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답장한 이름도 서로 모르는 사이.
언니 오랜만이야 언니는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잊었을까봐... 나 걔야 가가라이브 18살 나는 그동안 시험도 보고 (물론 진심 말아먹음) 토요일에 친언니랑 잠실도 다녀오고 그러고 지냈어 언니는 잘 지내? 오랜만에 보내는 인사인데 우울한 얘기해서 미안해 너무 힘든데 도저히 말할 사람이 없었어 미안해 항상 그래왔지만 나는 마치 불규칙한 싸이클이라도 가지고 있는 듯이 정말 너무 우울하고 숨 쉬는 것보다도 더 많이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기간이 있어 한 번 시작하면 길게는 한 달도 그러는 것 같아 요즘 내가 딱 그 시기인 건지... 실은 시험을 많이 망쳐서 시작한 것 같아 무척이나 기대했던 영어와 문학을 말아먹은 그날부터 우울해지기 시작했어 나는 나대로 너무 속상하고 내 자신이 너무 한심스럽고 스스로에 분해서 거짓말 조금 보태서 혀 깨물고 죽어 버리고 싶었어
근데 어머니가 모진 말만 하시더라고 '대학 못가지 뭐 그딴식으로 하면'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등 뒤에서 온 그 말이 정말 날 갈기갈기 찢어놓는 것 같았어. 나는 숙명여대가 너무 가고 싶은데... 난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한 거였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까 맥이 풀리더라고 시험 2일차였나 그랬는데 그날 그말이 자꾸 귓가에 들려서 죽고 싶었어 뭐만 하면 죽고 싶더라 항상... 엄마가 밥을 잘 안 드시길래 엄마가 좋아하는 에너지바도 사다주고 가끔씩 엄마 생각나서 이것저것 사다줬었는데 오늘 언니가 사준 마카롱 한 개 혼자 먹었다고 아버지하고 날 엄청 욕하시더라고 쟤가 언제 뭐 먹어보라는 소리 한 적 있냐고 쟤는 쟤 입에 들어가는 것밖에 모른다고 하시는데 너무 고통스러웠어 별 거 아닌가 싶은데 나는 맛있는 거 같이 먹을 때 엄마 챙겨주고 아빠 챙겨주고 다 했는데 왜 나를 그렇게 욕하지 왜 나에 대해 모질게 말하지 싶더라고 항상 그랬어 우리 부모님은 언니 오빠가 뭘 서운하게 하면 나까지 욕 먹었거 그런 거 있잖아 오빠가 그러면 자식새끼 다 필요 없어 키워준 보람도 없다 그러니까 뒤지든 말든 알아서 하게 둬야 정신차린다
우리들 늙으면 쳐다도 안 볼 년놈들이다 등등 다 들리는 그런 말들이 정말 누가 나 좀 죽여줬으면 했어 언니가 장난스럽게 한 말도 기분이 언짢으셨나봐 그러실 수 있지 근데 집에 와서 엄청 욕하시더라고 근데 왜 나도 욕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었어 딸년들 다 나쁜년이다부터 시작해서 온갖 모진 말들이 너무 힘들더라 꿈쩍도 안 하면서 이거 해와라 저거 해라 시키고 먹기만 하는 아빠가 항상 경멸스러웠어 너무 힘들다 내가 예민해진 것 같긴 한데 너무 힘들어... 시험이 끝났는데 하나도 신나지도 않고 오히려 이제 종이에 찍혀나올 내 점수들을 생각하면 가슴팍에 칼 꽂아넣고 죽어버리고 싶어 이 집에 있는 것도 힘들다 으악... 언니가 결혼한 이후로 항상 '너도 결혼 안 한다 했으면서 결국 결혼 할 거지'라는 말을 엄청 하셔 미치겠어 진짜로... 울고 싶다 울지도 못해 왜 우냐고 혼나거든 문도 못잠궈 잠그면 혼나니까...
너무 과잉보호인 우리 집이 너무 힘들다 친구도 제대로 못 만나고 그만 둔 수학쌤이랑 애들끼리 어디 놀러나가지도 못하고... 오후 6시면 늦었으니 들어오라 하시고 가방 검사 당하고...자꾸 과잉보호하고 나한테 폭력적인 말만 하고 그러니까 자꾸 애정에 집착하게 돼 사람한테 안기면 마음이 좀 편해져 안 그러면 막 불안하더라고 우울해서 죽고 싶은데 친구한테 안겨서 가만히 있으면 마음이 좀 편해져서 살만해지더라...
