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주려 산 장난감이 꼭 내 모습 같더라
완제품 상자에서 호스가 빠져있던 그 장난감.
첫째는 하루 종일 내게 놀아달라 하는데 아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놀아주지 못해도 떼를 쓰지 않는 그런 아이였다. 아이이지만 어느 정도 타협도 하고 엄마의 고단함을 이해해주는 순한 아이 었다.
그래서 나는 더 미안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미안함은 늘 어떻게 하면 아이와 더 신나는 시간을 보내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아이의 놀이를 도와줄 재료들을 끊임없이 찾아다녔다.
어느 날은 떼었다 붙였다를 무한 반복할 수 있어 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하다는 티비 광고를 보고 장난감을 덥석 샀다. TV에서 방영되는 아이 장난감 광고는 마치 홈쇼핑과 같아서 아이들이 너무나 신나는 표정으로 하고 있는 걸 보니 꼭 내 아이도 그럴 거 같았다. 그런데 사고 나면 생각보다 빛을 발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이번에도 역시나였다. 7세 아이가 가지고 놀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밋밋했다. 거기다 야광 기능도 TV에서 볼 때는 깜깜한 밤을 빛낼 만큼 밝았는데 막상 받아보니 그 주변도 제대로 비추기 힘들 만큼 약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또 어땠는지.
아이에게 가장 좋은 추억을 선물하고 싶어 인터넷 쇼핑몰을 얼마나 뒤졌는지 모르겠다. 육아 관련 블로그부터 이것저것 많이도 찾아보았다.
그러다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겠다 싶은 걸 발견했다. 오르골처럼 전원 버튼을 누르면 끌 때까지 무한으로 원통이 돌아가는데 그 원통에 비치는 문양들이 온 방안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내가 어렸을 적 이런 것이 있었다면 나는 매일 밤 그 문양들이 돌아가는 방 안에서 황홀한 꿈을 꿨겠지 하며 아이가 부러울 정도였다. 그 선물은 아이에게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더 문제가 됐다. 온 방안을 비출 정도로 강한 빛이어서 그 빛을 직접적으로는 보지 못하도록 해야 했는데 제어가 불가능했다. 이방저방 들고 다니며 그 빛을 그대로 쳐다봐 버렸다. 아이는 재밌게 노는데 눈이 상할 만큼 강한 빛이라 나는 마음이 녹아내리는 거 같았다.
그렇게 나는 건전지가 들어있지 않은 장난감처럼 아이의 장난감을 고르는데 불량이 되고는 했다.
책 읽기를 중요시하는 나로서 책은 아이에게 가장 주고 싶은 선물이었다. 한 권 한 권 정성껏 골라 책이 도착했을 때 아이는 책이 읽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책을 읽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며 거의 반강제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책을 읽고 나서는 아이도 흡족해했지만 책을 읽게 하는 방법이 좀 더 유연하고 현명할 순 없었을까 후회했다.
아이가 목욕을 하며 갖고 놀았던 장난감들에 물때가 잔뜩 끼어 그 장난감을 모두 버려버렸다. 아이는 하나 남은 바가지를 가지고도 별 불만 없이 목욕을 했다.
그럼에도 장난감이 없어졌으니 장난감을 새로 사줘야겠다 또 마음을 먹었다.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 장난감 두 개를 샀다. 하나는 알 모양에 윗부분이 깨져있고 병아리가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는 장난감이었다. 그 장난감을 물속에 넣었다 빼면 물조리개처럼 알에 있는 구멍들에서 물이 나왔다.
아이는 말랑말랑한 걸 조물딱 조물딱 거리며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해서 아이에게 딱이겠다 싶었다.
집에 도착한 알 장난감을 봤는데 딱딱한 재질로 되어 있었다. 누르는 압력으로 물이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물에 넣으면 물이 채워져 나오는 방식이었다. 이미 거기서 한 번은 멘붕이 왔는데 나머지 장난감 하나가 더 문제였다. 건전지가 들어가고 벽에 부착해서 바디클렌져를 넣으면 거기서 거품이 뿜어져 나오는 장난감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새 박스 겉면에 상세히 그려진 장난감 부품들 중 하나가 없었다. 나는 혹시나 해서 박스를 뒤집어 보기도 하고, 뜯은 자리 주변을 샅샅이 뒤져도 보았지만 처음부터 없었으니 당연히 나올 리가 없었다. 잔뜩 기대한 표정으로 장난감이 작동되기를 기다리는 아이의 눈을 보며 장난감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정말 죄송하다며 장난감 만드는 공장에서 부품을 빼고 포장을 한 것 같다고 얘기했다. 황당했지만 벌어진 일이었고 기대에 부푼 아이 앞에서 나는 수습이란 걸 해야 했다.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함께 기다리자고 하는 게 가장 솔직한 방법인 것 같았다.
아이는 몹시 아쉬워했지만 그 또한 받아들였다. 그래서 더 겸연쩍고 더 미안해졌다.
중요 부품이 빠진 장난감을 상자에 넣는데 꼭 내 모습을 보는 거 같았다. 아이에게 언제나 진심이지만 2%는 무슨, 98%가 모자라서 늘 헤매는 엄마. 그게 나였다. 그 장난감도 부품 하나일 뿐이지만 그 부품이 없으면 아예 작동하지 않아 부품이 몇 개가 부족한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도 그랬다. 마음은 늘 진심이지만 장난감 고르는 안목이 떨어져 아이를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엄마가 처음이라 그랬다는 말로 내 안목을 정당화시키고 싶진 않았다.
아이가 어떤 장난감을 주면 좋아할까를 고민할 때 내게 필요한 건 검색이 아니었다. 내가 놓친 건 아이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이가 요즘 어떤 놀이에 관심이 많은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아이의 장난감을 사기 위해 휴대폰이나 컴퓨터에 집중해서 시간을 보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오늘부터 아이에게 어떤 장난감을 사줄까 고민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와의 시간을 행복하게 채워줄까 고민하는 엄마가 되어야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