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1화 학교를 그만둔 그 후

학교를 그만두니 진짜 교육이 시작되었다 연재 중

by 여온빛


아! 어두워서 길이 안 보인 게 아니라,
아직 내가 걸어가지 않았던 거구나.

용기란 멀리까지 보여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앞이 보이지 않아도 발을 내딛는 마음이구나!




최근 학교를 그만둔 후, 준서의 마음속에 새삼 피어오른 깨달음의 소리이다.




햇살이 부드럽게 창틀을 넘는 아침, 준서는 조용히 눈을 뜬다. 자신의 리듬에 맞춘 하루가 이제 막 시작된다. 더 이상 억지로 울리는 종소리에 쫓기지 않고 일어나서 물 한잔 마신 후,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뛰어나간다. 일단 밖에 나가서 뛰면서 폐에 깨끗한 바람으로 채우고 잠기운도 벗어낸다. 몸은 하나씩 살아난다.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매일아침 첫 루틴이다.


준서는 학교의 스케줄을 삭제한 채, 그동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하지 못했던 농구와 바이올린을 연습하는 시간을 자기 스케줄에 넣고, 수학을 차근차근 배울 수 있도록 수준을 낮춘 자기만의 눈높이 수학을 하기 시작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수학을 편하게 공부하는 느낌이 괜찮다.


모르는 건 부모님 찬스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준서가 좋아하는 책 읽기 타임이 많이 확보되었다. 이것도 꽤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그리고, 아침에 샤워하고 드라이어 하는 시간 대신 아침공기를 맡으며 뛰고 간단한 농구 스킬연습을 하고 아서 아침식사를 하는 스케줄로 바뀌었고 바뀐 스케줄이 본인에게 잘 맞는다고 느꼈다.


아침식사가 끝나면 제일먼저는 바이올린 연습을 한다. 그다음은, 보통 수학을 먼저 시작하고 나머지 시간은 그날그날 나름대로 정해 둔 공부들을 찾아 한다. 어떨 때는 본인이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할 때도 있고 어느 날을 정해 둔 것보다 덜 하게 될 때도 있다. 어쨌든 직접 고른 책 한 권을 펼치면, 지식은 주입이 아닌 알고 싶은 모험이 되고, 궁금한 마음이 페이지를 넘긴다.


학교에선 늘 벽처럼 느껴졌던 시간표가 이젠 그만의 삶의 설계도가 되었다. 억지로 끼워 넣은 퍼즐 같은 일상이 아니라, 딱 맞는 조각들로 채워진 하루.


준서는 이제야 비로소 자신이 살아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빛나는 성적표가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내가 선택하고 좋아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것이 꽤 본인을 발전케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뭐랄까 작지만 단단한 기쁨이랄까. 누군가와 비교당하지 않아도 되고, 몰라도 그냥 넘어가는 식이 아닌 내가 궁금한 것은 내 속도에 맞게 조절하면서 알면서 다음 단계로 가는 것이 기분 좋았다. FOMO가 아닌 진정한 JOMO가 된 기분


준서는 학교를 그만두니 진짜 나에게 맞는 교육이 시작된 기분이다.




예전에도 돈이냐 아이냐 이런 고민으로 수진이가 매우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둘째 아이가 어릴 때였는데 그때도 수진이는 아이를 택하고 돈을 포기했다. 항상 교육 속에 있다 보니, 엄마의 부재가 아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그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그녀의 선택은 옳았다.


이번에도 그녀의 선택이 옳을 거라 믿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녀는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내려놔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녀가 내려놔야 하는 것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예상하고 있지만,


3차원의 시공간에 갇혀 있는 인간으로서 확실한 진실 하나는 시간이 그녀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을 만큼 그녀를 힘들게 했던 건, 누구에게도 말 못 했던 가난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그때와 다르다고 되뇌며 '수진아, 넌 진짜 더 잘할 수 있어.'라고 스스로를 확신시켰다.


