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 퇴근하고 올 때면 실제로 아무리 무거운 날이라도 기를 쓰고 아이까지 안고 일어나 현관으로 나가보면서 말이야.
아빠. 나 정말 나쁘다 그렇지?
이제껏 알면서 왜 싫은 소리, 핀잔 한 번 안 줬어.
나 아빠 가면 얼마나 후회하라고 그걸 두고만 봤어.
아빠가 보석 다루듯 귀히 여기고,
꽃 가꾸듯 정성과 사랑으로 날 키워서
신랑을 만날만큼 커놓고 정말 나쁘다 그렇지?
한 발짝 더 노력할게.
어색하게 웃는 것도 입꼬리 활짝 올려 더 예쁘게 웃고, 아빠가 오면 나 정말 버선발로 달려갈게.
말도 더 사근사근 예쁘게 하고 아빠의 말에 수긍도 많이 하고 더 공감하는 아빠 딸이 될게.
아빠와의 식사시간
아빠 정말 화가 나고 성질이 났을 거 같은데 아빤 왜 나한테 티를 한 번 안 냈어?
신랑과 음식을 먹을 때는 한 그릇에 같이 먹자 할 때도 많으면서 얼마 전 중간에 냄비채 놓고 덜어먹는 어묵탕에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먹었다고 사위도 있는 앞에서 무안을 줬지? 그럴 때면 급격하게 말이 줄어드는 아빠를 보면서 그제야 아차해. 뒤늦게라도 알아차려 머리를 주어 뜯는데도 그게 잘 안 고쳐지지.
정말 웃기지 않아 아빠 딸?
자기가 뭐라고. 또 철도 없이.
아빠는 내가 어렸을 적 먹다 양념을 묻히고 남긴 것까지 맛있게 다 먹었는데 나는 뭐가 그리 잘났다고 세상에서 제일 못난 행동을 했을까.
우리 아빠 나한테 정말 소중한 사람인데 왜 그런 것들을 보고 지적하기 바빴을까. 그럴 거면 차라리 밥이랑 국이랑 반찬들 보며 가만히 먹기나 하지.
안 하는 만 못한 말들과 행동으로 아빠 상처 입혀서 미안해.
사위도 있는데 무안 주는 행동 이제 살면서 다시는 안 할게. 이렇게 말해놓고도 습관처럼 나도 모르게 나오겠지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아빠에게 살갑고 또 살가운 딸이 될게.
밥 먹을 때 통 넓은 잠옷이 계속 휙휙 날리는 거 같아 반찬들에 묻는다고 잔소리했잖아.
나 자신도 완벽하지 않고, 아빠보다 훨씬 더 덜렁대면서 내 모습은 살피지 않고 아빠의 단점을 지적했어. 아빠도 똑같이 맞은편에 내가 보일 테고 내 행동을 살필 수 있을 텐데 아빠는 내 행동을 지적하지 않잖아.
묵묵히 날 키워냈듯이, 결혼식장에서 천 마디 말보다 맑은 눈물로 날 귀히 여긴다는 걸 보여줬듯이, 내가 업은 아이에게 엄마 힘들다고 얘기했듯이 아빠는 내가 힘들까만 전전긍긍하고 안쓰러운 것만 보이지 단점은 보여도 보질 않잖아.
나도 단점을 찾는 그 눈은 감고, 아빠가 이가 튼튼해서 음식은 잘 씹어 먹는지 고단해 보이지는 않는지 기분은 좋은지 같은 걸 살피는 고운 눈만 뜰 거야.
나는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래야 아빠같이 좋은 사람을 만날 테니까.
내가 결혼하고 신혼집을 얻어 나갔잖아. 아빠한테 갔을 때 그때 기억나? 그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 우릴 배웅하러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오는데 왜 신발을 안 신었어. 왜 맨발이었어. 나는 왜 매번 아빠한테 귀하고 왜 아빠는 내게 훨씬 더 귀한 사람인데도 푸대접을 받기도 해.
일도 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았는데도 여전히 아빠한테는 내가 애기인가 봐. 홈쇼핑을 보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나오면 꼭 날 불러서 사줄까 물어보고 우리가 먹고 싶어 야식을 시켜도 왜 이 밤에 먹냐 잔소리 한 번 없이 배달비보다 많은 오만 원권을 슬쩍 밥상을 두고 가잖아.
아빠 힘들어서 번 피 같은 돈을 우리에게 너무 펑펑 쓰잖아.
아빠. 그거 알아?
아빠가 안 계시다면
난 하늘이 없는 하루를 사는 기분일 거야.
매일 고개만 들면 있던 하늘이 없다는 건
내게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야.
살더라도 가장 중요한 게 이미 숨을 거둔 느낌일 거야. 까맣고 바스러질 만큼 말라버린 심장을 달고 사는 느낌?
아빠를 볼 수 없게 된다면
한 번만,
제발 다시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까맣고 바스러지는 심장이라도 있는
가슴이라도 쥐어뜯으며
아빠를 미친 듯이 그리워하겠지.
숨도 못 쉴 만큼 펑펑 울 거야.
그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외할머니 장례식장에서
내가 거의 탈진하고 실신할 만큼 우는 걸보고
아빠가 그랬지?
사람은 다 죽는다고. 아빠가 가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그러면서 애통해하고 아파하는 나를 곁에서 달래주었지. 어떤 위로보다 마음이 따뜻하고 힘이 됐어.
내가 태어나면서 쭉 같이 산 외할머니였기에 아빠가 뒤돌아 눈물 흘리는 걸 봤는데 제대로 슬픔을 내놓지도 못하고 내 눈물에 가슴 아파하던 아빠였어. 아빠가 없을 때 혹여나 내가 너무 아파할까 봐 벌써부터 걱정하고 아프지 말라고 다독이던 아빠였어.
내가 아빠 딸이라 미안하단 말 대신 앞으로는 아빠한테 어디 가서도 자랑하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마음씨 곱고 착한 딸이 될게. 내리사랑이라 내 아픔보다 아빠의 아픔을 더 느끼겠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늘 아빠의 몸과 마음의 컨디션도 살피고 알뜰살뜰 아빠를 보살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