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그만두니 진짜 교육이 시작되었다 연재 중
밤 11시. 수진이의 방
창밖의 달빛은 수진이의 마음을 아는 걸까. 수진이를 위로하기 위해 자신이 낼 수 있는 빛을 최선을 다해 발하고 있다.
달님의 마음을 수진이는 아는 걸까. 수진이는 그런 달에게 눈길조차 주지 못한 채 자신의 풀기 어려운 숙제 속으로 들어간다.
엄마가 된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마주한 수진이다.
수진이는 왜 이렇게 아들 문제가 불거진 건지 아들만을 탓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잘못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고 싶고 알고 싶었다. 본인은 최선을 다해서 키운 건데 그렇다고 그게 다는 아니지 않은가. 내가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하지도 않은 사람이고 그러니 내가 하는 모든 방법이 옳다고도 못할 것이며…
의도가 좋다고 결과가 다 좋을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잘 되지 않길 바라며, 자식이 행복하지 않길 바라겠는가.
많은 부모들과 교육전문가들을 교육시키는 교육자인 수진이. 하지만, 절대 전문가의 옷을 입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본인이 저지를 수 모든 오류들과 잘못들을 직면하고 싶었다.
이번 일은 정말 신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든 초기에 잡아서 예방하고 치료하면 일은 수월해진다. 그리고 그녀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안내했는가. 그것에 대한 자신의 업적은 나름 자신 있는 수진이었다.
그런 자신이 다른 집 아이들은 잘되게 해 주고 내 집 아이를 제대로 가이드하지 못한다면 그녀의 인생이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어떤 길을 가더라도 이 미션을 성공시키고 싶었다. 그만큼 그녀의 아들은 그녀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존재니까. 그래서 자신의 모든 잘못을 직면하고 사회적 옷을 벗어 내려둘 준비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 이런저런 생각으로 정리하는 중인데 스스로는 내려놓은 이 기분이 뭔가 홀가분하고 자유롭다. 이런 상황을 겪고 평안하기까지 한 자신이 아이러니하게도 느껴진다.
내려놓는다는 것이 어디 간단한 일이겠는가 육을 입은 인간은 항상 먹고살 걱정과 미래에 대한 염려로 똘똘 뭉친 존재가 아닌가. 수진이도 인간인지라 한 번도 그런 일을 본인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인간이든 그 모든 인간 걱정사보다 더 위급하고 긴급한 상황이 생기면 만사 제치고 우선순위가 바뀌게 마련이다. 수진이는 지금 그런 상황이라고 느낄 만큼 큰일을 겪고 있는 중이다.
땅으로 꺼지든 하늘로 솟아버리고 싶은 만큼 괴로운 마음이다. 오히려 이렇게 심각성을 가지고 불쑥 등장한 이 사건이 다른 우선순위들을 한참 뒤로 밀어 버려 고민이 덜 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녀의 앞에 작은 테이블에 놓여있는 수첩과 볼펜, 그리고 손안에 있는 성경책 한 권.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의 기억부터 하나하나 생각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태어날 때부터 영리해 보여서 큰 아들은 항상 '야무진 아이', '영리한 아이' 이런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다. 예민해서 키울 때 애를 먹었던 기억들, 교육전문가인 수진이가 봐도 영리하고, 호기심도 좋고, 창의성도 좋고, 학습에 대한 열정도 뛰어난 아이 이런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런 아이가 지금은 사뭇 다르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기 한국에 오기 전 아니, 여기와 서도 바로 이렇게 변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일 년 동안은 괜찮았다. 아무튼 그 정확한 시점이 어찌 되었건 변화를 느낀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이의 변화를 인지하기 전에 진행되었던 것이 그리 오래전부터 진행되었던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아이에게 그 변화가 간간히 느껴진 것은 공립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였다. 아이가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밖에 나가는 시간이 잦아졌다. 친구들과의 교제를 권장했기 때문에 허락도 종종 해주곤 했지만, 아이는 점점 멀어져 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들에게 불만이 많아지기 시작하고, 친구들과 이것저것 비교하면서 자신의 위치가 그리 좋지 않다고 불평을 많이했다. 친구들은 부자인데 자신은 그렇지 않다거나, 친구들의 문화와 본인의 문화가 다르다는 갭을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수진이는 그때마다 아이에게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비교하는 문화, FOMO(Fear Of Missing Out: 고립공포감: 놓치거나 제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문화가 얼마나 좋지 않은지에 대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설명했다.
하지만, 이해하는 모습은 그 순간뿐 다음날이 되면 다시 되돌아갔다. 너무 맘이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수진이도 남편도 너무 바쁜 나날을 살아가는 탓에 아이의 문제만을 계속 생각하거나, 씨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학부모세미나에서 수진이가 발표를 하는 날이다.
주제는 스마트폰이 얼마나 아이들의 뇌를 망치고 있고 습관을 망치고 있는지 결국 이들의 인생을 얼마나 방해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본인의 아들이 그 선상에 한몫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힘없는 인간인지, 더구나 지금 상황에 이런 세미나 발표를 하는 스스로가 창피하기도 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인데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열을 올리며 얘기했구나 부끄러웠다.