다음날 아침, 아침 임원 회의가 끝난 후, 수진이는 이사장님과 개인 면담을 신청한 후 그녀의 결정을 말했다. 좀 쉬고 싶다고, 다른 선생님들이 건강상 결근을 하면 수진이가 진짜 싫어했더랬는데, 그걸 본인이 사용한다니 사람일은 정말 모를 일이다. 수진이의 쉼은 학교에서 다름 선생님들의 쉼과는 다르다. 수진이는 실질적인 학교수업과 전반 커리큘럼과 행사에 대한 총괄역할을 해왔던 사람이고, 그것을 누가 대체할지..


중요한 행사나 스피치를 해야 할 때, 학교에서 수진이를 급하게 필요로 할 때는 수진이가 돕기로 하고 수진이는 이번 학기까지만 하고 일단 한 학기는 휴식을 갖는 것으로 이사장과 교장과 얘기를 마치고 자신의 일을 대신 메꿔줄 대책을 세웠다. 수진이는 물러서지 않고 미래를 위해 지금은 우선 자신과 가족을 돌봐야 한다고 믿었다.


이렇게 학교를 그만둔 아들과 수진이가 이렇게 일상을 한 공간에서 시작한 후, 아들에게 필요한 공부를 안내하고 모르는 건 가르쳐 주고, 아들의 운동과 악기수업을 후원하며 하루하루 지나니 어느새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째 되었을 때였다.


아침식사를 느지막이 한 후 늘 해 오던 것처럼 커피와 우유를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던 차, 준서가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수학이 엄청 재밌더라. 처음에 공부할 때는 너무 어렵기만 했는데 조금씩 이해 가니까 풀리는 재미가 있어. 아직은 다 잘 풀리는 건 아니지만, 수학이 너무 재밌어서 한번 시작하면 시간이 엄청 오래 지나있는 거야. 그래서 다른 걸 진도대로 못 나간 건 있긴 한데, 그건 오늘 좀 더 해서 진도 맞춰볼게. 수학을 그렇게 오래 한 줄 모를 때가 있다 보니까 시간 분배를 잘못한 거 같아.’


수진이는 자신이 몇 달 전 기도했던 게 생각났다. 우리 아들들이 수학이 재밌다고 느끼고 잘하게 해 주세요. 말도 안 되는 기도지만. 그렇다. 이런 말도 안 될 거라 생각했던 일이 현실이 되다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게다가 준서는 본인 스스로 자신의 생활에 대한 스스로 평가와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한 대처까지 정확히 알고 얘기를 하지 않는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왜 저렇게 불만과 사달라는 것만 많은지 부모와 벽을 만들어가던 딱 봐도 사춘기남자아이였는데. 이렇게 기특한 말을 꺼내다니.


수진이는 너무 기쁘고, 자신과 아들이 학교를 그만둔 것에 대한 긍정적 효과가 나니 보람과 확신이 들었다.

수진이 인생 속 큰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처음엔 흔들렸다.
모두가 가는 길에서 벗어난다는 건, 늘 두려움과 '혹시 내가 틀린 건 아닐까?'라는 속삭임이 불안케 했다.
밤마다 결정을 되새기고, 창밖 어둠을 보며 마음속 계산기를 눌러보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하루가 다르게 아이의 눈빛이 변했고 무기력하게만 보이던 어깨엔 힘이 들어갔고
하루의 끝에 "좋았어"라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생활의 활력이 달라 보였다.


처음에는 외로움 속에서 내린 결정이었지만 이제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학교를 그만두니 진짜 교육이 시작되네?!

길이 보여서 걷는 게 아니라,
걸었기에 길이 만들어진다는 걸!

그 길을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한 발자국씩 남기는 기분이다.
그래, 길이란 용기 있게 신념을 가지고 걷는 자가 만드는 거지.

지도가 없어도 괜찮아. 박수가 없어도 상관없어.
내가 그리고 아들이 밟아온 발자국들을 보면서 걸으면 돼.
우리에겐 그게 박수고 희망이야.

이렇게 세상 속에서 만든 우리만의 길 참 괜찮다!



12화 다음 편에 계속

keyword
이전 10화10화 인생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일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