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그만두니 진짜 교육이 시작되었다 연재 중
수진이는 그간 그녀의 아들 준서가 얼마나 FOMO(Fear Of Missing Out: 집단에서 소외불안증후군)에 갇혀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시간을 낭비했는지 알고 있었다. 아무리 아들에게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해도 그 또래집단 안에 갇혀 있는 아들의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 불가능했다.
종종 수진이는 학교에서 교사들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지금 이런 현상들이 얼마나 아이들과 현재와 미래에 해가 되는지를 설명했던 적이 있었는데 자신의 아들이 이런 해악의 피해자라는 생각에 또 자괴감이 들었다.
나만 피해 가겠는가. 같은 공기 안에 숨 쉬는 인간인 것을. 어찌 피해 가겠는가. 하지만 내 아들은 잘 해쳐갈 거라고 근거 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참, 미련하다. 수진아. 그리고 참 교만하다, 수진아. 너도 별수 없다, 수진아.' 이런 생각이 올라왔다.
아무리 교육해도 한 번밖에 나가서 때를 묻혀오면 이렇게 쉽게 오염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참 무섭다. 여러 번 교육 세미나에서 강조했던 내용이 강하게 생각났다.
FOMO의 뜻을 뒤집으면
JOMO(Joy Of Missing Out:
소외됨의 기쁨)가 된다.
오히려 뭇사람들과 다르게 가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수진이는 현재의 FOMO가
너무 만연한 사회에서,
하루빨리 JOMO의
정체성을 찾는 사람이
흔히 4차 산업시대라고 불리는
이 시대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수진이는 JOMO의 사람으로 살기로 결심을 하면, 자신에 대한 확신, 흔들지 않는 올바른 신념을 기를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매일매일 자신에 대해 느끼는 성취감의 쌓임, 올바른 지식에 대한 교육은 결국 건강한 뇌와 건강한 신체, 평온한 마음 등이 동반할 것이고, 그렇게 하루하루 의미 있는 삶이 쌓이다보면 훌륭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삶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이런 것들을 꾸준하게 해나갈 수 있고 그것이 아이들 교육에 있어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육자인 수진이도 최선을 다해 교육한다고 했더라도 당사자들의 마음을 결정지어주는 결정자가 아니지 않은가. 더구나 가장 가까운 아들이 자신의 이런 확고한 신념을 잘 따라오지 못하자, 힘이 빠지는 건 사실이지만,
아직 늦은 게 아니니 희망을 놓아선 안된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 남의 자식들 교육에 열심히 열정을 가지고 했어도 내 자식농사를 망치면 뭐 하겠는가. 본인의 인생을 되돌아볼 때 누구도 볼 면목이 생길 수 없다고 생각하니 실패자 같이 느껴졌다.
내 집안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 자가
어찌 집 밖에서 제대로 된 거사를 치르겠는가...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
지금 나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쉬운 일이다.
눈 딱 감고
지금 당장 급하고 중대한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해결해 나가자.
그날 이후 준서는 힘 빠진 양처럼 순해져서 반항적인 언행은 온 데 간 데 없어졌다. 대화를 요청하자 준석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 앞에 마주 앉았다. 아... 준석이는 아직도 그냥 너무 순한 어린 아이다.
수진이 앞에 앉은 준서는 사춘기의 문턱을 막 넘어선 소년이었다. 키는 부쩍 자라 셔츠 소매가 조금 짧아졌고, 목소리도 어딘가 낮게 깔리기 시작했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어린 티가 가시지 않았다. 커다란 눈동자는 여전히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불안을 동시에 머금고 있었고, 순한 두 눈은 유난히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엄마 앞에 서 있는 그의 손끝은 불안하게 옷자락을 만지작거렸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도, 엄마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평소에는 한껏 반항기 어린 표정을 지어 보이던 얼굴도, 지금만큼은 조심스레 일그러져 있었다. 눈가엔 죄책감과 두려움이 얽혀 있었고, 입술은 말없이 깨물려 있었다.
"정말... 죄송해요, 엄마." 작은 목소리가 겨우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말속에는 변명보다는, 엄마가 너무 화내지 않길 바라는 아이 같은 마음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
그의 어깨는 또래보다 제법 넓어졌지만, 그 순간만큼은 꼭 어린아이가 된 듯 움츠러들어 있었다. 마치 혼날까 봐 눈치를 보며 뒤에 숨던 유치원 시절의 그 아이가, 아직도 그의 안에서 조용히 울고 있는 듯했다.
