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
커피가 맛있는 예술의 전당 <테라로사>, 주말 이른 아침, 한적함이 낯설다. 언제나 사람들로 꽉 차 있어 앉을자리가 없는 곳인데 아침의 카페 풍경이 평화롭다. 그림을 좋아하는 친구와 빈센트 반 고흐의 전시회에 오픈런(?) 하기 위해 토요일, 카페에서 아침을 시작한다. 그림을 보기 전, 차를 마시며 기대하는, 참 행복한 시간이다. 그림을 보기 위해 걷고, 보면서 걷고, 보고 나서 걷는 시간이 좋다.
아름다움 속에서 걷기다.
고흐의 초기 네덜란드에서의 그림은 고뇌하는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인물 드로잉들로, 눈동자 안에 하얀 붓터치 하나로 생동감 있게 표현한 명암이 인상적이다. 숨소리까지 들릴 것 같은 순간을 포착하여 리얼하게 그린 드로잉을 보고 느꼈다. "그림은 생각이다"라고. 고흐의 드로잉을 보고 그림 안에 있는 인물들의 고뇌가 느껴졌다.
파리로 와서 그린 그림들은 어두움이 사라지고 파스텔 톤의 밝아진 색들로 특유의 터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프랑스 남부 아를로 옮기고 나서는 더 풍부한 색을 보고 수많은 아름다운 그림들을 그린다. 노랑, 분홍, 연두, 하늘색의 연하고 따듯한 색감이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고흐의 눈으로 본 프랑스의 색채는 이렇게 은은한 빛깔들인가. 프랑스가 궁금해진다. 나의 시선으로 보는 프랑스는 어떨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 가야 하고 파리도 가야 하고 가야 할 곳이 많다. ㅎㅎ고흐의 그림들로 다른 어떤 나라보다 프랑스의 건축과 조경과 패션과 그 나라 사람들의 문화로 인한 프랑스의 공기가 궁금해졌다.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영화음악으로도 유명한 흑백영화 <Un Homme et une Femme, 남과 여>! 별 대사가 없는데 숨 막혔던 영화다. 배우자와 사별한 두 남녀의 러브 스토리로 주기적으로 찾아보는데 볼 때마다 숨 막힌다. 대사 없이 영상과 음악만으로 그들의 심리를 잘 표현하여 뇌리에 박힌 강렬한 이 영화의 배경지는 프랑스 북부 바스노르망디 지방에 있는 칼바도스주의 해변 휴양지인 도빌(Deauville)이다. 그 유명한 영화음악이 깔리는 도빌의 바닷가 영상이 떠오른다.
김민철작가의 책으로 프랑스 여정을 기록한 <무정형의 삶>을 읽을 때도 가고 싶었던 파리다. 프랑스에서 찍은 그녀의 사진과 글도 매력적인 프랑스였다.
특유의 터치로 그린 고흐의 풍경화도 보고 있으면 몽롱해진다. 보고 있으면 그냥 좋다. 이번 전시는 더 궁금한 고흐의 대작들이 전시되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전시장 안 꽉 찬 사람들로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다른 전시 때와 달리, 보는 사람들 인원을 조정해서 여유 있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에게 미술관 산책은 최고의 힐링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고흐 미술관을 거쳐 프랑스의 햇빛과 공기를 느껴 볼 수 있는 날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