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나는 탈모다

대한민국의 지극히 평범한 30대 탈모인의 안 평범한 대머리 이야기

by 울산의 카프카

나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의 30대 남자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평범하게 대학을 졸업해서 또 지극히 평범한 회사생활과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평범한 내 인생을 특별하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가 있다. 바로 탈모다.


탈모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그 무엇도 평범하지 않다. 대머리가 겪은 이십 대의 대학에서는 손에 분홍 벚꽃잎을 쥐기보다는 검은색 흑채를 쥐는 날이 더 많았다. 가발을 쓰는 가발러가 된 대머리는 가발을 숨기기 위해 회사 직원들과 목욕탕에서 함께 가발을 쓴 채 목욕을 하고 가발이 벗겨질까 봐 단체 활동 때마다 노심초사, 가발부터 부여잡기 일수다. 대머리니까 연애 앞에서 늘 뒷걸음질을 쳤고 겨우 사랑에 빠졌지만 또 가발임을 고백하고 헤어짐을 준비하기도 했다. 이십 대 초반에 시작된 탈모는 그렇게 내 인생을 비틀었다.


고작 머리카락 아니야? 뭐 그런 걸로 인생이 비틀어졌다고 그래? 그래, 고작 머리카락이다. 그러나 나는 그 머리카락 때문에 수 천 번 고통스러워하고 머리카락을 위해 좋다는 짓을 수 백번 했으며 적어도 수십 번 죽을 생각을 했다. 그리고 딱 한 번 진심으로 죽을 시도를 하기도 했다. 고작 그 머리카락 때문에.


그러나 어디 그런 사람이 나뿐일까? 점점 커져가는 탈모 시장과 공중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가발 CF와 탈모샴푸 CF. 버스나 지하철, 광고판에 부착된 탈모치료 광고는 우리 사회가 탈모에 가지는 관심과 공포심이 얼마나 큰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탈모가 올까 두려워하고 탈모가 온 사람들은 탈모를 치료하고 극복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과 고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모습과는 별개로 우리 사회에서 탈모 감수성은 아직도 낮다. 여전히 텔레비전에서는 가발이 벗겨지는 코미디가 웃음거리로 심심찮게 방송을 타고, 탈모가 자신을 비껴가기를 바라면서도 탈모가 온 사람을 대머리라고 놀림거리로 삼는다. 큰 용기를 내고 가발을 쓴 사람에게는 가발 티 난다며 삭발을 종용하기도 한다. 왜 탈모는 아직도 이해의 대상이 아닌 놀림의 대상인 것일까?


나는 탈모다.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10년이 걸렸다. 탈모가 더 이상 놀림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탈밍아웃을 하고 가밍아웃을 해서 나의 10년의 탈모, 가발 이야기를 글로 썼다. 나의 이야기가 마법의 가루처럼 머리카락을 나게 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에서 혼자 울고 있을 탈모인 그 누군가에게 공감을 통한 작은 미소와 또 희망을 선물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언젠가 이 사회의 구멍 난 머리감수성을 덮어줄 가발이 된다면 그건 머리카락이 다시 나는 것만큼의 기적 같은 일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지극히 평범한 30대 탈모인의 안 평범한 대머리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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