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조깅과 문어이야기

생각하다

by 피아노

매우 느리다. 사실 걷는 건지, 뛰는 건지 모를 정도로 느리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힘들지 않을 정도로 걷기와 달리기의 중간 지점쯤에서 슬로조깅을 한지 한 달 정도 지났다. 1월부터 근력운동을 시작했고 근력운동 후, 유산소운동으로 걷기만 하다가 달리기에 도전을 했다. 한 달을 거의 매일 30분씩 천천히 달렸다.

느리게 달리니까 그렇게 힘들지 않다. 처음에 조금 힘들다가도 다리가 움직여야 하는구나 체념했는지 저절로 움직이는 느낌이 오면서 힘듦이 사라진다. 달리고 나면 땀이 쫙 나고 뭔가 기분이 좋다.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더 잘 달려진다. 심리상태가 몸의 움직임을 무겁게도, 가볍게도 한다. 그 평생 했지만 안 됐던 다이어트다. 느리게 달리기로 체중이 점점 줄고 있고, 만성피로가 사라졌다. 혈당도 혈압도 경계단계에서 정상으로 돌아왔다. 달리기가 만병통치약이다.


늘 트레드밀 위에서 달리다가 어느 저녁, 공원에서 달릴 때 또 다른 느낌이다. 배롱나무 꽃밭과 호수와 하늘의 풍경이 스쳐간다. 바람을 가르고 스쳐가는 풍경을 보면서 달린다. 걸으면서 보는 풍경과 달리면서 보는 풍경이 다르다. 많은 러너들이 나를 앞질러 간다. 그 뒷모습들이 제각각이고 다 아름답다. 다가오는 계절이 기대된다. 더 뷰가 좋은 러닝코스를 찾게 된다. 러닝복은 또 예쁜 게 왜 이리 많은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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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헬스장에서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My Octopus Teacher/나의 문어 선생님>를 보면서 달렸다. 아, 이 다큐멘터리 뭐지. 달리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빠져서 봤다. 최근에 스노클링을 해서 그런지 더 와닿은 이 영상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 케이프타운의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한 남자(관찰자/크레이그 포스터)가 다시마 숲으로 이루어진 바닷속을 탐험하다가 우연히 만난 문어와의 교감을 다룬 이야기다.

관찰자는 바닷속이 다른 행성 같고 몸에 아무것도 없을 때 더 자유롭다고 인터뷰한다. 최근 바닷속을 들여다본 나로서는 너무 공감되는 이야기다.


나에게 문어는 그냥 맛있는 것일 뿐이었는데 읔 문어의 지능이 꽤 좋았다. 여덟 개의 다리에 달려있는 수많은 빨판을 이용해서 여러 개의 조개로 몸을 휘감아 숨어 있기도 하고, 천적인 무시무시한 파자마상어의 공격을 받을 때 상어의 등에 올라타 위험을 피하는 기가 막힌 장면도 나온다. 후각이 좋은 또 다른 파자마상어의 공격에는 도망을 가다가 육지까지 올라가서 죽음을 피하기도 하고, 물고기 떼와 유영하며 놀이를 하기도 한다.

문어의 삶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던 어느 날, 관찰자가 손을 내밀었더니 문어가 잡아준다. 달리다가 내 눈이 휘둥그레지고 호흡이 멈칫했다. 처음 인간과 문어가 교감하는 순간이다. 영상 후반부에는 관찰자의 배에 올라타서 한참을 있는 장면도 나온다. 와, 나의 언니가 키우는 골든 레트리버와 내가 교감하듯 인간과 문어도 이렇게 연결될 수 있다니 놀랍다.

상어의 공격에 팔이 잘리는 부상을 당할 때는 그의 슬픈 인터뷰가 전해지고 내 마음도 몹시 아팠다. 시간이 흐르면서 팔이 재생되고 문어는 회복한다.

문어와 교감하면서 느낀 관찰자의 희로애락이 나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수컷 문어와 교미 후 많은 알을 품고, 먹지도 않고 꿈쩍도 안 하다가 기력을 잃고 자연사하는 문어를 보고 울컥했다.

문어의 밥, 게나 바닷가재의 입장에서 보면 문어가 적이 되고 게나 바닷가재의 일생이 또 펼쳐질 것이다. 대 자연의 모든 존재들이 얽히고설켜서 연결되어 있고 생명체마다 한 우주를 이룬다.

감동적이다.


달리면서 감동하니 달리는 게 더 좋아지고 경이로운 문어 이야기가 가슴에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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