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에 반지를 두고 가발을 쓴 다음에 프러포즈를 하는 것은 어때? 무릎을 꿇고 나와 결혼해주세요라고 말하면서 가발을 벗으면 머리 위에 둔 반지가 짠! 하고 나타나는 거지. 대단히 감동적이지 않을까?”
“결혼식에 신부가 부케 던지는 것은 이제 너무 식상하지 않냐? 대신에 성종이 네가 부케 대신 가발을 던지는 건 어때? 축복스러운 너의 결혼식에 찾아온 하객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지인들의 놀림 같은 격려, 장난을 빙자한 축복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녀와의 결혼에 성공했다. 물론 어린 시절 동화책의 결말과 같이 가밍아웃(가발 고백) 이후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뤄지지는 않았다. 가발을 벗어던진 나와 그녀의 사이에는 평범한 연인들의 만남이 있었고 우리는 그 여느 평범한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신랑, 예비신부처럼 다투기도 하고 다시 부둥켜안았다가 또 언성을 높이기도 하면서 결혼을 했다. “평범한 연인”처럼. 완벽하지 않고 평범했기에 자연스러웠고 그래서 내게는 그 평범함이 너무도 특별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또 결혼을 하고 그녀와 하나의 운명공동체를 꾸리게 된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장 많이 떠올린 이야기는 선녀와 나무꾼이다. 나무꾼이 선녀의 옷을 훔쳐 사기결혼을 하고 아이가 셋이 생길 때까지 비밀로 하라는 사슴의 충고를 어긴 후 떠나버린 선녀를 그리워하는 그 이야기.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 이야기가 내게 더 남다른 의미가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속였다는 죄책감. 그리고 그 죄책감을 씻기 위해 진실을 고백할 순간의 선택에 대한 문제를 절실히 공감했기 때문이다.
나도 그녀를 속이고 만나서 사랑을 했다. 그리고 그녀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며 언젠가 다가올 이별을 두려워했고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 고백을 했다. 다만, 나무꾼과 나의 차이점은 고백의 순간이 너무 늦지 않았다는 것이고, 나의 그녀가 내 곁에 남아준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가발을 쓴 남편의 진실’을 안 와이프의 이혼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다. 결혼식 한 달 전 가발을 고백한 예비신랑과의 파혼을 준비하는 예비신부의 이야기는 전설이 아니다. 너무 늦어버린 고백에 대한 선녀의 이별이다. 가장 좋은 것은 처음부터 상대방을 속이지 않는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진실을 속였다면 상대방의 이해를 바랄 수 있는 적절한 순간에 사실을 얘기하고 용서를 바라야 한다. 그것이 대머리로서 사랑하는 상대방에 대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 잃어봤기에 잃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버릴 것을 두려워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넘어 평범함을 만날 때, 사랑이란 이름 앞에 탈모를 고백하고 이해해 준 연인을 만날 때의 그 감정은 처음 내게 맞는 가발을 만나 새 인생을 시작할 때의 기쁨과도 같다.
옆에 코 골며 자는 그녀를, 탈모를 이해하고 거짓을 용서하고 그 모습까지 사랑해준 그녀를 사랑한다. 내 남은 머리카락보다 더 아끼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란아!
탈모라도 결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