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어렸을 적 시골에서 살았다. 기와집이 다닥다닥 붙어서 한 동네를 이루고 주변에는 논과 밭이 끝없이 펼쳐져있는 시골 말이다. 시골에서 자란 아빠는 삶은 감자를 원 없이 먹었고 나물반찬을 매일같이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에 나물반찬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며 아빠의 식성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짜고 시고 자극적인 것들을 좋아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콩나물이나 시금치를 무쳐놓으면 남기가 일쑤였다. 깔끔하게 한 그릇을 비워낸 걸 본 적이 잘 없었다. 아빠는 배달음식도 좋아해서 배달의 민족을 깔기까지 했다. 신랑도 느끼하다며 손을 젓는 크림 스파게티도 고소하고 맛있다며 잘 드시는 아빠를 보며 아빠가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란 걸 잊을 정도였다.
그런 아빠가 주말만 되면 나물을 뜯어온다. 제철음식이 보약이라며 온갖 종류의 나물을 뜯어왔다. 나는 아빠가 뜯어온 게 나물이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아빠가 나물을 뜯는 모습을 떠올리는 게 더 놀라웠다. 이제껏 아빠가 나물을 뜯으러 간 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대부분의 시간에 일을 했고 일요일이 되어서야 취미로 스크린 골프를 치거나 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것 말고는 아빠가 다른 취미를 가지거나 다른 걸 하는 걸 본 적이 없어서 더 낯설었는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아빠는 엄마가 십 년이 넘도록 하고 있는 연수원에도 잘 가지 않았다. 외진 곳에 있고, 시골이어서 가서 할 게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엄마는 그동안 여러 작물들을 키워냈는데 아빠는 무언가를 키우고 수확하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가 보다 생각했었다.
그랬는데 엄마가 가꾸고 일구는 그곳에서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그것도 아빠랑 비슷한 연배의 남자 친구들끼리 가서 나물을 뜯어오다니. 오직 나물을 캐기 위해 약속을 잡고 함께 나서는 아저씨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빠가 처음 뜯어온 나물은 머구 나물이었는데 그 양이 너무 많아서 다들 깜짝 놀랐다. 무쳐먹고도 양이 많아서 장아찌까지 담았다. 머구 나물은 특유의 씁쓸한 맛이 있었는데 나는 이제껏 그 특유의 씁쓸함을 모르고 살았었다. 하지만 나물의 생김새가 낯설지 않은 걸 보니 제철이 되어 나물반찬이 올라와도 잘 먹지 않은 탓이었다. 덕분에 아빠가 뜯어오지 않았을 때부터 우리 집에는 제철이 되면 나물반찬이 꾸준히 올라왔었다는 걸 기억해낼 수 있었다. 아빠가 나물을 완전히 잊고 산 건 아니라는 게 오히려 반가울 지경이었다. 그래야 아빠가 나물을 뜯으러 가는 게, 나물을 그렇게나 많이 뜯어 오는 게 조금은 납득이 갔기 때문이다. 아니면 아빠가 너무 다른 사람 같아서 낯설 지경이었다.
나는 그런 아빠 덕분에 요즘 나물의 참맛을 느끼고 있다. 머구 나물은 씁쓸하지만 뒤로 갈수록 쓴 맛이 옅어지고 나물 특유의 향이 입안 가득 퍼져서 자꾸 손이 간다. 아마 아빠가 뜯어왔다는 수고로움이 없었다면 그렇게 쓴 나물은 먹자마자 놀라서 뱉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거기다 가죽나물은 또 얼마나 찰지게 맛있는지. 그 특유의 향은 어디서도 맡아본 적이 없는 오묘한 향이 었는데 그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면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가죽 나물 특유의 식감은 또 얼마나 좋은지 어떤 고기반찬도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아빠의 나물 뜯는 수고로움에 나는 점점 나물 박사가 되어가고 있었고, 나의 입맛도 건강하게 자연으로 복귀하고 있었다.
아빠는 그렇게 여러 종류의 나물을 뜯어 오더니 어느 날은 나물을 뜯으러 가서 만들어 먹었다며 진달래 화전을 가져오기도 했다. 아빠가 그 순간 새색시같이 예쁘게 보인 건 전에 부쳐진 고운 진달래 때문이었을까. 진달래 화전은 거의 처음 먹어보았는데 달짝지근한 게 입맛에 딱 맞았다. 겉에 달달하게 설탕을 뿌려놓았는지 아까워서 못 먹겠다는 생각은 어디로 가고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다음에는 옻나무를 가져오고, 오늘은 엄청 큰 오디를 따왔다. 엄마가 하는 연수원 근처 산책로에는 뽕나무가 많아 어렸을 적부터 오디를 수도 없이 봤었다. 그런데 그렇게 큰 오디는 처음이었다. 짓무른 곳 하나 없이 멀쩡하면서 큰 오디는 꼭 모든 오디를 대표하는 모범생같이 생겨서 파는 것만 같았다. 나는 또다시 그 오디를 먹어도 되나 고민에 잠겼지만, 싱싱할 때 먹어야 최상의 맛을 느낄 수 있으니 얼른 입으로 집어넣었는데 달달한 게 꿀맛 같았다. 오디도 지금, 이 계절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데 자꾸 가서 나물 뜯어오듯이 귀한 제철 재료들을 뜯어오는 아빠 덕분에 나는 점점 더 건강해지는 것 같다. 도시에 살면서도 주말이면 나물을 뜯으러 가는 아빠가 있어서 제철 보약을 매주 달여먹고 있는 기분이다.
달이면 달일수록 효험이 좋다는 보약처럼 처음부터 좋았던 아빠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지기만 하는데 그런 아빠가 이제 새로운 취미를 찾아서 나물을 뜯어온다. 나는 그런 아빠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런 아빠의 새로운 취미를 격하게 응원하는 딸이 있다는 걸 아빠는 알까. 나도 아빠만큼이나 살갑지가 않아서 속에 있는 사랑을 부끄러워 겉으로 다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아빠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느끼는 것처럼 아빠도 꼭 느꼈으면 좋겠다. 아빠가 가져온 보약을 먹고 우리 가족 모두 봄을 얼마나 수월하게 보냈는지, 다가오는 여름을 대비할 수 있었는지 말이다.
아빠 스스로는 점점 더 힘이 빠지고, 설 자리가 없어지는 약한 할아버지가 되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도, 우리에게는 그 누구보다 힘세고 용감한 히어로라는 걸 아빠가 알았으면 좋겠다. 그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