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엄마에 그 딸
책임감이 강한 동생은 부모님께 급한 일이 생길 때마다 열일을 제쳐두고 시골로 달려간다. 사남매라 적은 형제도 아니건만 막내 남동생은 외국에, 언니는 김해에 살고 있으니 웬만한 친정 일은 큰동생과 내 몫이 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우리는 불만없이 살아간다. 딸이 아버지를 만나 병원비며 약제비를 계산했다며 비는 우선 그쳤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중증치매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엄마를 생각해 끝내 시골로 가시겠다는 아버지.
그런 할아버지를 위해 시골까지 오십여 분을 다시 달려갔다 올 생각에 운전을 하며 처음 경험했던 심한 소나기를 또 만나게 될까 딸은 두렵다고 했다. 얼마 후 퇴근을 해 현관 문을 나서며 시골로 가고 있던 딸에게 전화를 했다.
장마철 장담할 수 없는 날씨변화가 생기면 중간에서 교대하자고. 그렇게 한참 동안 시동도 걸지않고 직장 주차장에서 기다렸다. 결국 딸은 피곤해할 제 엄마를 생각해 가던 길이니 시골까지 갔다 오겠다고 연락을 줬다.
계속되던 망설임을 접고 나는 그제서야 수업장소로 향했다. 한시간을 달려 강의실에 도착하자마자 딸의 경로가 궁금해 폰을켜니 반가운 딸의 문자가 보였다.
"엄마! 우리는 잘 도착했어. 시골로 갈 때도 비가 장난 아니었어. 집에 가서 얘기해 줄게. 그래도 잘 왔으니까 걱정은 하지 마." 평소보다 늦어진 귀가길, 퍼붓는 홍수처럼 참을 수 없는 피곤에 하품이 몰려들었다.
집을 향해 달리며 큰딸은 잘 돌아왔는지 전화를 걸었다. 아직은 초보운전자라 무용담처럼 이어지는 오늘 동선에 대해 재잘재잘 설명하는 딸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밝고 경쾌했다.
집에 도착해 딸의 이야기를 반복해 들으며 하루가 무사했던 것에 안도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봇물처럼 흘러 넘쳤다. 작은딸도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 등을 돌려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였다.
아슬아슬한 걸음을 옮기시던 할머니의 모습은 베란다 아래로 난 오솔길을 따라 톡! 톡! 톡! 잔 여운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어젯밤 환하게 웃어주던 두 딸들의 천사같은 얼굴이 할머니가 지나가신 초록들 위로 파스텔처럼 화사하게 번졌다.
소나기를 뿌렸던 먹구름도 어둠을 따라 가버렸고 이아침엔 보란듯이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다. 간간이 울어대는 뻐꾸기소리에 빠져 사라져 간 할머니의 뒷모습을 쫓으며 한참을 서있었다.
그때 익숙한 기계음이 부엌으로 나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