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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마지막 움껴짐을 마치며 낙하하는 그 나뭇잎처럼

지도에 없는 섬, X 아일랜드 연재 중

by 여온빛




'엄마'를 말하는 순간 데이빗의 목이 갑자기 메어 말을 잇지 못하자, 마크 할아버지가 말을 이으셨다.


“네 어머니는 데이빗이라는 희망이 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아시잖니. 분명 네 어머니는...”

“전... 만약... 엄마가 만에 하나 돌아가셨으면...”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던 마음속의 말이 올라오고야 말았다. 꾹꾹 눌러왔지만 이젠 정말이지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때 마치 어릴 적 캠프에 갔을 때 머리부터 푹 덮어주었던 엄마의 큰 담요처럼 나를 포옥 감싸 안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살포시 안아주는 그 품 속에서 그동안 어찌해야 할지 몰라 저 깊숙한 곳에 꼭꼭 눌러왔던 모든 감정들이 폭발하듯 뛰쳐나왔다.


꺼이꺼이 얼마나 울었는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이 모든 일들, 아무도 설명해 주지고 않고 질문 조차 할 수 없었던 모든 일들, 멈춰지지 않는 나의 모든 울분, 절망, 억울함, 그리움, 하지만, 무엇보다 엄마...

사실, 뭐가 억울하고 뭐가 화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도 상관없다. 단지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걸로 다 괜찮다. 그거면 되는데 그거 하나가 없다.


얼마나 울었는지는 안에 있는 모든 내장기관들이 다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실제로 살아 존재하고 있는 건지도 혼미해진 느낌이다. 그래도 이제 응어리들이 밖으로 많이 나왔는지, 점점 진정이 되기 시작하니 내 머리와 내 가슴이 정말 뭐 하나 남지 않고 텅~ 빈 것 같았다.


진정이 되기 시작하니 하얀 할아버지의 존재가 다시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이 분 앞에 모든 걸 고백하고 내려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늘 이름을 알게 된 할아버지 앞에서 내 모든 속을 다 들켰는데도, 창피함이 아닌 평안한 흰 구름이 뭉개 뭉개 나를 싣고 가는 듯한 깨끗해지고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데이빗, 모든 인간은 그동안 만난 사람들이 그 안에 담겨 있는 법이란다.
너에게는 너를 낳아주시고, 너를 가장 사랑하는 엄마가 가장 많이 담겨있겠구나.

엄마가 어디에 계시든지 네 안에 네 엄마는 언제나 계시는 거란다.
엄마에게 네가 희망이듯, 너도 희망이 되어 드려야 한단다.

데이빗, 네 어머니는 분명 그분의 희망을 절대 놓지 않으실게다.
너도 절대 놓지 말아라. 알겠니?”

부드럽게 토닥이는 목소리로 마크할아버지는 데이빗의 촉촉이 젖은 초롱초롱 빛나는 두 눈망울을 그윽이 바라보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그 희망이 바로 너'라고 손가락 하나로 살포시 데이빗의 코를 건드신다.


할아버지의 그윽하지만 희망으로 꽉 찬 두 눈과 마주친 데이빗은 아직 다 마르지 않은 눈물과 함께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네. 꼭 그럴게요”


내 눈물들은 바다의 바람처럼 날아갔고 그 눈물들은 그 방울방울마다 나의 모든 어두움들을 담아 날아갔나 보다. 내 머릿속은 텅 비어졌고, 내 안에는 엄마에게 내가 희망이듯, 희망의 글씨가 가득해졌다. 이제 더 이상 크고 묵직해서 절대 옮겨지지 않을 것 같던 까만 큰 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에 계시던 엄마가 나를 놓지 않으시듯, 나도 엄마를 놓지 않을 것이다. 난 엄마가 죽었을 거라 믿었고 그래서 난 이 세상의 모든 희망은 더 이상 내게 존재하지 않은 거라 생각했다. 왜 난 내 생각만 했을까. 엄마는 어디 계시던 그곳이 이 세상이던 하늘나라이건, 엄마는 나를 절대 놓지 않을 것이다.


엄마가 어디 계신지 내일 내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내가 알 수 있는 건 없지만, 엄마가 나를 분명히 붙들고 계실 거라는 건 분명히 안다. 어디서든 곧 보게 될 엄마를 생각하며 난 내 삶의 끝까지 최선을 다 해서 완주하고야 말겠다.


가지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 살다 마지막 움껴짐을 마치며 낙하하는 그 나뭇잎처럼 최고의 아름다운 춤을 공기 중에 날리며 ‘난 살아있다’, ‘나의 삶은 아름답다' 노래하며 마지막까지 완주하는 삶을 살리라.



8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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