남자친구라도 생겼으면 했어 그냥 너무 사랑받고 싶어 모진 말 말고 좋은 말이 듣고 싶어 부모님은 항상 그래 내가 집에서 엄청 애정을 받고 자란다고 근데 난 아니야 이 집이 너무 힘들다 언니 커 갈 수록 너무 힘들어 모진 그 말들이 뭐지 진짜 우울하다 정신과 약을 먹으면 안 이럴까 안 죽고 싶어질까 너무 우울해지면 심장쪽이 울컥해 소름이 끼치고 그래 어떻게 해야 할까 언니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언니가 지금은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언니 말고는 아무도 없거든 나는... 보고 싶다 언니 오타도 안 보고 울면서 그냥 주르륵 쓴 거라 잘 읽힐지 모르겠다 미안해 언니 고마워.
대학이란 뭘까
수능이란 뭘까
부모란 뭘까
한 생명이 힘들어한다.
한 학생이 힘들어한다.
곧 수능이 다가온다.
많은 수험생이 힘들어할 수 있다.
하지만,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주지만,
그 시기엔 그게 전부다.
생명보다
대학이 더 중요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내 답장
<답장> - 출처 내 메일 함.
소중한 고삼아 안녕
근무 중에 우연히 메일 확인하다가 이제서야 확인해
일단 너무 너무 잘했어.
나한테 메일 줘서 너무 고맙고
우울하고 힘든데도 나를 떠올려줘서, 용기내줘서, 고마워
고삼이는 잘 하고 있어,
설사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너는 너 나름대로 소중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해.
시험도 끝나고 5월 5일 어린이날에
고삼이가 어린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좋게 휴일을 만끽하면 좋았을텐데
이래저래 우울한 일들이 많았구나. 편지로만 읽었는데도 언니가 다 속상하다...
고삼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누구도 고삼이의 힘듦이나 노력들을 알아봐주지 못한다는게 너무도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다.
가장 예쁘고, 꿈도 많고, 하고싶은 것도 많고 친구들과 추억쌓기도
바쁠 나이에 이런저런 일로 마음고생하는게 너무도 마음이 아파.
고삼이는 그냥 고삼이가 힘들때 마다 찾는 해우소 처럼 이렇게
메일로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언제든지 이메일을 줘도 좋아.
부담없이 메모장처럼 적고 쓰고 마음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해 고삼아.
이메일 주소에 고삼이라 적혀있어서 고삼이라고 부르는데 맞지? 고삼아 ?..ㅎㅎ 아니면 난감쓰...
언니는 다시 말하지만, 아니 계속해서 말 할 거지만
가족으로 인해 받는 상처나, 아픔들을 다 너의 탓이라 생각하지 말고,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할 것 같아.
물론 가족한테 가장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다 있지만
가족이 내가 원하는 만큼 사랑과 인정을 주지 못한다면
고삼이도 고삼이 나름대로의 마음을 단단히 키워야할 것 같아.
가족들은 고삼이를 사랑하지 않아서 상처를 주고 억압을 하기보다
건강하게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아.
표현하는 방법도...
그렇다고 해서 고삼이가 가족들이 주는 상처나 아픔들을 다 감내하고 이해하라는 건 아니야
고삼이가 생각했을 때 "이건 아니다" 싶은 행동들은 정확히 집고 넘어가야되는 게 맞고
부모님한테 말을 했음에도 말이 안 통할 때는
고삼이 너도 부모님의 말을 다 듣고 상처를 계속해서 받을 필요는 없어
고삼이 나름대로 스트레스 받지않는 방어기제를 찾아야 할 텐데..
계속해서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고삼이 네가 억압받고 상처를 받고 그게 당연시 되는건 아니라고 봐..
고삼이 네 감정의 주인은 너니까
울고 싶을땐 그냥 울어
부모님이 왜 우냐고 하면 그냥 눈물이 나는걸 어떡하냐고
우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되냐고
엄마아빠가 화낼때 내가 왜 화내냐고 따지고 화내지 말라고 한적 있느냐고
두분 감정은 소중하면서 내 감정은 왜 봐주지 않냐고
계속해서 너의 감정을 표출하고 어필해
그 이후의 반응이 두렵고, 무서울 수 있지만
그렇다고 속으로만 담아두기엔 너무 답답하고 무기력해질 것 같아
부모님이 내마음을 몰라줘도 고삼이 너는 계속해서 표현을 하고
설사 그 표현이 무의미 할 지라도 그냥 내 뱉어 보는거야 질러보는거야
처음부터 잘 되진 않겠지만
계속해서 노력해보자 고삼아
언니가 옆에서 바라봐줄게 ^^♥
참고로 이 언니는 현역 때
언어등급 5등급이었고,
대학을 두 번이나 갔고,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지만.
나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