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경험주의 바탕.
나는 물건을 자주 잃어버려서
그 잃어버리는게
나는 불편하긴 하지만
다시 만들면 그만인 사람이라
약간의 아쉬움이나
돈 잃어버리면 그냥 또 일하면 되지
근데 추억이나 그런걸 잃어버리면
그건 싫은데 아무튼
자주 잃어버려서
꽤나 고생했고
모든 사물에 이름을 적어두거나 표기해두는 습관이 있었다.
(* 구 남친이 내가 귀여운걸 좋아했던 때가 있어서 몰래 다이소에서 스티커로 내 이름표를 만들어 준적이 있었다. 난 그 스티커보다 그걸 몰래 만들어주는 그 마음이 좋았다. 그래서 그게 신나서 내 물건에 아무거나 덕지덕지 붙였던 기억이 있다.)
그것도 지갑을 3-4번이나 잃어버렸는데
내 학생증을 보고 찾아주는 천사들이 있어서
(* 구남친이 지갑을 사줬다. 잃어버릴때 마다.. 비싼 지갑은 절대 사주지 않았으면 했다. 그걸 잃어버리면 혼나니까 차라리 안사주는게 좋겠다 싶은 정도였다.)
(* 오다 주웠다고, 그러면 난 또 그게 좋아서 방방뛰고 재밌게 놀고 그랬다.)
구남친이 사준 발찌 팔찌도 자주 잃어버림. 그래서 커플링도 잃어버릴까봐
우스겟 소리로 그럼 타투를 하자 했지만 난 타투도 별로 안 좋아했다.
차라리 목걸이를 달라고 했다. 자주 안 빼니까.
지갑을 화성시에서도 잃어버렸는데
천안 안경점에서 전화를 주는.. 특이한 일이 생긴다.
아파트 단지에서 푸드트럭하는 아저씨가 결국엔 내가 살던 아파트 앞 차도로 주변에서 주웠고, 그 지갑엔 내 개인정보는 없고 천안 안경점에서 투명렌즈를 샀었는데 거기 안경점 명함이 들어가 있어서 거기서 전활 해서 개인정보 유출 없이 나에게 연락이 왔던 것이다.
그 때 당시 내가 근무했던 해당팀 팀장님은 내가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하니 마지막 쓴 곳이 어딘지 물었고, 그 집이 나는 냉면집인 줄 알았는데 냉면집 CCTV를 돌려봐도 나오진 않고 시무룩하던 찰나였다. 그 지갑도 구남친이 사준거라 나는 똥줄이 탔는데. 또 언제 재발급을 하고, 머리가 아팠다. 잊혀질때쯤 모르는 번호로 연락 온 곳이.
천안 안경점이라니. 지갑은 화성시에서 잃어버렸는데.
결국 그 화성시 푸드트럭 아저씨에게 보답을 하고 싶어서
안경점에 그 사람의 연락처를 물었고,
연락을 드리니, 두 아들과 열심히 사시는 아버지셨고,
사례는 한사코 거절하셔서 돈은 그럼 안 보내드리고
두 아들과 이쁜 와이프 분과 맛있게 드시라고
베스킨라빈스 제일 큰 걸 기프티콘으로 보내드렸다.
근데, 불쾌했던건 그 지갑을 화성시 내가 살던 아파트 경비실에 맡겨주셨는데
그 지갑을 찾으러 간 과정에서 경비원아저씨는 나에게 성추행을 하려고 했다.
옆에 앉아서 싸인을 하라고 하길래
굳이 내가 그 아저씨 옆에 찰싹 앉아서 싸인을 해야하나 싶어서
서서하겠다고 하니
옆에 앉아서 안하면 안 주겠다고 하면서 능글맞게 처웃는게
주둥이를 찢어버리고 싶었다.
볼펜을 건내주는 그 과정에서도 손 한번 스쳐보려고 지랄을 떨던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경비원아저씨는 내가 어려보였나?
경찰과도 말싸움하는 나인데
이 할배새끼보소
개 정색을 떨어주니
깨갱하던.
그러니 밀폐된 곳, 그리고 무언가 아무말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선
지랄을 떨어줘라.
개 추잡한 새끼들이 도처에 많더라.
