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여보, 회사 갔다 올게

by 울산의 카프카

여섯 시 반.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모닝벨 소리에 힘겹게 눈을 뜬다. 지난밤 회식에서 과음한 탓인지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한참을 침대에서 눈만 뜬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가야지, 일해야지, 돈 벌어야지, 먹고살아야지. 오늘이 평일이란 사실에 절망하며 회사를 가야 된다는 의무감으로 나를 일으켜 세웠다.


좀비처럼 기듯이 비틀거리며 걸어가 욕실로 향한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로 몸을 적시니 지난밤 치열했던 전투의 기억이 돌아온다. 회식 출발하기 전에는 1차에서 마무리하자고 철석같이 약속해놓고는 부득불 2차를 가자던 과장님. 소주, 맥주 섞어마시면 다음날 너무 고통스럽다고 소주를 시키는 내게 그래도 입가심은 맥주라며 500cc 5잔을 시키시던 부장님. 깨질 듯이 아픈 머리에 지난밤을 회상하며 잠깐 원망을 하다가도, 남몰래 호주머니에 택시비와 술 깨는 약을 넣어주며 윙크하시던 모습이 생각나 헛웃음이 나왔다.


“여보, 빨리 나와. 회사 늦겠어!”

씻고 나온 나를 맞이하는 꿀물과 토끼 같은 마누라. 그래, 이 맛에 내가 일하지. 힘들지만 나를 버티게 하는 삶의 원동력이지.

“어제 몇 시에 들어왔는지는 기억나? 내가 그렇게 씻고 자라고 했는데, 제대로 씻지도 않고. 씻으라고 했더니 삐져서 옷 다 벗고 욕실로 들어가서는 물만 틀어놓고 서 있다 나오더라? 도대체 왜 그래? 내가 진짜 한 번만 더 그러면 베란다에서 재운다고 했지. 내 말이 우스워?”


뜨거운 꿀물을 원샷한다. 사자 같은 마누라. 자다 일어나 헝클어진 긴 머리가 정말 사자 갈기 같다. 나는 어느새 세렝게티 초원의 얼룩말이 된다. 출근 준비한다는 핑계로 옷방이며, 화장실이며, 거실로 이리저리 마누라의 잔소리를 피해 도망 다닌다. 물론 마누라는 나를 쉬이 놓아주지 않는다. 이 방, 저 방으로 쫓아 들어와 쉬지 않고 물어뜯는다.


“여보는 지금 내가 잔소리한다고 생각하지? 내가 뭐 나 좋으라고 하는 소리야? 이 상태로 출근해서 일이 제대로 되겠어? 응? 가장이면, 가장답게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할 줄도 알아야지. 또 주면 주는 대로 신나서 받아마셨지?”


차라리 어서 회사를 가는 것이 낫겠다. 눈 뜰 때까지만 해도 죽도록 가기 싫었던 회사가 이제는 젖과 꿀이 흐르는 지상낙원처럼 느껴진다.

“일단 알겠어. 여보. 진짜 늦겠다. 나머지 이야기는 갔다 와서 하자. 나 출근한다”

출근 인사말로 서둘러 말을 자르고 급하게 신발을 구겨 신으며 집을 나섰다. 그러나 현관문이 채 닫히기 전에 들려온 마누라의 고함소리가 옷깃을 잡았다.

“여보! 가발 쓰고 가야지! 너 진짜 정신 안 차릴래!”


아차. 어쩐지 오늘따라 목 위가 가볍더라니. 제일 중요한 걸 까먹는 실수를 했다. 술이 덜 깬 것이 분명했다. 머리를 놔두고 출근할 생각을 하다니 말이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가발을 쓴다. 이리저리 맞춰보고 다듬어 보고 이번에는 현관에서 와이프와 평상시와 같이 인사를 나눈다.


“여보, 어때? 괜찮아? 머리 안 이상해?”

“괜찮아. 자연스러워. 어서 갔다 와. 오늘도 회식하면 진짜 죽는다.”

매일 아침 마누라에게 머리가 자연스러운지 물어보며 출근하는 나는 30대 직장인, 탈모 가발러다. 그리고 이건 평범한 탈모 가발러의 ‘자연스러운’ 회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다.

B612_20210116_122445_317.jpg
B612_20210611_162227_438.jpg
평일 회사출근(좌) / 휴일 와이프와의 즐거운 시간(우)


keyword
이전 14화13. 내 남편은 탈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