수진이는 조용히 말을 꺼내며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에는 강한 미안함이 참지 못하고 스며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진심이 담긴 듯 부드러웠다. 수진이는 준서에게 혼내려고 부른 게 아니라 진지하게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엄마로서 미안한 게 너무 많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네 뜻도 의도도 없는 채로, 부모의 일 때문에 갑자기 다른 세상, 다른 문화권에서 힘들었을 너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부모의 생각 안에 많은 것을 구속시킨 것 같아 진심으로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는 표현도 잊지 않았다. 부족했던 소통과 배려를 채우려는 듯 따뜻한 눈빛으로 다가갔다. 둘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며, 마음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따뜻한 느낌이었다.
준서도 수진이도 마음이 통했다. 사랑의 마음은 항상 그렇게 통하기 마련이다. 그 모먼트 하나면 세상 모든 미움과 오해도 한 번에 순식간에 녹여버리는 법이다.
준서는 그 담배사건 이후 자신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 봤는데, 자신이 왜 이렇게 잘 적응이 안 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동생이랑 얘기해 보면, 동생은 더 심한 것 같다는 동생 걱정도 잊지 않는 대견한 녀석이다.
더불어, 학교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는데, 학교에 대한 신뢰가 있지 않음과 친구들에게 그렇게 좋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본인의 의견을 고백했다.
친구들은 재밌고 좋기는 하지만 아직 적응이 딱 되지 않고 여전히 불편한 면이 많은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리고, 학습적인 면을 보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들이 너무 쉽거나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너무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은 수학이었다. 준석이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계속 다음 진도를 나가고, 시험을 볼 때는 자신 있다고 느꼈는데 마주한 문제들은 한결같이 어려운 문제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언제 이런 걸 배웠나? 이런 느낌이 들도록 어렵다고 한다.
반면에, 영어는 준서에게는 쉽다 못해 마치 베이비 수준이나 마찬가지이고, 체육은 진짜 운동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고, 체육시간에 교과서를 읽으면서 밑줄 그으며 공부를 하는데, 마치 스포츠를 글로 배우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혹 나가서 무언가를 하더라도 아이들끼리 공으로 삼삼오오 모여 노는 시간이란다.
또, 음악은 악기 하나 제대로 배우지 않고, 노래 하나 제대로 배우지 않고, 자꾸 어떤 수행평가를 해오라는데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라기 보단 음악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주제를 받고 알아서 조사해서 발표하는 식이라고 한다.
준서 생각에는 체육은 몸을 써야 하며, 음악은 진짜 음악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미국에 있을 때 준서는 체력도 좋고 운동도 잘하는 편이어서 중학교 때 운동선수반에서 체육을 했었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같이 듣자고 해서 선택했는데 친구들은 너무 힘들어서 일주일 혹은 이주만에 일반 체육으로 바꿨고 본인은 좀 늦게 엄마한테 자기도 운동선수반에서 더 하다가 죽을 거 같다고 제발 일반체육으로 바꿔달라고 했지만, 엄마는 조금 더 해보라고 했고 그러다 시간이 가버렸다.
그래서 클래스를 옮길 수 있는 수정기간을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 그 공포의 체육을 한 학기 내내 했더랬다. 끔찍하게 힘들었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 수업을 하는 동안 기초체력이 무척 올랐고, 웬만한 몸으로 하는 운동은 또래에 비해 거뜬하게 하게 되었다.
한국으로 오게 되었을 때 가장 아쉬워하며 나중에 꼭 다시 미국에 오면 선수반에서 미식축구 선수로 활약해 달라면서, 일반인 세배 크기의 흑인 체육선생님께서 준서에게 간곡히 말씀하셨다고 한다.
음악도 거기서는 오케스트라를 하면서 학교에서 처음 배운 바이올린으로 하모니를 이뤄 연주하는 느낌이 너무 짜릿해서 좋아하는 악기가 생기고 연주회 열고 했던 기억들. 가족들 모두 와서 축하해주고 했던 것들이 너무 좋았다고 고백했다.