나이든 노망난 고추는 약도, 답도 없다.
(* 이것도 썰이 특이하다. 거의 라디오 스타에서 일반인 게스트로 모셔도 될 썰인데. 나만 재미있을 까봐 내 블로그에다가만 적는다.)
진짜 살다보면 날개 없는 천사들이 많다는 걸 느낀다.
내 물건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건
이름과, 내 주소, 내 신분을 알아야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물건이든 큰 물건이든
모든 건 주인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잃어버리지 않게 늘 노력하지만
그게 잘 안될 땐 그냥 보호장치로 이름과 명함을 지갑에 넣어두는거다.
이 맘때 쯤 신부동에 있는 당구장 알바를 했었다.
그 때는 그냥 주급으로 현금을 주셨다.
당구나, 사구나 포켓볼을 잘치는 것도 아닌데
현금을 주급으로 받을 수 있는게 좋아서 했던 것 같다.
일단 사장님이 푸근한 할아버지셨다.
데이트 비용, 사고싶은 거 살려고 알바했다.
(* 이때 구 남친이 당구장 알바를 무지 싫어했다. 담배를 끊으라고 했지만 넌 왜 담배피는 소굴에서 알바를 하냐고 핀잔을 주거나 담배를 다시 피겠다고 맞협박을 하던 시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당구장 알바가 쉬운게 그냥 카운터에서 책읽고 손님들 오면 아이스티, 콜라, 주면 끝이다 큣대 쓱쓱 닦고 )
물론 매너있는 손님 부터 철 들지 않은 청소년 친구들 부터
배울만큼 배운 사람이
좋은 직업도 갖고 있는 사람이
치졸하게 나랑 말싸움 한 천안 세무직원도 있었다.
이 썰도 재밌는데 털어보겠다. 낄낄.
예고로 세무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편법을 쓰려는 그 사람이 난 웃겼고.
오히려 가방끈 사람들이 법을 더 잘지키는 경우도 있다는 걸
당구장 알바를 통해 배웠다.
그 사람에게 너는 누군데 그러냐길래
저 알바생인데요. 선문대학교 **학번 정소연인데요?
서로 통성명하고 나는 집에와서 씩씩대며
그 사람 직급과 이름을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아직도 근무하시려나?
당구나 치고 가시지
그때 내 나이가 20대 중반이고
그 세무 2인자 직원은 자기 따까리랑 단 둘이 당구를 치러왔다.
난 그냥 당구장 할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
카드결제와 현금결제를 다르게 받아가는게 불법이라면
싹다 잡아가라.
딴 세상에 살다 왔는지
저렴한 가격으로 카드결제를 해달라고 했다.
그럼 당신이 해야할 일은
신부동 일대를 다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으셔야 할텐데
모르고 당구치러 오셨나 싶기도 했다.
다 큰 어른이 여대생하고 말싸움이나 하고
윽박지르고 말이야.
내 귀가 깨나 사오정같아서
(* 실은 말도 섞기 싫은 사람 앞에서 한정 사오정이 된다.)
에? 예?
그러곤
쫄려서 바로 사장님한테 전화해서
이러쿵 저러쿵 말씀드리니
괜찮다고 하셨다.
그 할아버지 번호를 나는 s 당구장이라고 저장해뒀는데
지금은 그 당구장엔 헌팅술집으로 바뀌어져 있다.
내가 알바를 지각해도
그냥 괜찮다고 카운트 주변을 정리해주시고
교대를 해주셨는데
돌아가셨을까. (* 그때 그 할아버지 나이는 가늠이 안되지만 백발이셨어서.)
왜 갑자기 생각이 날까.
흰머리가 많으시고
안경을 끼시고
KFC 할아버지 처럼 풍채가 있으신건 아니였지만
점잖으신 할아버지셨는데
덕분에 나는 정건사 수련생 시절
일은 직원이 하는 차팅량을 부여받고
월 36만원 ? 40만원은 될려나?
그 돈으로 생활을 했는데...
지금 수련생들은 내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월급이
90만원정도인데
물가 생각하면
90만원으로 뭘 할 수 있을까? 한 달에?
에효... 각박하네

청년들 나무라지 마라. 콱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