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쌀집아들 May 08. 2022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시카고에서 남의 대학 중앙도서관에 들어가다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왠지 나에게 뭐라고 하는 것 같아서 뒤를 돌아보니 한 백인 남성이 눈짓으로 내가 메고 있는 작은 가방을 가리켰다. 눈을 옮겨 내려다보니 내 가방 지퍼가 열려 있었다.


 “Wow, thank you very much.” 그에게 고맙다는 제스쳐와 함께 얘기했다.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어깨를 으쓱하고 갈 길을 갔다. 하마터면 길 위에 내 여권과 현금등을 떨어뜨리고 돌아다닐 뻔 했다.

 와 간지난다. 역시 친절함은 시크함 위에 얹어질때 핵간지다. 너무 고마워요~


 시카고 사람들 친절하구나 하며 도너츠 가게로 들어갔다. 오렌지맛이 나는 도너츠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오늘은 이걸로 점심인것인가. 그동안 돌아다니면서 너무 먹기도 했어. 이렇게 어 놓고 먹다간 돼지꼴을 못 면할 꺼야.”     


 특별히 맛있는 도너츠는 아니었지만 적당히 분위기를 즐길 만 했다. 커피와 도너츠홀랑 먹고 나와 시카고 대학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안에 독특한 의상과 분장을 한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맞다, 오늘 퍼레이드 한다 그랬지? 어제 할머니가 그랬잖아.”

 “맞아. 아 아깝다. 그거 되게 볼 만하다 그랬는데.”


 어제 공원에서 만난 할머니의 정보에 따르면 오늘 정오부터 시카고에서 성소수자들의 큰 퍼레이드가 펼쳐진다고 했다. 꽤나 볼만하다고 했다. 말만 듣고 무언가 투쟁적이고 사회 메시지 적인 비장한 퍼레이드를 떠올렸는데 막상 무지개 색상을 테마로 알록달록 꾸미고 나온 사람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밝고 즐거운 얼굴이었다.      


 “되게 분위기 좋아 보이는데? 진짜 볼 만 했을 것 같다.”

 “아쉽네요. 생각도 못하고 있었어.”     


 지하철에서 사람 구경하며 시카고 대학 근처의 지하철 역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더운 오후였다. 방학에다가 주말이라 그런지 학교에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시카고 대학 병원 건물이 보이고 정말 대학스러운 건물들이 몇몇 보였다. UCLA에서 느꼈던 것처럼 ‘저런 건물에서 공부하면 공부할 맛 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어릴 때부터 대학 캠퍼스를 동경해 왔다. 뭔가 캠퍼스는 늘 낭만이 서려있는 곳이라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교수가 되어 대학에서 강의하며 젊은 대학생들과 호흡하며 캠퍼스에 앉아 학생들과 이런 저런 얘기와 고민도 나누는 낭만적인 모습을 꿈꾸기도 했지만 교수가 되는 길은 나에겐 너무 먼 길이었다.ㅡㅡ;;;;

 그 낭만에 대한 미련이 아직 남은 탓인지 나는 간혹 정말 나와 상관없는 학교라도 근처에 대학교가 있으면 괜히 들어가서 캠퍼스를 거닐어 보곤 했다. 그러다 시간이 맞으면 학생 식당에 가서 밥을 먹기도 했다. 다른 의미는 없고 그저 재미삼아 몇 번 그랬던 적이 있었다. 국내 여행 중에도 괜히 그 지역 대학을 들어가 보기도 했다.


 캠퍼스를 무대로 삼아 내 생활을 펼칠 시간은 이제 없겠지만 그렇게 나마 대학의 낭만을 회상하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다. 시카고 대학을 거닐다가도 그 생각을 떠올렸다.    

  

 “우리 학생 식당가서 점심 먹어 볼래?” 그게 무슨 짓이냐 하는 얼굴로 날 보던 승연이도 내 얘기를 듣고는 그 나름의 여행의 재미라고 생각했는지 찬성했고 캠퍼스 지도를 보고 학생 식당을 찾아 보았다. 식당으로 보이는 곳을 몇 군데 발견한 후 가장 가까운 곳으로 길을 잡았다. 가다보니 근처에 중앙 도서관을 보여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역시 그 대학의 상징은 중앙 도서관이다.


 ‘이야~ 여기가 미국 대학의 도서관이구나!’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출입증을 찍는 보안대를 거쳐야 출입이 가능한 곳이라 밖에서 흘깃 넘어다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아깝다야... 안에 들어가 보고 싶은데...” 안되는줄 알면서도 나는 하릴없이 혼자말로 내뱉었다.

 “제가 한번 물어볼까요? 안에 들어가 볼 수 있는지?” 승연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내 말을 듣고 얘기했다.

 “응? 에이 설마...우릴 왜 들여보내 주겠어? 됐어. 그냥 가자.” 매사에 포기가 빠르고 소심하기까지한 나는 당연히 시도해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얘기했다.

 “잠깐만 있어봐요. 저기 담당자처럼 보이니까 제가 가서 얘기만 해 볼 께요.”

 “아니, 그게 될 리가...”     


 내가 갖지 못한 부분을 가진 승연이는 낯선 이와 얘기하고 정보를 얻는 데 익숙했다. 그것도 외국에서...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승연이와 출입 보안대 앞 책상에 앉아 있는 담당자로 보이는 덩치 큰 흑인 남성과의 대화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무얼 적어주고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승연이가 돌아와서 얘기했다.      


 “안 된데지?” 돌아 오길래 당연히 안 된다는 소식을 전하러 왔나보다 생각하고 내가 물었다.

 “일일 패스를 발급해준데요. 참관 삼아 들어가 볼 수 있데요.”

 “우와? 진짜로? 신기하다. 무슨 관광지도 아니고... 근데 대단하다 너. 그걸 물어볼 생각을 하다니. 나 혼자 왔으며 애초에 생각도 못했을 텐데... 진짜 놀라워.”

 “별 것도 아닌데요 머. 근데 출입증 발급하려면 이름하고 알아야 된데요. 이리와요.” 우린 그 담당자에게로 갔다. 내 이름을 묻길래 수차례 얘기했다. 내 발음이 안좋기도 하고 약간 어려운 편이라 한국에서도 한 번에 알아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제대로 발음 해 주는 사람도 잘 없었다. 하물며 외국 사람이 내 이름을 쉽게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몇 번의 반복과 수정에도 불구하고 내 이름의 영어 타이핑이 어긋났지만 대충 해도 되겠다 싶어 적당한 때에 ‘예스, 오케이’라고 대답하고 출입권을 받은 후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한 후 보안대를 통과했다.

이전 19화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