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그만두니 진짜 교육이 시작되었다 연재 중
4화: 데미안과 아들의 두 세계
수진이는 어제 학교에서 문학시간에 언급했던
헤르만헤세의 작품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의 두 세계가 생각이 났다.
내 아들에게도 싱클레어가 겪었던
두 세계가 경험되었는가!
유혹과 죄가 난무한 바깥세상을 겪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전혀 다른 세계가 혼재되어 자기도 모르는 처음 느낀 낯선 혼란이 아들에게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싱클레어가 바깥에서 죄를 저지르고 집으로 와서 어머니 방의 커튼을 보고 느꼈을 바깥 어둠과 대비되는 밝음과 평화 속으로의 귀환이 어쩌면 수진이 아들에게도 순간 비슷한 체험이 되었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고 있는 나이이기도 하고, 두 세계에 끼인 자라나는 자식을 이해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수진이는 이성을 잘 붙들어 메고 대화를 해야 한다고 애써 다짐했다.
알을 깨고 나오는 새처럼 아들 세계 속에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이해하자.
모든 인간들이 겪어야 하는 지각변동이 아닌가! 제비나비가 편안한 보금자리인 번데기 세계를 찢고 나와야 하듯,
아기 새가 그의 세계를 깨고 나와야 하듯,
인간도 나의 세계를 깨고 나와야
다음 성장이 일어난다.
이 세상 모든 생명체는 그렇다.
그래서 생명인 것이다.
일단, 관리소 아저씨에게 문자를 보내주기로 한 약속은 나중으로 미루고 아들을 다시 불렀다.
막 신발을 다 신고 문 손잡이 쪽으로 손을 뻗치려는 순간이었다. 수진이의 아들은 다시 수진이와 마주했다. 수진이의 태도가 아까와는 사뭇 다르다.
‘아들, 너 담배 피워?’
‘아니~ 무슨 소리야?’
‘언제부터 피웠어?’
아들 준석이는 얼굴색이 노래지는 듯하였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얼굴 근육이 부자연스럽게 흔들리는 것이 수진이 눈에 또렷이 보였다.
‘엄마, 무슨 소리야~’
‘지금 다 알고 얘기하는 거니까, 그냥 빨리 다 얘기해~너, 어제 공중 화장실에서 담배 피웠잖아. 그 담배 어디 뒀어? 어?’
‘....’
‘야~ 빨리 얘기해!!’
더욱 소리 지르고 싶은걸 꾹 참으며 수진이는 계속 추궁해 간다.
‘네가 어제 남자화장실에서 담배 피우고, 아저씨한테 들켜서 도망갔다면서!!’
‘....’
‘네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어? 난 아무리 아저씨가 얘기해도 이게 무슨 소리냐고, 끝까지 아니라고 했어! 어?’
‘어… 엄… 마…아…. 진짜 미안해 너무 미안해! 내가 진짜 미쳤나 봐~’
‘야~ 언제부터야 어?!’
‘나 어제가 처음이야.’
‘담배는 어디서 난 거야 어?’
방금 전까지 감정을 잘 다스리고 교육자적인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결심은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그런 결심 따위는 이미 급증발해 온데간데 없어졌다.
아.. 이 새끼가 내 새끼가 맞는 건가? 아무리 사춘기라 해도 어떻게 타락하는 속도가 총알 같은가. 만일 이렇게 안 걸렸으면 어디까지 더럽게 타락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배신감이고 뭐고 이 새끼를 냅다 버리고 싶다.
내 아들이 아닐 것이다.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누구에게 양식을 먹인 건가. 열심히 신앙교육하고 예배드리고 기도드리고 한 결과가 벌써부터 타락한 아들이라니~
수진이는 그녀 자신의 인생이 통으로 배신당하고 기만당한 기분이라 살아 뭣하나, 그간 그렇게 나쁜 행실로 비난해 왔던 학생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차라리 그 애들이 자신의 아들보다 훨씬 낫잖아.
그렇다면 처음부터 수진이가 낳은 아들의 레벨이 너무 악하고 별로라서 그나마 이렇게 키워왔기에 예배나 신앙와 아무 관련 없이 살아온 학생들의 삶보다 못난 정도가 된 건가..
그렇다면 이 아이는 왜 이렇게 태어났는가.
곱게 낳은 아들이 먹으면 안 된다는 선악과를 먹었을 때 하나님 아버지도 이런 배신감이 드셨겠지.
겪을 거라 상상조차 안 했고 절대로 겪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훅 들어오니 수진이는 정신이 없다.
‘난 안 피우려고 했어!’
‘그게 무슨 소리야! 누가 네 입에 억지로 쳐 넣은 것도 아닐 거고, 네가 네 손으로 굳이 잡아서 피운 거 아냐~’
‘죄송해요~ 한 번만 없던 걸로 해줘요. 어제 버리려고 화장실 갔다가 버리기 전에 한번 피워본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놈이 그걸 준거냐고~’
‘어제 이삭이가 준거예요.’
‘너 어제 그런 애들이랑 축구하러 간다고 간다고 했잖아? 축구를 하긴 한 거야?’
‘축구하려고 했는데 애들이 학원 때문에 못 와서 수가 안 맞아서 이삭이가 자기 집에서 놀자고 해서 간 거예요.’
‘거기 니들끼리만 있었어?’
‘아니, 걔네 엄마도 있었어요.’
‘그럼, 그 집에 걔네 엄마도 있는데 너랑 걔랑 담배를 피운 거야? 어?’
‘걔 말고 다른 애도 있었어. 이삭이 친구.’
뭐~?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니, 집에 엄마라는 존재가 있는데 중학생 애들이 방에서 담배를 피웠다니 수진이는 처음 후드려 맞은 펀치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계속 들어오는 충격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럼, 그 애도 피웠어?’
‘아니,’
그럼 다른 애는 거절했는데 수진이 아들은 받아들인 거구나.
‘넌 그 집에 예전에도 놀러 갔던 거 같은데 그때도 피운 거야?'
‘아니야~진짜. 어제 처음 걔가 괜찮다고 피워보라고 해서 피운 거야’
와~ 이 이삭이 이놈을! 그리고, 그것을 별 거부 없이 받아 피우고 가져온 수진이 앞에 있는 이 줏대 없는 놈!
‘그놈 이름도 이삭인걸 보니, 그 집도 교회 다니는 집 같은데 아주 미쳤구나. 그럼, 그 집 아비라는 사람은 교회 다니면서 담배 피우는 사람인 거네~ 아들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을 정도면 애비 애미 둘 다 교회정도는 다녀야 나올 수 있는 건데. 기기 막히네! 아주 다 가만 안 둬~!!!’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자, 수진이 아들은 오늘 학교가 기는 글렀다고 생각하며 계속 미안해 엄마.. 만 반복했다.
‘너~ 학교 이제 그만 나가고~!’
‘네~’
‘일단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엄마가 생각해 볼 테니, 들어가!’
어느새 눈물범벅이 된 수진이 아들은 들어가서 울부짖는다. 후회와 죄책감으로 무너진 마음의 포효일 것이다.
한편, 수진이는 심경이 너무 복잡하다. 배신감뿐 아니라. 내가 뭐 하고 산 거지?
수진이도 후회와 자기원망으로 소리없이 울부짖는다.
그녀의 인생이 송두리째 도둑맞은 기분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돼서 이렇게 된 건지. 준비 없이 훅 들어온 이 황당한 일과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수진이였다.
수진이는 일단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어제 남편이 꾼 꿈이 생각났다.
5화 남편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