬더라도 진심 추억 속의 인물은 그 기억으로만 남기를 원한다.
그래야 조금은 더 아름다운 채색을 띌 테니까.

진한 설렁탕에 소금 후추가 빠진듯한
이야기는 싱겁게 끝이났다.
2편에서 나온 음악하는 멋진 친구의
락음악만이 귓전에 남아있다.
크게! 라디오를 켜고!!
그대앞에~난, 촛불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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