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삶의 의미가 뭘까?

by 찾다가 죽다

“19권까지 읽었습니다. 토지를 통해 인생을 배웠습니다. 저는 요즘 한국의 민요를 배우고 있습니다. 박경리 선생님에게 새타령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늘 그렇듯 작업을 하려고 컴퓨터를 켜면 포털 사이트가 뜨고 얼핏 눈에 들어오는 기사를 열어 본다.

“지금 일본서 가장 인기 있는 외국 문학은 한국문학”이라는 제목에 끌려 신동아 기사(허문명 12월 1일)를 읽는다. 일본 각지에서 ‘토지 문학 기행’ 차 자비로 통영을 찾은 일본인 독자들 이야기다. 기사에는 한국 문학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어느 한국인의 숨은 노력과 그의 조력자들이 10년의 노력 끝에 토지 20권 전집을 완역해 냈단다. 그리고 그 기념으로 통영에 있는 박경리 묘소와 기념관을 찾은 팬들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며칠 전 안과에서 당분간 독서나 컴퓨터를 자제하라는 말을 들어서 오늘 아침에는 유튜브로 인생의 의미(토마스 할란드 에릭센, 더퀘스트)라는 책을 소리로 읽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아님 평소 빅터 프랭클의 로고 세러피(의미 요법) 같은 데 남다른 관심을 쏟고 지내와서였을까? 모르겠지만 이 두 개의 에피소드가 연결 고리를 찾는다. 한번 날개 짓을 한 상념은 이내 며칠 전 쓴 글(교보 문고 발표 오늘의 작가상)로 날아가더니 젊은 작가(고명환)가 임사 체험 끝에 깨달았다는 인생의 의미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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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삶에서 마지막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이 의미 추구라 하고 또 누구는 삶에는 별 다른 의미가 없으며 그저 살다가 가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분명한 것은 작업을 위해 켠 컴퓨터 화면에서 무심코 읽은 재일 작가의 번역 기사가 내게 의미를 송환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한 작업은 한강이나 박경리와 같은 주로 일제 하의 삶이나 4.3 제주, 5.18 광주 등을 다룬 작품을 일본인들에게 소개하는 일들이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한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시각을 이해하고 공명하는 일본인들이 (소수이나마) 자리한다. 여기서 나는 (지극히 주관적이라 할지라도) 의미를 깨닫는다. 그리고 망설인다. 내가 하는 글 작업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니, 그런 게 있기나 한 걸까? 어쩌면 은퇴해서도 놓을 줄 모르는 먹물의 오래된 습관일지 모른다. 하지만 익숙해서일까? 이런 사색과 자문자답이 좋다. 지난 두 달여, 내키지 않는 기업 자문에 매달리느라 글쓰기나 책 읽기에 등한한 동안 어딘 지 불편했던 심사가 풀리는 기분이다. 그래 내 삶의 의미는 이 안에 있는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이 또한 의미로 포장된 관성, 아집일지도 모를 일이다. 삶의 의미를 찾는 답시고 평생 그런 책들을 읽고 또 그런 사상을 추종해 왔다. 하나 근자에 들어 의미 무용론에 관한 글들이 자주 눈에 띈다. 노화로 인한 허무주의일까 아니면 진정한 깨우침을 향한 진일보일까 그도 아니면 작금에 벌어지는 세태로 인한 회의나 좌절일까? 도무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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