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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집아들 May 22. 2022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시카고 미술관에서 호퍼를 만나다


 어제 하루 푹 쉰만큼 오늘은 열심히 돌아다니기로 했다. 시카고 오는 날부터 승연이가 가고 싶어 한 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자기가 엄청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이 있다고 했다. 내 생활에 그림이란 옵션은 없었지만 덕분에 외국에서 마음의 양식 좀 쌓겠구나 싶어 기꺼이 따라나섰다. 나에게 그림이란...아주 하이엔드의 예술처럼 느껴졌다.


 미술관 입장권을 사러 가보니 관광 도시에 흔히 있는 시티 투어 입장권이 판매 중이었다. 마침 잘됐다 싶어 미술관 입장권과 시카고의 가장 고층 빌딩 전망대 입장권이 묶여 있는 티켓을 구매했다. 어차피 가려고 했던 두 곳이라 합리적인 소비 생활을 한 것 같아 아침부터 뿌듯했다. 오디오 가이드 대여도 해주고 있었지만 과거 스페인 여행  세비야 대성당 오디오 가이드 빌렸다가 거의 못 알아 듣고 스트레스만 받았던 경험이 있어 다시 그런 우를 범하지 않으리라 하고 대여하지 않았다.


 예술의 성지인 미술관 답게 정문도 멋있었다. 미술관 입장문의 양 옆으로 사자상이 조각되어 서있었는데 정면으로 고층 건물을 마주하고 서 있는 그 모습이 밀림을 호령하는 왕다운 모습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보여 좀 안타까워 보였다.


 미술관은 꽤 컸다. 가끔 미술관에 가면 이 그림 저 그림 온갖 그림을 다 봐야 하는 듯 한 의무감과 본전 의식에 시달렸던 나와는 달리 승연이는 관람 스타일이 달랐다.     

 

 “미술관에 있는 모든 그림을 다 열심히 볼 필요는 없어요. 보고자 하는 몇 가지 그림만 제대로 보는 것으로도 충분해요.”

 “아하! 그렇구나. 맞아, 괜히 이것저것 다 볼려고 애쓰다보면 나중에 피곤하기만 하고 감흥도 없어지더라.”      


 예술의 세계에 정해진 룰이 어디 있겠으며 각자의 흥과 느낌에 따라 달려 있겠지만 이 의견엔 크게 공감이 갔다. 대부분의 그림은 간단히 훑어만 보았고 안쪽으로 들어가 승연이가 꿈에 마지않던 그림이 걸려 있는 홀이 다가왔다.    

 

 “어떡해... 저 가슴이 두근거려요. 너무 설레요.”

 “이야~ 진짜 좋아하는 그림인가 보다. 어떻게 그렇지? 신기하다 그런 기분을 느낀다니...”


 마치 꿈에 그리던 연예인이나 오래 그리던 사랑을 만나기 전처럼 설레어하는 승연이가 신기했다.


 “정말 너무너무 보고 싶었거든요. 감격할 것 같아요. 그 그림 하나만 봐도 전 여기서 볼 거 다 본거예요.”  

   

 무엇인가에 설레어 본 적이 언제였던가. 언제부턴가 모든 것에 무던해지고 덤덤해지는 걸 느끼며 나 스스로가 안타까워 보일 때가 있었다. 그림 하나에 저리 설레는 기분은 어떤 건지 궁금하면서도 아직 저런 말랑말랑한 감정을 품고 있는 가슴이 부럽기도 했다.


 설렘에 긴장감마저 느껴지는 승연이와 그런 그녀를 신기함과 부러움 섞인 시선으로 보던 내가 마침내 그 그림 앞에 섰다.


 ‘호퍼’라는 작가의 'night halk'라는 그림이었다. 하도 설레발 치고 기대에 찬 찬양을 많이 들어서 인지 그림을 모르는 내가 봐도 표현할 수는 없는 감흥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승연이는 완전히 넋을 놓은 듯 했다. 그 자리에 서 한참을 바라 보았다. 온 마음으로 그리워하던 연인을 만난 눈으로 그림을 보는 승연이는 그 그림을 통해 마치 그 작가를 대면한 듯 했다. 덕분에 나도 그림에 빠져들었다. 그 그림이 가진 분위기. 분위기였다. 그 그림이 가슴이 붓고 있는 것은...그 분위기에 완전히 매료 되었다. 그림쪽으로 한걸음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시간과 주변이 멈추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동안의 애무가 끝난 듯 승연이 발걸음을 뗐다.      


 “실컸 봤어?”

 “네, 충분히 봤어요.”

 “신기하다. 부럽기도 하고.”

 “네? 뭐가요?”

 “그냥 그림 하나를 보면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학교 다닐 때부터 워낙 좋아하던 작가라 그래요. 저 작가의 그림이 몇 점이 더 있어요. 보러 가요.”   

  

 호퍼의 그림이 세 점 정도 더 있었다. 한 작품을 보고 다른 작품을 보니 ‘아, 이게 그의 그림이구나.’ 싶은 느낌이 왔다. 그의 그림이 가진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가장 인상에 남는 그림은 ‘night halk’라는 작품인데 늦은 밤 거리의 어느 길 귀퉁에에 있는 노란 조명이 밝혀진 바에 한 쌍의 연인과 바텐더 그리고 한 남자 손님이 있는 그림이었다. 늦으막 한 밤의 고즈넉함과 그 빛의 색감이 주는 분위기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이 그림 너무 좋다. 집에다 걸어 놓고 싶다.”말도 안되는 소유욕을 일으키는 작품이었다.

 “오빠도 마음에 드나 봐요?”

 “응, 너무 마음에 들어. 멋있어. 덕분에 좋은 그림을 봤어.”

 “다행이네요.”     


 그 외에도 몇몇 미술 교과서에서 보던 그림이 보였다. 굉장하다. 여기오니 이런 그림들을 직접 보게 되는구나. 되지 않는 소리로 그림에 대한 의견 교환도 하며 그림 해석을 찾아 읽어 보기도 하며 그림 감상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미술관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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