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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Mar 15. 2021

내던져진 양말에서 사랑을 느끼다.

늘 같은 자리, 거실과 안 방 사이 바닥에 양말이 내던져져 있다. 한 짝씩 한 켤레 가지런히 놓여있 때도 있고 한 짝은 소파 보고, 한 짝은 먼발치에 떨어져서 티브이 보고 놓여 있기도 하다.

벗다가 한 짝은 휙 내던졌다는 거다. 


그렇게 한 범인은 바로 우리 집에 단 한 사람. 남편이다.


일곱살 첫째도 집에 오면 손을 바로 씻고 양말을 벗어 빨래 소쿠리에 담는데 신랑은 언제 그랬는지(신기하게도 아직 현장을 직접 목격한 적은 없다) 양말을 꼭 그 자리에 던져 놓는다.


잔소리 했다. 왜 저기다 벗어놓느냐고.


답은 두 가지였다. 결혼 초반에는 나는 자기가 해놓은 거 말없이 치우는 게 얼마나 많은 줄 아냐는 대답.(서운하단 뜻이다)


이 대답은 함께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공감의 공감을 하게 됐다. 내가 헤집어 놓은 물건 정리는 물론 내게 크고 작은 일들이 생길 때마다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해결해주던 사람이 그였으니까.


그래도 언젠가부터는 늘 미안하다는 답이 돌아왔다.(달라지는 게 없다는 게 함정이지만)


그리고 요새는 답이 없다.


그전에 내가 잔소리를 안 하니까.


우리는 지금

어린아이 둘을 키우면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 하나 없는 시기이다.


각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건 이미 포기한 지 오래고(부부끼리, 가족끼리 싱글이면 우리 가족 다 함께 만나는 식이다.)

머리 하나 손질하려 해도 눈치 보고 나가야 하고,

큰 마트 한 번 다녀와도 눈치 보며 나가야 한다.

아이들을 함께 겨우 케어하기에 한 명이 빠지고 고군분투할 상대방을 생각하면 절로 눈치를 보게 된다.


눈치를 본다는 건 그만큼 상대를 귀히 여기고 아끼고 사랑한다는 뜻이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양말 한 짝씩 던지는 것쯤이야 눈치 보지 말고 실컷 하라고 내버려 둔다.

오히려 이제는 양말을 한 움큼 사주고 여기저기 내던져라고 손에 쥐어주고 싶다.


하루 종일 신고 다녔을 양말을 생각하면 손가락 두 개로 겨우 집어 빨래통에 넣을 것 같지만 오히려 그 양말을 정리하며 신랑의 하루를 떠올린다.


신발 속에서 하루 종일 갑갑했겠다 싶고(회사 다닌다고 하루 종일 회사에 얽매여 있는다고 갑갑했겠다 싶고)


가장 낮은 곳에서 온 몸의 무게를 견디느라 쉽지 않았겠다 싶다.(가장의 무게란 말 안 해도 어깨가 뻐근할 거 같다. 어리광도 못 부릴 테고.)


첫째가 한 번은 가족들의 발 냄새를 체크하듯이 한 명 한 명꺼를 맡은 적이 있는데 신랑 앞에서 신영만발 냄새라고 지나가지를 않아 통과를 못 한 적이 있. 그때만 떠올리면 아직도 신랑과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질 못한다.


그래서 치울 때 고린내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해도 고소하게 맡을 자신도 있는데 아직 콩깍지가 안 벗겨졌는지 나에게는 그것마저 나질 않는다.



일 년 동안 주말부부로 살 때 깨달은 게 참 많다.

얼굴을 마주 보고 함께 일상을 나누고, 아침에 인사하고 저녁에 다시 집에 오는 모든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이 사람의 아무렇게나 던져진 양말이라도,

그가 보낸 하루의 흔적이 무어라도, 그가 이 곳에 있었다는 어떤 흔적이라도 찾고 싶었다.


가족들이 있는데도 불 꺼진 차가운 방에 들어갈 신랑을 생각하며 마음이 너무 아팠었다.

떨어져 있어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서.


출퇴근만 왕복 세 시간을 하는 신랑에게

"자기 양말 평생 내가 주워다 빨래통에 넣어줄 테니까 신나게 벗고 다녀. 그리고 사랑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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