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처음 만난 시카고 피자
시카고로 이동하는 날이다. 오후 비행기라 늦으막하게 일어나 늑장을 부리다 풀어두었던 짐을 쌌다. 짐을 풀고 싸는 것이 나름 재미가 있었다. 풀 때는 새로운 곳에 나를 내려놓는 것 같은 재미, 짐을 쌀 때는 나를 거두어 새로운 곳으로 가는 재미, 이래저래 재미가 있었다. 메고 갈 짐이 줄어들 때는 또한 더 재미가 있었다.
호텔 로비로 내려가 체크 아웃을 하러 갔다. 방키를 건네주고 멋진 호텔을 떠나야하는 아쉬움과 서운함 가득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많은 금액을 추가로 지불하란다. “왜?” 짠한 마음이 싹 달아나 물어보니 호텔방 안의 냉장고에 준비된 음료와 음식들은 가격이 비싸니까 밖에서 음식들을 사와 냉장고에 넣어 두고 먹느라 원래 안에 있던 음식들을 밖으로 빼뒀다가 나오기 전에 다시 안으로 넣었는데 내가 이런 짓 한 걸 알고 있는 거였다. 무시무시하다. 이런 걸 알다니... 이런 걸 방지하느라 냉장고 내부에 먼 센서가 달린 듯했다.
데스크 직원이 냉장고 안의 음식들을 밖으로 빼면 먹은 것으로 인식된다고 했다. 준비된 음료들은 먼저 먹고 후에 밖에서 사와서 채워 놓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한 듯했다. 냉장고를 사용하기 위해 그랬던 것이라고 먼저 먹고 나중에 채워 놓은 것이 아니라고 열심히 억울하게 설명했다. 불쌍하게 애 얼굴에 억울함이 범벅된 게 안 돼 보였는지 이번엔 그냥 넘어가 주겠다며 다음부턴 그런 짓 안 하는 게 좋다고 마음 좋게 얘기해 주었다. 봐준다고 하니 그게 또 얼마나 고마웠던지 진심을 다해 “Thank you very much!”라고 얘기 했다.
생각지도 못한 한 방을 잘 피하고 주위에서 간단히 점심 식사를 마친 후 곧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그 시절의 시카고 불스와 재즈의 도시. 이것이 내가 아는 시카고에 대한 전부였다. 미술을 전공한 승연이는 자기가 엄청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이 걸려있는 미술관이 있다며 그곳에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행기에 탑승했고 이륙했고 다시 착륙했다. 시카고 공항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승연이가 미리 알아봐두고 예약해 둔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시카고의 지하철을 타고 숙소 근처의 역에 내렸을 때는 이미 해가 질 무렵이었다. 우리가 내린 역은 3층 정도 높이의 지상 구간이었다. 지대가 높은 덕에 도착하자마자 적당한 높이에서 동네를 내다 볼 수 있었다.
어둠이 뉘엿뉘엿 내린 동네의 정취는 고즈넉하고 고요했다. 처음 내려 만난 동네의 느낌이 그렇다 보니 시카고는 고요하고 단아한 곳이구나 라는 인상을 받게 되었다. 기대와는 달리 너무나도 평화로워 보이는 정경에 한 번 반하고 지하철 역을 빠져나와 뒤돌아 본 지하철 역이 너무 예뻐서 또 한 번 반했다. 지하철 역을 이렇게 이쁘게 만들어 놓다니...역 앞에서 사진을 몇 장 남기고 숙소로 향했다.
어둠이 내린 시카고 한 어귀의 분위기에 취해 숙소를 찾아 가는 일보다 이리저리 둘러 보는 것에 더 열중했다. 귀여운 간판을 단 도너츠 가게를 지나고 사거리를 지나 어둠을 희미하게 밝히는 피자 가게가 앞에 보였다.
“시카고 하면 피자지!”
“어때? 피자 한 조각 먹고 갈래?”
“좋아요! 여기 너무 멋져요. 피자에 맥주를 먹지 않을 수 없어.”
나는 배낭을 멘 채, 승연이는 큰 캐리어 가방을 끈 채 피자 가게로 들어갔다. 사람이 붐비지는 않았고 곳곳의 테이블에서 몇몇 사람이 얘기를 나누며 피자를 먹고 있었지만 활기찬 분위기라기 보다는 늦은 새벽 외진 식당의 휑하고 쳐진 분위기가 맴 돌았다.
낯선 분위기의 눈치를 살펴가며 테이블 사이를 헤치고 가게 안쪽 깊은 곳에 있는 주문대로 가 치즈 피자와 페페로니 피자 한 조각씩을 주문하고 맥주 한 병씩을 추가로 주문했다. 갈색 곱슬머리의 젊은 청년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우리를 보며 주문을 받았다. 그 흥미로운 눈빛에 쭈뼛쭈뼛 기다리자 맥주 한 병과 커다란 피자 한 조각이 은박접시에 올려 져 내 손에 들렸다.
안에서 먹기가 약간 무서워서 손에 짐과 피자 등등을 바리바리 쥔 채로 우린 가게를 나섰다. 가게 앞에서 먹고 갈까 하다 앉아서 먹는 것보다 걸으면서 먹으면 더 자유로운 기분이 날 것 같아 길을 가면서 먹기로 했다. 은박 접시에 한 조각씩 올려 진 피자 조각을 들고 맥주를 들고 각자의 짐을 지고 끌며 길을 걸었다.
‘와~ 레알 시카고 피자다~!’ 내 손엔 진짜 시카고에서 산 피자가 들려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출출하기까지 했던 나에게 시카고 거리를 걸으며 먹은 피자 한 입과 맥주 한 모금은 그렇게 또 맛있을 수가 없었다.
혀 끝으로 설렘을 느끼게 해주는 피자와 맥주는 시카고의 밤 길 귀퉁이를 지나며 어느 새 빈병과 은박접시만 덩그러니 남긴채 사라지고 olivia shop이란 잡화점을 기준으로 찾아간 게스트 하우스에 마침내 도착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늦은 체크인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