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지은 Oct 18. 2024

[에필로그] 끝 그리고 시작, 아침 순례자 예식

Muxia ~ The End of the World, Fisterra




산티아고 순례길의 연장선: 묵시아 그리고 세상의 끝, 피스테라






'아침 순례자 예식'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하루를 시작하기 앞서, 아침마다 읽었던 글귀입니다. 까미노 가족들과 다 같이 소리 내어 읽기도 하고, 혼자 한 글자 한 글자를 마음에 새기며 조용히 읽기도 했고, 나 홀로 까미노를 아주 천천히 걸으며 발에 땅이 닿는 것을 느끼며, 새벽의 찬 공기를 마시며 눈으로 천천히, 마음 깊숙이 곱씹어 읽어 내려가기도 했던 아침 순례자 예식.




니체가 말했던 우로보로스의 영원회귀처럼 기원과 종말이 똑같은 지점, 즉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에서 끝은 어쩌면 시작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교훈은 자신의 삶을 살아있게 만드는 가치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은 그 가치를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산타이고 순례길에 들고 다녔던 미하엘 하우스켈러의 책『왜 살아야 하는가』에 명쾌한 해답은 없었습니다. 800km의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도, 33일간의 여정 그 끝에도 정답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말처럼 내 안에 정답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삶을 압축시켜 놓은 것 같은 까미노 길 위 모든 경험,

산티아고 길 위에서 만난 사람,

그 길과 사람들을 통해 느낀 사랑,

하늘 아래 그리고 땅 위에 존재하고 있는,

우주, 거시적 시공간의 관념,

지금을 인식할 수 있는, 감각과 호흡,


이런 것에게, 그런 영감에 감사합니다.  




순례길의 끝,

일상의 새 아침에도 하루하루 새로운 까미노를 걸어가는 자신에게 어쩌면 순례자의 마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또 그것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습니다.  




아침 순례자 예식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해보세요.  
발아래 땅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껴보세요.
발의 감각을 느끼며 천천히 주위를 위쪽으로, 발목 그리고 무릎으로 옮겨오세요.
천천히 주위를 다시 엉덩이로 옮기고 긴장이 느껴지면 놓아주세요.

그리고 다시 배와 등의 감각을 느끼며 호흡에 집중합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폐에 공기가 채워지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숨을 내쉬세요.  
다시 한번 숨을 들이쉬고 내쉽니다.
그리고 어깨, 팔, 손의 긴장을 풀고 원한다면
조금 흔들어 보세요.

오늘 새로운 까미노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음속으로 까미노를 걷기로 결정했던 순간을 떠올려보세요.
어땠나요?
잠시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이 여정을 시작하기로 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어떤 기대를 가지고 왔나요?
달성하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제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오늘을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지 살펴보세요.
신발과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여행에 대해 알리고 작별 인사를 하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이제 다시 지금 여기로 돌아와 발이 닿아있는 땅을 느껴보세요.  

지금이 바로 그날입니다.
마음을 편안히 하고 집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곳에 남겨두고 떠나도록 하십시오.
걱정할 것 없습니다.  
당신이 돌아갈 때 모든 것은 거기 그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당신을 위한 시간입니다.
산티아고 여정에 여러분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기대사항이나 목표가 있다면 그것들에 대한 생각은 뒤로 미루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그것들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세요.
그리고 이 까미노가 당신에게 가져올 것이 무엇이든 마음을 열어보세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그 과정에서 까미노가 당신에게 보내는 메시지에 마음을 열고 믿어보세요.

한 번에 한 걸음 씩 신뢰를 가지고 걸어보세요.
산티아고를 향해 내딛는 모든 발걸음이
더 깊은 자신의 내면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될 것이라는 것을 믿으세요.
한 번에 한 걸음 씩, 나 자신을 찾기 위해 그리고 내면의 진실을 알기 위해.
믿어보세요.
상황이 어려워질 때면 당신은 당신의 길로 인도될 것이고,
까미노가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할 것입니다.

이제 어깨에 얹힌 배낭의 무게를 느껴보세요.
당신 자신 이외에 당신이 가지고 다녀야 할 것은 이 것뿐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남겨두셔도 됩니다.

이제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세요.
지금 보이는 사람들이 당신의 까미노 가족입니다.
이들은 앞으로 며칠, 몇 주 동안 계속해서 만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입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하세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면 아낌없이 도움을 주세요.

부엔까미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