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하영 Feb 13. 2021

널 주려 산 장난감이 꼭 내 모습 같더라

완제품 상자에서 호스가 빠져있던 그 장난감.

 첫째는 하루 종일 내게 놀아달라 하는데 아이가 원하는 방으로 놀아주지 못해도 떼를 쓰지 않는 그런 아이였다. 아이이지만 어느 정도 타협도 하고 엄마의 고단함을 이해해주는 순한 아이 었다.


그래서 나는 더 미안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미안함은 늘 어떻게 하면 아이와 더 신나는 시간을 보내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아이의 놀이를 도와줄 재료들을 끊임없이 찾아다녔다.


어느 날은 떼었다 붙였다를 무한 반복할 수 있어 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하다 티비 광고를 보고 장난감을 덥석 샀다. TV에서 방영되는 아이 장난감 광고는 마치 홈쇼핑과 같아서 아이들이 너무나 신나는 표정으로 하고 있는 걸 보니 꼭 내 아이도 그럴 거 았다. 그런데 사고 나면 생각보다 빛을 발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이번에도 역시나였다. 7세 아이가 가지고 놀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밋밋했다. 거기다 야광 기능도 TV에서 볼 때는 깜깜한 밤을 빛낼 만큼 밝았는데 막상 받아보니 그 주변도 제대로 비추기 힘들 만큼 약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또 어땠는지.

아이에게 가장 좋은 추억을 선물하고 싶어 인터넷 쇼핑몰을 얼마나 뒤졌는지 모르겠다. 육아 관련 블로그부터 이것저것 많이도 찾아보았다.


그러다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겠다 싶은 걸 발견했다. 오르골처럼 전원 버튼을 누르면 끌 때까지 무한으로 원통이 돌아가는데 그 원통에 비치는 문양들이 온 방안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내가 어렸을 적 이런 것이 있었다면 나는 매일 밤 그 문양들이 돌아가는 방 안에서 황홀한 꿈을 꿨겠지 하며 아이가 부러울 정도였다. 그 선물은 아이에게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더 문제가 됐. 온 방안을 비출 정도로 강한 빛이어서 그 빛을 직접적으로 보지 못하도록 해야 했는데 제어가 불가능했다. 이방저방 들고 다니며 그 빛을 그대로 쳐다봐 버렸다. 아이는 재밌게 노는데 눈이 상할 만큼 강한 빛이라 나는 마음이 녹아내리는 거 같았다.


그렇게 나는 건전지가 들어있지 않은 장난감처럼 아이의 장난감을 고르는데 불량이 되고는 했다.


책 읽기를 중요시하는 나로서 책은 아이에게 가장 주고 싶은 선물이었다. 한 권 한 권 정성껏 골라 책이 도착했을 때 아이는 책이 읽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책을 읽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며 거의 반강제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책을 읽고 나서는 아이도 흡족해했지만 책을 읽게 하는 방법이 좀 더 유연하고 현명할 순 없었을까 후회했다.


아이가 목욕을 하며 갖고 놀았던 장난감들에 물때가 잔뜩 끼어 그 장난감을 모두 버려버렸다. 아이는 하나 남은 바가지를 가지고도 별 불만 없이 목욕을 했다.


그럼에도 장난감이 없어졌으니 장난감을 새로 사줘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 장난감 두 개를 샀다. 하나는 알 모양에 윗부분이 깨져있고 병아리가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는 장난감이었다. 그 장난감을 물속에 넣었다 빼면 물조리개처럼 알에 있는 구멍들에서 물이 나왔다.

아이는 말랑말랑한 걸 조물딱 조물딱 거리며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해서 아이에게 딱이겠다 싶었다.


집에 도착한 알 장난감을 봤는데 딱딱한 재질로 되어 있었다. 누르는 압력으로 물이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물에 넣으면 물이 채워져 나오는 방식이었다. 이미 거기서 한 번은 멘붕이 왔는데 나머지 장난감 하나가 더 문제였다. 건전지가 들어가고 벽에 부착해서 바디클렌져를 넣으면 거기서 거품이 뿜어져 나오는 장난감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새 박스 겉면에 상세히 그려진 장난감 부품 중 하나가 없었다. 나는 혹시나 해서 박스를 뒤집어 보기도 하고, 뜯은 자리 주변을 샅샅이 뒤 보았지만 처음부터 없었으니 당연히 나올 리가 없었다. 잔뜩 기대한 표정으로 장난감이 작동되기를 기다리는 아이의 눈을 보며 장난감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정말 죄송하다며 장난감 만드는 공장에서 부품을 빼고 포장을 한 것 같다고 얘기했다. 황당했지만 벌어진 일이었고 기대에 부푼 아이 앞에서 나는 수습이란 걸 해야 했다.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함께 기다리자고 하는 게 가장 솔직한 방법인 것 같았다.

아이는 몹시 아쉬워했지만 그 또한 받아들였다. 그래서 더 겸연쩍고 더 미안해졌다.


중요 부품이 빠진 장난감을 상자에 넣는데 꼭 내 모습을 보는 거 같았다. 아이에게 언제나 진심이지만 2%는 무슨, 98%가 모자라서 늘 헤매는 엄마. 그게 나였다. 그 장난감도 부품 하나일 뿐이지만 그 부품이 없으면 아예 작동하지 않아 부품이 몇 개가 부족한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도 그랬다. 마음은 늘 진심이지만 장난감 고르는 안목이 떨어져 아이를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엄마가 처음이라 그랬다는 말로 내 안목을 정당화시키고 싶진 않았다.


아이가 어떤 장난감을 주면 좋아할까를 고민할 때 내게 필요한 건 검색이 아니었다. 내가 놓친 건 아이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이가 요즘 어떤 놀이에 관심이 많은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아이의 장난감을 사기 위해 휴대폰이나 컴퓨터에 집중해서 시간을 보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오늘부터 아이에게 어떤 장난감을 사줄까 고민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의 시간을 행복하게 채워줄까 고민하는 엄마가 되어야지 생각했다.





작가의 이전글 무늬 없는 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