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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다가 죽다 Aug 21. 2022

자극과 반응 사이

의미를 위한 공간

‘파블로프의 타종 실험’으로 기억되는 행동주의 조건 반사 이론은 이미 한 세기 전의 얘기다. 이후 역사학자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도전과 응징이라는 표현으로 자극과 반응을 대치시킨다. 이 영향인지 후에 나온 커뮤니케이션 이론은 송신자에서 수신자에 이르는 메시지의 강도나 빈도가 높을수록 더 큰 반응을 불러온다는 ‘수직 효과 모델(hierarchy of effect model)’을 낳고 이는 반 세기 이상 광고업계의 금과옥조로 군림한다. 뒤이어 나온 2단계 효과 이론이나 이용과 충족 이론 등도 좀 더 복잡한 논의를 띄지만 그 구조는 결국 자극과 반응이다. 

이러한 주장은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흐름이 선형적 혹은 순차적 양상을 유지하던 대중 매체 시대에는 그나마 명맥을 유지했지만 지금은 완벽한 비선형 네트워크 시대다 누가 자극이고 누가 반응인지가 모호해진 세상이다. 따라서 광고를 뒷받침한 대중매체에 의한 대중전달이라는 근간이 무너진 만큼 광고에 관한 모든 이론들은 새롭게 쓰여야 한다. (광고 교수를 하다 보니 얘기가 곁으로 흘렀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하지만 이에 대한 책임의식으로 뒤늦게나마 전공 관련 서적을 집필 중임을 변명삼아 밝혀 둔다)

우리에게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이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스티븐 코비는 다른 책을 위한 추천사에서 다음과 같은 인사이트를 제시한다. 곧,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 우리의 반응을 선택하는 자유와 힘이 있다.

그 반응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달려있다”는 세 가지 원칙이다.

자극과 반응 사이의 간극, 이를 포착하고 여기에 머물기 위해 우리는 짧게는 심호흡 몇 차례에서 자세를 잡고 하는 명상에 이르기까지 부단히 노력한다. 

이 틈새에 ‘의미(meaning)’가 자리한다.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곧,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서 내 반응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의미는 찾는 것이냐(발견) 아니면 만드는 것이냐(발명)하는 관점의 차이를 낳는다. 

우리에게 의미 요법(Logo Therapy)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빅터 프랭클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원 제목은 ‘Man's Search for Meaning’로 의미 찾기다. 곧 발견의 대상이다. 그런 가하면 니체는 ‘권력에의 의지’에서 인생의 의미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내 생각에 의미는 입자와 파장의 양면성을 띈 양자 역학과 같다.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여유는 의미를 만드는 데(발명)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안에 그 의미를 만들 수 있는 소재(발견)가 있느냐 하는 문제다. 

“인생 별 의미 없어”라는 자조적 독백에서 앞서 인용한 프랭클의 실존적 공허(existential vacancy)가 읽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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