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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수진이의 큰 아들 이야기

학교를 그만두니 진짜 교육이 시작되었다 연재 중

by 여온빛



수진이의 큰 아들, 준석. 준석이는 어릴 적부터 매우 영특한 아이였다. 어릴 적부터 야무지다 똑똑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은 것 같다. 준석이는 그 말들이 싫거나 지겨운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정말 그런 사람인가에 대해 요새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요새라 함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이사 온 후 얼마 지나고 나서 인 것 같다. 그의 모국어는 한국어다. 하지만 몇 년간 미국에 지낸 탓인지 공부하거나 일상생활에서 영어가 좀 더 익숙한 거 같다. 아직 이곳에 적응 중이라 그러겠거니 생각하지만 그래도 한국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심오한 것 같지도 않은데, 학교에서 단원평가를 비롯하여 몇몇 시험이라는 것들을 보면 결과가 썩 좋지 않다.


미국에 있는 내내 우수반에 있었던 준석이지만 한국에 와서 학습이 어려워진 이후,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까맣게 잊은 지 오래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감을 영 못 잡겠다.


처음에 몇 번은 부모님께 당당히 점수를 알려주면서, '이 정도면 저 잘하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뭔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가장 헷갈리는 것은 집에서의 교육과 친구들과의 대화에서의 큰 갭이다.


미국친구들과 달리 한국친구들은 뭔가 최신유행에 민감한 친구들 같다. 거의 다 그렇고 일부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소위 ‘진따’라고 불리는 아이들이다. 두려운 것 중 하나는 그 아이들과 다니면 같이 찐따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준석이가 함께 노는 친구들은 세련되고 좋은 물건들을 많이 소유한 아이들이다.


아이폰과 에어팟, 그리고 멋진 픽시자전거, 그리고 멋진 옷을 가지고 있다. 준석이만 빼고.

엄마한테 계속 얘기했다. 아이폰을 사달라고. 그리고, 무슨 이벤트가 있으면 다른 선물들은 필요 없으니 아이폰으로 사달라고 끊임없이 얘기했다.



그리고, 줄곧 이제 곧 갖게 될 아이폰과 픽시자전거를 생각했다. 생각만 해도 너무 흥분되고 다른 친구들과 같은 물건을 갖게 될 것에 대한 안정감이 들었다. 아직은 없지만, 아이폰과 픽시와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준석이의 온통 관심사는 이 둘이다.


갖지 못한 채로 있으니까 더더 빨리 갖고 싶다는 욕망이 사로잡는 것 같다.

아침에 눈 떠서부터 자기 전까지. 깨어 있는 내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음이 불안하고 복잡해지는 이유는 학교에 가면 친구들은 아직도 그 물건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에게 빨리 사서 우리랑 같이 그걸로 놀자는 요청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얘기해도 바로 실행에 옮기지 않는 부모님께 서서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어차피 사줄 거 빨리 사주면 좋지 않은가.


가을이 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너무 덥기만 한 여름이다. 다들 반팔에 반바지다. 오늘 나는 요즘 유행하는 스투시 블랙반팔을 입고 스투시 블랙 반바지를 골라두고 아침 등교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빠의 다그침이 시작된다.


‘준석아, 오늘은 씻는 거 10분 안에 빨리 끝내고 나와서 아침 먹고 학교 빨리 가라’


아침에 이 말을 들으면 벌써 짜증이 올라온다. 어떻게 10분 안에 다 씻으라는 말인가. 씻고 나오면 아빠와 엄마는 아침부터 오래 씻는다고 어젯밤에도 샤워하고 잔 애가 아침부터 머리도 또 감고 샤워를 저렇게 오래 한다고 핀잔을 준다. 그리고, 드라이어를 해야 학교에 갈 수 있는데 드라이어를 하는 자신을 마치 한심한 동물 보듯 하는 부모님이 야속하기만 하다.


엄마아빠는 아들이 쿨하지 않은 학교 진따가 되면 좋으려나. 등교 전 멋짐을 부려야 하고 그러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엄마아빠는 드라이는 5분을 하나 30분을 하나 아무 변화가 없는데 왜 그리 거울 앞에서 오랜 시간을 낭비하냐고 소리를 지르고, 결국 화를 주고받고 아침부터 불쾌한 맘을 가지고 학교에 간다. 사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너무 재미가 없다. 학교는 재미없고 여기 친구들은 학교보다 다들 학원에 가서 배운다.


하지만,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수학이나 국어, 과학, 영어과목들을 배우러 학원에 가고 있지 않다. 친구들이랑 더 오래 어울리고 놀려면 그런 곳에 가야 하는데, 여러 번 엄마한테 얘기했지만, 필요 없다고만 하신다.


친구들이 너무 부럽다.

학원을 핑계로 토스카드에 넉넉한 용돈을 충전받고, 편의점에서 라면과 삼각김밥, 음료수 등을 맘껏 사 먹고, 학원버스나 밖에서 아이폰으로 게임도 맘껏 하고..


특히, 정말 폼나는 픽시를 타는 친구들이 제일 부럽다. 그걸 사준 부모님들은 다들 부자고, 멋진 분들임이 분명하다.


우리 집은 부자도 아니고, 집에서 매일 고리타분한 말만 늘어놓는 부모님이 오늘도 야속하다.


그래도 이상한 건,
고리타분한 집에 오면 맘이 편안하다.
늘 있던 사람들이라 그런 걸까.
때로는 야속하기도 하고 내 맘을 몰라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족이 있는 공간이
편안하긴 하다.

이곳은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되는 곳.
오히려 무엇을 가지고 있지 않아야
더 좋은 곳 같다.
나도 내가 아이폰과 픽시를
갈망하는 것을 멈추고 싶다.


생각해 보면, 굳이 내게 필요 없는 것을 집착적으로 원하는 것 같다. 거기서 벗어나라고 충고하는 부모님의 말씀이 맞는 거 같기도 하다. 머릿속에서 벗겨내고 싶은데 그럴수록 왜 더 원하고 더 생각나는 걸까?


나도 그만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는 내가 싫어지기까지 하다. 그 생각이 온통 내 모든 다른 일들을 못하게 방해하는 것도 안다. 그래서 더 괴롭다.


한국에 온 후로 국어과목, 수학과목 등은 내가 진짜 뭐라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데. 그것들도 빨리 공부해야는데 안 그러면 난 진짜 바보가 될 텐데..


하지만, 온통 아이폰과 픽시자전거 생각 때문에 정말 해야 할 것 같은 모든 일들이 제대로 돼 가고 있지 않다. 진짜 나 때문에 괴로운 건 나 자신이다. 내 맘처럼 되지 않는 나 자신이 너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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