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나는 탈모다

by 울산의 카프카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행복한 샤워시간이 나에게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지옥의 문이 열리는 시간이다. 세면실 문고리를 잡았다 놓았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찐득거리는 몸을 외면한 채 잠들 수 없기에 용기를 내어 세면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쏟아지는 샤워호스의 물줄기에 만족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이내 짙은 실망과 깊은 고통이 나를 채우고 만다. 삶의 미련을 놓아버린 채 내 곁을 떠나 차가운 세면실 바닥에 누운 수많은 머리카락 때문에.


처음에는 인정할 수가 없었다. 내가 탈모라니! 학창 시절 미용실을 가면 미용사들이 숱이 너무 많아 이발하기 힘들다고 투정을 했었던 내 머리였다. 그리고 이제 고작 23살밖에 되지 않은 청춘인데 탈모일 수가 없다. 또한, 신이 있다면 별로 가진 것도 없는 내게서 머리숱까지 가져가는 그런 잔인한 일을 할리가 없다. 그래, 지금 잠깐 탈모처럼 보이는 것은 지난번 이발을 할 때 미용사가 실수로 머리숱을 많이 쳤기 때문이다. 또 최근에 전역을 하고 복학이다, 뭐다 이리저리 신경 쓸 일이 많지 않았던가? 한, 두 달 지나면 나의 머리는 다시 예전처럼 풍성한 솜털로 돌아올 것이다.


그런 믿음과 자기 위안도 딱 두 달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이 깜짝 놀라며 다시 내 얼굴과 머리숱을 확인할 때, 그리고 그런 그 사람에게 내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공중화장실 대변기를 나올 때 기다리던 상대방에게나 건네는 어설픈 미소를 짓고 있는 걸 발견하고는 나는 이제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탈모였다. 지난번 머리숱을 많이 쳤다고 애써 위로했던 것은 원형 탈모였고 이마가 넓다고 둘러댔던 것은 M자 탈모였다. 23살 여름, 나는 내가 탈모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래, 나는 예비 대머리였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말이 안 된다. 중학교? 머리숱이 많아 동네 미용실 아주머니가 나를 싫어했었다. 고등학교? 머리가 빠르고 풍성하게 자라 학교 옆 단골 미용실도 있었던 나였다. 그럼 20살 때인가? 대학생이란 생각에 자유를 느끼고 나를 표현하고자 염색을 하고 파마도 했었다. 그것 때문인가? 나는 내 탈모의 원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답은 가까이에 있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의 휑한 머리를 바라보며 탈모의 제1 원인이 유전이란 사실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의 저녁 시간은 지금껏 했던 그 어느 식사 시간보다 길고 조용했다.


그 후로 아침과 저녁 샤워 시간은 내게 견딜 수 없는 고문 시간이 되었다. 너무도 쉽게 내 곁을 떠나는 머리카락을 바라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조심해도 이미 얇아질 대로 얇아진 머리카락은 손가락의 작은 마찰에도 쉽사리 생의 의지를 놓아버렸다. 매 샤워시간마다 하나, 둘, 셋, 넷, 이미 빠져버린 머리카락을 세고 또 그것을 움켜쥐고 흐르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샤워 후에 훌러덩 벗겨진 머리에 잔뜩 울상을 짓고 있는 청년을 만나고 싶지 않아서 거울도 보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도망을 쳐야만 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무리 날이 지나도 익숙해질 수도, 그렇다고 적응할 수도 없었다. 나는 아직 젊고 그리고 한 가닥 머리카락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23살 탈모 환자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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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 소중한 머리카락을 기르고 길러, 모으고 모아서 가리고 또 가리던. 그러나 채울 수 없던 그 빈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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