체육도 음악도 자기가 잘하지 못했어도, 좋아하지 않았어도, 결국 조금씩 배우다 보면 흥미가 생기고 재밌었다고 얘기하며 그때의 추억에 잠시 젖어있는 준서 얼굴에는 잠시나마 미소가 번졌다.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들이 마음에 새록새록 떠올랐다.
다시, 지금 학교 이야기로 돌아와서, 준서에게 학교에서 가장 쉬운 과목인 영어가 가장 미스터리한 과목이라고 한다. 실질적인 회화나 읽기, 쓰기는 가르치지 않고 수업수는 가장 많은 것 같은데 오늘도 내일도 계속 왜 문법이라는 것에 이렇게 열심을 내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문법을 배울 때마다 이상한 용어들이 계속 등장하는데 영어도 아니고, 한국말 같지도 않은 말들인데, 반 아이들도 거의 이해를 못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준서도 그 용어들의 뜻들은 전혀 모르겠지만, 어떤 문법 문제를 준서에게 내어도 다 맞출 수는 있다. 문법적 지식을 이용해서 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쓰니까 당연히 이것이 되어야지 이런 원어민적인 사고인 것이다. 왜 이렇게 쉬울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어렵게 가르치고, 아이들은 잘 배웠어도 시험문제들은 아이들에게 골탕먹으라는 건지, 너무 꽈배기처럼 꼬아있고, 결국 시험점수가 잘 안나오게 돼서 아이들은 좌절하게되는 이런 공부 분위기가 이해가 안된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건 준서에게 가장 쓸모없는 영어시수는 너무 많고 준서는 너무 그 시간들이 지루했다. 다른 과목들 역시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궁금해서 질문을 하고 싶어도 여기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말을 할 틈이나, 분위기도 아니고, 그럴 기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더구나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대화와 놀이는 대부분 폰게임에 관한 것이고, 그것을 하지 않으면 거의 관계가 불가할 정도로 모든 아이들이 폰게임만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아이들의 언어는 비속어가 너무 많은데 준서의 양심에서는 그것을 본인도 같이 한다는 것이 불편해서 쓸 수도 안 쓸 수도 없는 상황이란다. 그렇다고 친구들이 나쁘거나 싫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친구들은 재밌고 같이 놀고 싶은 맘은 크다.
하지만, 이런 관계와 생활이 본인에게 득이 될 상황이 없을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안 다닐 수 있다면, 홈스쿨을 하는 편이 낫겠는데 그렇게 하더라도 나중에 대학교를 간다거나 하는데 문제가 있을까 봐 그것이 걱정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의 얘기를 주고받은 수진이는 정말 결단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후 퇴근한 남편과도 대화를 나누었다.
준서의 말에 전적으로 이해하고 동의하는 수진이와 남편은 지금으로서는 준석이가 학교를 억지로 다니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 모든 시간들을 준서의 능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면서 효율적인 데 시간을 분배해 보자고 대화를 나눴다.
준서는 이제 FOMO를 버리겠다고 한다. 그리고, 깊이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 봤을 때, 내린 결정은 학교를 그만두는 것이다. JOMO(Joy Of Missing Out: 소외됨의 기쁨)가 되기로 한 것이다. 수진이도 남편도 그것이 낫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하기도 결정을 했다. 앞으로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고, 여정은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가족이기에 서로 힘을 주고 지지하며 그 길을 돕고 응원하기도 했다. 한 번뿐인 중요한 아들의 시간아닌가.
두려움과 죄책감에 갈 길 잃은 어린양과 같았던 준서는 부모님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그 안에서 빛이 서서히 밝혀지는 느낌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평안함이 서서히 차오름을 느꼈다. 그리고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어쩌다 자신도 모르게 들어가게 된 어두운 터널 속에서 출구를 찾아 헤매다가 저 끝에서 들어오는 빛을 발견하고 그 빛을 향해 빠져나온 기쁨과 안도감에 가슴이 시원하고 벅찼다. 그리고, 부모님께 감사했다.
수진이의 마음은 조금은 복잡하기도 하다. 아들의 선택이 지금 이런 것이 맞는 길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수진이는 예전에 했던 결심처럼 이번에도 다시 한번, 자신의 사회생활을 다시 희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다 컸다고 생각한 이 시점, 그런 결정의 순간이 다시 찾아올 거라고 생각지 않았지만, 수진이는 스스로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아직 성장 중인 내 아들의 일이니까.
10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