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스카고의 마천루 스카이덱
간혹 얼음을 더 달라 던지 물을 달라 던지의 주문을 할 때면 거구의 점원은 멋진 스웩의 친절한 대답을 해주었다. 벌써 몇 번째 먹는 피자이지만 스웩 넘치는 점원과 활력 가득찬 가게의 분위기에 가게 마다 조금씩 맛이 다른 덕에 물리는 느낌 없이 이번에도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역시나 적당한... 점원들에게가 아닌 여행자들인 우리들에게 적당한 액수의 팁을 포함한 돈을 계산서에 소중히 넣어 테이블 위에 놓아 두고 일어났다.
배부른 우리는 오늘 밤의 마지막 목적지인 시카고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스카이 덱으로 갔다. 고속으로 상승하강을 반복하는 승강기를 타고 전망대에 올랐을 때는 해가 뉘였뉘였 저물어 가는 때라 도시 넘어 하늘에서 뻗어오는 붉은 빛이 도시 전체를 덮고 있었다.
미국의 야경을 도시 한가운데에서 보게 된 건 처음이었다. 도심 복판에 우뚝 우뚝 솟아 있는 고층 건물들을 둘러싼 외곽의 나지막한 집들이 확실한 대비를 이루어 고층 건물에 올라 있는 상승감이 더욱 두드러지게 느껴졌다.
마치 도심 주위로 둘러싸인 활주로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결과물을 확신할 순 없지만 사방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도심 자체가 알아서 입체감을 주고 화려함을 가졌으니 구도와 각도 상관없이 찍기만 해도 모두 작품이 될 것만 같았다. 사면을 돌아다니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감탄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러는 동안 도시는 완전히 어두워지며 온전한 야경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올라가서 알게 된 것이지만 바닥이 유리로 된 곳은 다행히 일부에 한정되어 있었고 그 곳을 스카이 덱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그 스카이 덱 뒤로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모두 열심히도 인생 샷들을 남기고 있었다.
평소 높은 곳에 대한 공포감이 있거나 놀이 기구 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없었던 나도 가장 짧아 보이는 줄 뒤로 가서 섰다. 뒤에 서서 보니 혼자 온 사람들은 그 다음 차례의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주기도 하는 아주 정다운 장면이 보였다. 간혹 이제 좀 고만 찍어도 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다양한 각도와 표정과 포즈를 연출해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분 안되는 시간 안에 사진 촬영을 마치고 나왔다.
생각보다 길지 않은 시간에 나의 두 다리는 스카이 덱에 올라섰다. 내 발밑에서 나를 떠받치고 있는 지지대는 확실하고 든든하게 염려할 것 없이 발에 밟히긴 하지만 눈으로 정확히 볼 수는 없는 그 곳. 아래로 떨어지면 두말 할 것 없이 가루가 되고 말겠구나 라고 느껴지는 그 곳에 섰을 때 고소공포증을 글로만 알았던 나는 서서히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분을 느꼈고 저어 아래 멀리서 느껴지는 간질간질한 듯 저릿저릿 한 듯 안절부절하지 못하게 만드는 기분을 느끼며 미리 화장실에 다녀오기를 그나마 잘했다는 안도의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서 있기가 조금 어렵고 그렇다고 앉으려니 그것 또한 여의치 않은 그런 오묘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기다린 시간이 아깝고 한 번 벗어나면 내 발로 다시 올라서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 생각으로 빠르고 잽싸게 여러사진을 찍었고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외국인에게 친절히 사진을 찍어달라는 얘기까지 잊지 않고 결국 충분한 양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머물렀다가 내려섰을 때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생소한 기분에 이것이 여행이 주는 새로움의 발견이라는 것이구나 라는 깨달음을 또 한번 얻었다. 그에 반해 너무나도, 심지어 아무런 감흥이 없어 보이는 승연이는 동요함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자태로 내려와 나에게 ‘겁이 많네요.’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어떻게 저기 올라서서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어?”
“난 안 무섭던데. 오빠 겁이 많네요.”
이번 경험으로써 나는 고소공포증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깊어졌음을 스스로 알 수 있었다. 앞으로는 누가 나한테 자기는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하면 그 마음 십분 이해하노라고 얘기해 줄 수 있을 꺼였다. 나의 배려의 폭이 넓어졌음에 뿌듯했다.
스카이 덱의 짜릿한 느낌과 교훈의 여흥을 안고 전망대를 다시 한 바퀴 돌아보며 시카고 야경과의 이별을 준비했다. 한동안 멍하니 야경에 빠져있던 우리는 아쉬움과 인상 깊은 경험을 안고 건물을 내려왔다. 오늘이 시카고에서의 마지막 밤이라 생각하니 처음 이 곳 지하철 역에 내려서 동네를 바라 봤을 때가 생각나며 검은 도시의 낭만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