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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름다운 시절-2

친구여! 잘 가게.

by 정달용

[아름다운 시절-2]


시골의 어느 해 여름 저녁 어둠이 밀려오자 무더위가 힘이 부쳐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피부를 스칠 때 나는 저녁을 먹고 근열 친구집에 마실을 갔다.

그와 사랑방에서 책은 펴고 공부를 하던 참에 밤은 깊고 따분함이 밀려온다. 때 맞춰 뱃속이 출출해진다.


얘기 끝에 국동 고개 넘어가는 산 옆 밭에 수박을 심어 놨는데 제법 큰 것도 있더란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배가 더 고파진다.

달친회의 하루

우리 둘은 살며시 사립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수박밭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칠흑 같은 시골의 그믐밤, 어둠은 눈을 뜨고 있었으나 눈을 감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주변의 검은 것은 칠흑의 어둠과 발 옆의 풀이요, 희미하게 보일 듯 말듯한 것은 사람의 발길에 풀이 죽고 맨 바닥이 드러난 길이라. 조심스럽게 삼반의 몇 가구가 있는 인가의 곁을 지나 한 사람만이 갈 수 있는 외줄기 산 길, 보일 듯 말 듯 희무끄럼한 무언가에 감으로만 울퉁불퉁 구불구불한 산길로 조심조심 숨을 죽이고 얼마를 가자 곁에 밭이 있다는 느낌을 감으로 알 수 있었다.

둔덕을 따라 이리저리 줄기가 뻗어있는 수박 줄기와 잎사귀를 소경처럼 더듬더듬 손을 놀리다 보면 둥그런 수박이 손에 닿았다, 그중에서 제법 큰 놈을 찾아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두드려봤다. 제법 맑고 둔탁한 소리가 난다. 잘 익었을 것이다. 우리 둘은 그렇게 큰 놈을 골라 각자 두 손으로 하나씩 가슴에 안고 조심조심 오던 길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혹시 발을 헛디뎌 넘어질까 발끝을 땅에 더듬거리며 오고 있었다.

그런데 산길을 내려오는 도중 나는 움푹 패인 땅에 발을 헛디뎌 중심을 잃었고 넘어지며 안고 있던 수박을 놓치고 말았다. 수박은 땅에 떨어져 조금 구르는 소리가 나더니 쿵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잠시 후에 났다.

어디에 떨어졌을까 손을 더듬으며 내 주변에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비탈진 길 옆은 조금 턱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곳으로 내려가 한참 동안 내가 놓친 수박이 손에 잡힐까 더듬거렸다.

조금 지나자 친구는 "가자! 그래도 한 개는 있으니까 그것만 먹자"라고 했다. 아쉬움에 우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둘이 먹기엔 조금 부족했지만 덕분에 더욱 맛있게 먹었다.

한창 먹을 때이어서 맛있었고, 훔쳐먹는 스릴이 있어서 맛있었고, 칠흑 같은 어둠에 흘린 땀이어서 맛있었다.

지금 같으면 도둑이고 절도죄로 다스려져야 할 일이었지만 그 시절 우리들의 청춘시절에는 물질이 풍부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 간에 마음의 정이 있었고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우린 어린 시절 아름다운 추억을 쌓으면서 자랐다.

남산 한옥마을에서

어느 훗 날 수박밭 인근에 갈 기회가 있어서 그때 아쉽게 놓고 와야 했던 내 수박을 떠올리며 그 수박이 어디로 떨어졌을까 살펴봤다. 순간 아찔했다. 그곳은 그때 한 발만 더 내디뎠어도 목숨을 장담 못할 네댓 길이나 되는 낭떨어리였다.

"좋은 시절이었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는 집에서 통학을 했지만 나는 대전으로 떠나야 되었다. 하지만 방학 때가 되면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으며, 이제는 미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때가 많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고민 끝에 세상에 맨몸으로 맞섰고자 집을 나섰으나 그는 주저했다. 그 결과 나는 군에 들어가기 전에 체신부에 5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중앙전화국이란 곳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고 장장 41년이란 내 삶은 대부분을 보내게 되었다.

반면에 그 친구는 세상이 두려운지 머뭇대다 입대할 때까지 시골에서 머물다 군에 가게 되었다. 또한 군 복무를 마친 후에도 한동안 집에 머물다 마지못해 객지로 나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왔고 짧은 삶을 마쳤다.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가장 곁에서 바라봤던 친구의 삶에서부터 죽음까지의 일생! 마지막 소망이었을 작별 인사도 못 나눈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자네에게 인사를 한다,

"친구여! 잘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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