‘너나 잘해, 수진아.’
이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것 같아 괴로웠지만, 지금 자신의 괴로움쯤은 무시할 수 있다. 아들의 일이 우선이다. 준석이는 어떤 생각을 하는 걸까. 무서울까, 후회할까, 지금만 잘 넘기면 된다고 생각할까. 마지막의 경우가 가장 최악인데 그것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항상 인정받고 촉망받던 아이. 작은 것에도 칭찬받고 항상 열정적이었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뭔가 꼬여도 한참 꼬였구나. 하지만, 꼬인 건 하나하나 풀다 보면 될 것이다. 사회집단이 중요해진 나이가 된 준석이가 미국에서 내내 지내다가 갑자기 한국 학생들 사이에 와서 겪는 문화차이가 꽤 클 거라는 것은 인정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아이들과 같은 무리라는 느낌을 갖고 싶었을 거다. 아무래도 다른 문화권에서 온 준석이가 스스로를 봐도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지 않았겠는가. 자신의 개성을 간직하는 것에 가치를 두지 않고 FOMO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아마 그러다 이놈이 전자담배까지 간 것이다. 다른 아이들이 하니까 나만 안 할 수 없어서. 다르고 싶지 않아서.
수진이는 이제 뭔가 준석이의 문제의 원인을 찾은 것 같았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외부적인 요인은 바로 FOMO,
내부적인 요인은 바로 인정이 대한 갈망이다.
이 두 가지 중 더 근원적인 문제는 내부적인 요인인 인정에 대한 욕구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결국 FOMO라는 것도 파헤쳐보면 남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기반이 되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겠는가.
준석이를 생각해 보면, 첫째 아이에게 자연스레 갖게 되는 기대치, 어릴 때부터 영리한 영재였기에 자꾸 그게 상응하는 기대를 가지고 아이를 대했던 자신과 남편을 되돌아보며 아이에게 어떻게 대해줬는지를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둘째 아이에게 했던 반응에 비해 뭔가 인색하게 리액션을 해주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한국에 와서는 딱히, 공부에 대한 압박을 주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스스로 느끼기에 한국말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쉽지 않은 것에서 오는 어려움이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심리가 많이 커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뿐 만 아니라, 친구들과 어울리면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얼마나 비싸고 쿨한 물건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의 평가가 되기도 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정여부가 결정될텐데 수진이의 아들은 인정받을 만한 고가의 물건이 전혀 없었다.
준석이는 스스로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부모에게도 인정받을 무언가가 없었고, 이 자체가 그를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들었겠는가. 부족한 한국어 능력은 하루아침 만들어지지도 않고, 부모님과의 갭은 어떻게 해 볼 수 없으며, 스스로에 대해 인정을 느끼기엔 아직은 생각이 성숙지 않은 아이상태인 준석이. 가장 쉽고 빠르게 인정받을 수 있는 쪽은 아이들 사이에서 '쿨하다' 칭송받는 물건들을 소유하는 것이다.
이제, 수진이는 다 이해가 되었다.
준석이의 문제행동은
준석이 자체가 악해서
만든 결과라고 치부하기엔
가족, 사회, 그리고 스스로가
함께 만든 합작품이었다.
준석이의 문제행동은 준석이 자체가 악해서 만든 결과라고 치부하기엔 가족과, 사회와, 스스로가 만들어 낸 합작품이었다.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자신이 얼마나 그 문제에 기여를 했는지 본인이 이러고도 교육자라고 할 수 있는지. 교육자의 탈을 쓰고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었는가. 하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내 첫 번째 아이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죄책감이 들었다.
미안해.. 아들.. 엄마가 너무 너를 신경 쓰지 못했어..
네 맘을 몰랐고 네 생각을 알려고 조차 못한 거 같아.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내가 잘못했어.
아직 어린데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고, 내 기준에 너를 너무 가뒀나 봐.
미안하다 엄마가.. 너무 이기적이었어.
몸이 크고 있으니 널 이제 어른이 됐다고 착각했었나 봐.
네가 묵묵히 참고 있었던 걸 너도 이 생활에 만족하고
잘 지내고만 있다고 느낀 것 같아.
미안해서 어쩌지.
나도 사춘기에 접어둔 아들을 둔 건 내 인생 처음이라
미숙하고 어찌하는 것이 좋은 건지 진짜 모르겠어.
모든 게 조심스럽고
이제 실수하고 싶지 않아.
네 인생도 한 번뿐,
내 인생도 한 번뿐,
실패하고 싶지 않아.
실수도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사실 나라는 인간으로서는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싶어.
지금까지도 계속 내 뜻대로 되지도 않았고,
내 힘대로 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모르겠어.
내 생각의 꼬리는 오히려 나를
더 답답한 곳으로 몰아가고 있어.
그래서 오늘도 난 무릎을 꿇는다.
나를... 우리를...
제발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