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캐년 헬기투어
라스베가스의 한낮은 너무나도 뜨거웠다. 뜨거운 태양아래에 건조한 바람을 맞고 있노라면 금방이라도 반건조 오징어가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몇 시간 뒤면 그랜드 캐년 투어를 출발하기로 한 시간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이례적으로 넘쳐나는 시간과 체력을 갸날픈 경제력으로 커버하기로 큰 마음 먹은 일정이었다. 며칠 정도 캠핑카로 협곡의 깊숙한 구석구석을 돌아다녀 보는 것이 진정한 여행가의 낭만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데일 것 같은 햇빛이 나의 낭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나는 작렬하는 태양에 그리 친화적이지 않다.
방으로 돌아가 딱히 준비할 것은 없지만 숨 한번 크게 쉬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픽업 포인트로 향했다. 초행길은 역시 보기와 생각보다 찾아가기 어렵다. 약속장소를 헤맨 까닭에 약속시간보다 7분정도 늦게 부랴부랴 도착했다. 이대로 큰 돈을 라스베가스의 허공에 뿌리고 마는 건가 했는데 걱정과 달리 다행스럽게도 버스에서 내려 우리를 기다리던 기사님이 밝은 웃음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외국인의 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에 한시름 푹 놓였다. 몇 군데의 호텔을 더 들리며 다른 예약객들을 태운 후 1시간 가량을 달려 비행장에 도착했다.
‘평생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비행장이란 데를 미국에 와서 두 번이나 가다니...새로운 여행 맞네!!’
대기실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비행에 대한 안내와 교육이 이루어졌다. 우리가 탈 헬리콥터를 조종할 조종사와 동승할 일행들이 모였다. 나와 승연이를 비롯한 중국인으로 보이는 부부와 어느 서양 부부 이렇게 총 6명이 일행이 되었다. 조종사는 훤칠한 키에 아주 잘생긴 전형적인 백인 미국인 인상을 풍기는 남자로, 시작부터 일행들로부터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외국영화에서 자주 들리던 굵은 목소리로 대중을 향한 영어 안내가 끝난 후 우리를 보며 아주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다시 또박또박 단어를 설명을 해주었고 대충 알아듣는 듯한 기미를 보이자 안심한 얼굴로 웃어주었다. 그 후로도 이 친절하고 배려심 있는 조종사는 필요할 때마다 우리에게 단어 설명을 해주었다.(땡큐 쏘 머치!!) 탑승 전에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탑승 후에 프로펠러의 소음을 어떻게 차단하는지 등의 안내를 받은 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헬리콥터를 만나러 비행장으로 나갔다.
헬리콥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올라탔다. 현장에서 십여 달러를 더 지불해서 나와 승연이는 조종사 바로 옆자리 그러니까 앞 전망이 훤히 보이는 앞좌석에 앉았다. 제대로 작정하고 돈지랄을 한 셈이다. 앞좌석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시야가 확 트이고 좋았다. 역시 지랄 중에 상지랄은 돈지랄이다! 내가 선택한 것이긴 하지만 미국이란 나라는 돈을 쭉쭉 빨아대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중 이 라스베가스는 단연 으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서서히 떠올랐다. 난생처음 타보는 헬리콥터의 그 두둥실 떠오르는 느낌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이럴수가 헬기를 타게 되다니...그것도 이 라스베가스에서...와~~’ 또 다시 감격스러움이 벅차 올랐다. 엄청난 프로펠러의 소음은 차음기로 막혀 있었지만 좌석의 앞과 위가 전창으로 된 덕에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햇볕이 온몸에 그대로 내리 쬤다. 실내 에어컨 덕에 덥지는 않았지만 그 햇볕을 머리 꼭대기부터 쪼이며 투어를 하는 건 다소 복 터진 고역이었다.
창공을 누비며 눈 앞에 펼쳐지는 멋진 풍경과 차음기내의 이어폰으로 들리는 미국 남자 조종사의 멋진 목소리로 읊어지는 안내...대부분 알아 들을 수 없어 BGM같은 느낌을 받으며 그저 그 분위기에 취해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다른 헬리콥터가 웅장한 배경과 겹쳐서 장관을 만들어냈다. 붉은 빛의 거대한 협곡을 지나고 하버댐을 날아 40분 가량의 비행 끝에 우린 어느 평평한 곳에 착지했다.
여기서 잠시 쉴 겸 경치 구경을 하고 다시 돌아간다고 한다. 너무 거대해서 와 닿지 않는 규모의 협곡에 내려 투어 측에서 준비해 준 간단한 간식으로 샌드위치와 와인, 과자들을 먹고 여기 저기서 사진을 찍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책으로 또는 영상으로 듣고 보던 동경해 오던 그랜드 캐년을 배경으로 발을 딛고 하늘을 쳐다보니 감개무량 했다. 직접 와서 보니 캠핑투어로 깊숙이 다녀보지 않은 것이 약간 아쉬웠다.
헬기가 착륙한 평지에서 돌아다닐 곳은 그리 넓지는 않았다. 사진도 찍을 만큼 찍고 다과 시간도 충분히 가진 후 다시 헬리콥터에 탑승했다. 돌아가는 길은 올 때와는 다른 방향으로 사막 위를 비행해서 간다고 했다. 심지어 사막이라니....그랜드 캐년에 사막에 헬기에...몇 시간의 투어 안에 새로움과 내가 동경하던 것들이 꽉 차 있었다. 미국 여행 중 라스베가스에서 머문 며칠 사이에 가장 많은 비용이 지출 되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래도 큰 돈 내고 타는 거니 뭐라도 건지자 싶어 핸드폰 동영상 촬영을 시작하고 헬리콥터 정면 유리창 아래에 대충 붙였다.
사막 위를 날아 가며 우리의 센스 있는 조종사는 배경음악으로 eagles의 Hotel California를 깔아 주었다. 차음기겸 헤드폰에선 음악이 흘러나오고 눈 앞은 대지를 가득 채운 모래밭,, 점점이 붙어 있는 생명력 있어보이는 풀들이 펼쳐진 너무나도 낯선 풍경의 사막이 발 밑을 필름처럼 흘러가는 장면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황홀경이었다. 다만 아쉽게 헤드폰으로 다른 여행객들의 수다까지 들어오는 탓에 분위기에 푹 젖지 못해 짜증이 좀 났다. 끝없이 산만한 수다를 억지로 차단해내며 혼자만의 분위기에 집중하는 동안 헬리콥터는 출발했던 비행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헬리콥터가 착륙을 하고 프로펠러가 멈춘 후 땅에 발을 딛었다. 다시 올 일은 없을 것인데다 다시 온다 해도 이런 감흥은 이제 없을 거란 약간 서글픈 생각을 하며 호텔로 데려다 줄 셔틀 버스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