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 없는 섬 X아일랜드 연재 중
"나는 이곳의 사람들은 거의 알기에 새로운 얼굴을 보니 바로 알겠더구나. 정부에서 이곳으로 배치를 받아 왔겠구나 싶었지."
“그걸 어떻게 아세요?”
“그걸 아는 건 어렵지 않지. 이곳은 그런 곳이란다. 누구나 서로 말은 하지 않지만 알고 있는 사실이란다. 자의로 이곳에 오긴 힘들지.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도 다른 곳에 보내지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냐. 이곳도 지낼만하단다. 그전엔 어디에서 살았니?”
“에밀톤이요..”
“큰 도시에서 왔구나. 상대적으로 이곳이 심심하고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네 또래들이 모이는 학교 같은 집합소도 있고 하니 친구도 사귈 수 있을게다.”
“네..”
사실 이곳에 와서 내 또래의 아이들은 본 적이 없었다. 관심도 없었다. 난 에밀톤의 친구들 이외 다른 친구들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친구들은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같이 게임도 하고 축구도 했던 친구들의 얼굴들이 떠오르면서 다시는 못 볼 것이라 생각하니 다시 큰 바위가 내 안에 자리 잡을 것 같았다.
“같이 지내던 친구들, 선생님들이 아직은 많이 그립겠구나.”
“네..”
마치 내 맘을 읽고 있는 것 같은 마크 할아버지에게 신비함마저 느껴지기도 했지만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표하면 내 감정을 들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좋은 거란다.
그 사람을 사랑했다는 거니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내가 격렬히 살아 있다는 거지.”
난로 속에서 뭔가 뒤적뒤적하시며 뜨거운 옷을 입은 감자가 김을 모락모락 내면서 나왔다. 할아버지는 능숙하게 감자를 집게로 짚어 오래돼 보이나 세월의 때가 운치 있게 느껴지는 사각 나무 쟁반에 올려 내게 건넸다.
잘 익은 감자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할아버지가 반으로 가르자 폭신한 하얀 구름빵처럼 뽀얀 감자살이 뜨거운 김을 연신 뿜어내며 드러났다.
“그래 형제들은 더 있니?”
“아니요. 저 혼자예요”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형제가 없으니 심심할 수 있겠구나. 부모님은 집에 계시니?”
“아빠는 기상관에 가세요.. 그리고…”
나도 모르게 코가 매워지더니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이제껏 엄마 얘기를 다른 사람과 해 보지 못했다. 내 안에 매일 수억만 번을 불렀던 엄마건만 입밖에 꺼내려했던 의도는 없었지만 엄마라는 말이 내 안에서 나오려 할 때 느꼈다. 난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엄마를 부를 수 없었다. 난로 안으로 뒤적거리던 할아버지가 먼저 입을 여셨다.
“함께 오지 못한 게냐?”
“…”
“그랬구나. 예측은 했다. 그래도 희망은 버리지 마라”
난 꿈을 꾸는 것 같다. 이 할아버지는 이미 다 아는 것 같았고 그게 내 꿈이 아니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희망이라는 단어는 나와 내 가족 인생에 이미 사라진 단어 아니었던가..
어떻게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 수 있다는 거지. 나와 내 가족은 정부가 ‘X’를 부여했고 그 X는 배반반동을 뜻하며 곧 죽음이다. 다행인지 비극인지 정부는 과학자였던 아빠의 능력을 고려해서 나와 아빠를 이 나라에 있는 줄도 몰랐던, 지도에 표시돼 있지도 않은 이곳에 우리를 보냈다. 친구들에게 인사할 시간도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줄 모르고 자고 있던 그날 갑자기 군인들이 들이닥쳐서 우리 가족이 얼마나 악질이고 더러운지 판결문을 읽어주고는 우리의 눈과 귀를 다 가리고 어디론가 데려갔고, 그곳에서 엄마도 아빠도 보지 못한 채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그 후 아빠와 나만 다시 눈을 가린 채 차를 타고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이 이곳이다. 난 이곳의 이름도 알지 못한다.
난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살아계신지 아닌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데 언젠가 에밀톤에서도 이런 일이 학교 친구 스카비에게 일어났다고 들은 적이 있었고 그 부모들은 모두 처형되었다고 들었다. X 딱지를 받으면 무조건 죽음이라고. 그건 공식과도 같은 것이라고 들었다.
영문도 모른 채 우리 가족은 딱지를 받았고 나는 이곳에 보내졌다. 하긴 이름도 없다는 이곳에 보낸 거 보면 난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겠지. 없는 사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어도 좋으니 엄마가 살아있다면..
“이곳에는 간혹 너처럼 정부가 강제로 보내서 온 사람들이 온단다. 하지만 꼭 기억해라. 아무리 실오라기 털만큼의 희망이 없어 보이더라도 희망은 반드시 있단다. 단, 네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 희망이 오히려 사람을 더 힘들게 하면요?”
“희망은 절대 사람을 버리지 않아.
문제는 사람이 쉽게 희망을
버린다는 거지.”
“희망은 절대 사람을 버리지 않아. 문제는 사람이 쉽게 희망을 버린다는 거지.”
“그런데 희망이 없으면요?”
“희망은 공기처럼 이 세상에 꽉 차있단다. 희망이 이 세상을 덮고 있는게지.”
그때 내 앞에 노래하던 나뭇잎들과 마지막 낙하의 순간에도 빙그르르 춤을 추던 나뭇잎들의 장면이 스쳤다.
“맞아요”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말..
“허허허 그렇게 대답을 해주니 아주 좋구나. 오늘은 네 덕에 특별히 더 좋구나.”
내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난로의 열기가 너무 센 건가..
“그럼 저희 엄마도…”
순간 내 눈에 이미 차오른 눈물 때문에 이 방의 모든 물건들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난로의 열기가 있으니 다행이다. 잘만 참으면 눈물이 흐르지는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