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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준서아빠의 이야기

학교를 그만두니 진짜 교육이 시작되었다 연재 중

by 여온빛


준서의 이런 급격한 변화가 너무 당황스럽다. 무언가 아버지로서 좋은 훈육이나 대화를 해야 하는데 화만 난다. 내가 과연 잘 살아온 것일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는 어릴 적부터 잘살다 가난 해졌다를 여러 번 반복해 와서 그런지 웬만하면 혼자 생각하고 혼자 알아서 해야 할 때가 많았던 학창 시절을 보냈고, 좀 커서는 미국에 홀로 유학을 가면서 외로움과 절약하는 생활을 해왔다. 내게 사춘기는 없었던 거 같다. 사춘기라는 말은 내게는 허용되지 않는 사치스러운 단어였고, 사실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냥 사회가 만들어 낸 관념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내 아들에게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니 어떻게 반응해줘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비난과 원망의 마음만 생기고 그의 행동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다.


원래 이런 아이가 아니었는데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건지 생각을 천천히 짚어보아야겠다.

혼자 방 안에 들어와 바깥에서 들어오는 불빛에 의지해, 의자에 앉아 멍하니 책상에 놓인 펼쳐진 책만 바라보았다. 그렇게 앉아서 준서의 일과를 최대한 기억해 보려 했다. 어릴 적 그저 아빠만 있어도 신나 했던 사랑스러운 아들의 모습만 생각났다.


그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그런지 지금의 준서가 가진 문제들이 현실 같지 않게 느껴졌다. 더구나 내 책상 앞에 세워 둔, 준석이가 작년 이맘때 만들어 선물해 주었던 카드에는 준석이와 함께 자주 가던 공원에서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빠에게'라고 적힌 문구가 지금 상황을 더욱 이질감 느끼게 만들고 있다. 그러면서 갑자기 요즘의 준서의 표정이 이 사진 속의 표정과 너무 다르다는 다른 이질감이 올라왔다.


예전에는 좀처럼 퉁명스러운 말투를 해 본 적이 없는 아들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온 후 아들의 말과 리액션이 바뀌었다는 것을 가족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가끔 사달라는 물건들을 하나둘씩 나열하면서 이것 사주세요 저것 세주세요라고 말할 때 소위 꼰대처럼 훈육을 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아들의 심정을 이해하긴 하지만, 회사에서도 또래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사달라는 걸 사주고 나서 어떤 나쁜 불필요한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너무 많이 들었기에 쉽게 허락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그리고, 내 어린 시절에 비해 너무 풍족하게 자라는 아이들이 어떤 경제적 관념이나 감사함 없이 사는 정신을 내 아이에게는 멀리하고 싶은 맘도 있었다.


최근 얼마간 학교에 다녀오면 항상 요청했던 요구들이 좌절되면서 내가 어떤 걸 요구하거나 훈육의 말을 하면 아들의 말투가 많이 언짢게 들렸다.


‘내가 어쨌는데~’,

‘나갔다 올게요~’,

‘내가 왜 해야 하는데~’,

‘싫어~’,

‘어쩌라고~’.


이런 종류의 말들이 자주 아이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고 서로 너무 바빠서 앉혀놓고 이런저런 말들로 아이와 제대로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에 아이가 너무 빨리 변해 버린 것 같다.


반항기 섞인 말투가 일상의 언어가 되어 가고 있었고, 부모의 허락 없이 늦게 오는 날, 친구들과 놀고 왔다는 날의 수가 점점 늘어났다. 아무리 얘기를 해도 그냥 이 순간만 지나가면, 난 내가 원하는 대로 하리라 이런 생각으로 부모의 핀잔과 훈육을 듣는 것 같았다.



모든 인간이 다 저런 식으로 사춘기라는 시기를 지나는 것이 아니라고 믿어왔던 나는 아들의 이런 변화된 언행을 매우 못마땅해했다. 이런 사춘기를 빙자한 행동들은 사회집단에서 잘못된 또래 학습을 한 것이고, 아이들이 복에 겨워 저런 어이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아들과의 진지한 대화도 여러 번 하면서 아빠로서 아들을 교육시킨다고 했던 거 같은데 그간의 모든 노력들, 희생들이 부질없는 것인가. 아무리 잘 키운다고 열심히 키웠다고 나름 좋은 아빠라고 생각했던 거 같은데.


그렇게 십몇년을 아빠의 사랑과 보호와 가르침이라는 공기 안에서 자라지 않았던가. 하지만, 한낮 잠깐 흙먼지 날리듯 스쳐간 친구들과의 시간이었을 터인데, 그 짧은 사이에 아들이 이리도 빨리 오염되었다고 생각하니 허무함과 배신감, 서운함, 슬픔, 화남 이런 감정들이 복잡하게 한꺼번에 뒤얽혀 가슴이 답답하고 메여왔다.


아들을 평생 키워온 정성들이 바짝 마른 낙엽잎처럼 가벼운 한방에 부스러기처럼 바삭바삭 바스러지는 것 같아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무력감이 엄습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악한 것의 힘이 장기간 힘겹게 쌓아온 선한 것을 이리도 쉽게 한방에 무너뜨릴 수도 있구나..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아빠와의 살가운 추억들이 많지 않다. 아버지가 너무 엄했다거나, 이상한 성격을 가진 분은 아니었지만, ‘아빠’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뭐랄까.. 그냥 아빠의 존재는 있지만,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은 그런 바위 같은 존재라는 느낌이 든다. 아버지와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한 기억도 없고, 오늘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과목을 좋아하는지, 우리 반 친구들이 어떤 친구들이 있는지, 나에게 어떤 고민이 있는지 등등 아빠와 이런 종류의 대화를 나눈 기억이 전혀 없다.


그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낳아주고 자라는 동안 옆에 계시기는 했던 분. 이 정도의 느낌일 뿐이다. 그리고, 그는 청소년시절 미국에 홀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그 후로 가족을 몇 번 보지 못한 채 대학교까지 쭉 미국이라는 멀고도 먼 땅에서 홀로 아리랑을 부르며 강하게 살아남아야 했다.



그래서일까, 자신은 나중에 자녀가 생기면 정말 살가운 대화를 나누고,
많은 것을 공유하고, 고민을 나누고,
비밀을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친구 같으면서
쉼터 같은 아버지 같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내 아들을 지금 저렇게 둘 수는 없다.

어디서부터 인지 간파하고 다시 고쳐서 삐거덕 넘어진 그 시점에서

다시 무릎을 세워 일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자식이니 고쳐서 가도록 내가 도와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내 아버지에게서도 그 누구에게서도
이럴 땐 이렇게 하는 것이 답이란다라는
교육을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단지, 이렇게 나쁘게 변한 아이들의 이야기
다른 집 아이들의 이야기를
남의 집 불구경하듯 들은 것이 전부였다.

이런 일이 자신에게 벌어질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남들에게는 흔한 일이 왜 본인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자만했단 말인가.

난 뭐가 특별하다고 나에는 비껴갈 거라고 믿었던가.

역시 인간은 교만하고 어리석다.

그 중심에 다른 인간을 넣을 필요가 없다.

바로 나니까. 결국 내 탓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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