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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다시 순이를 빼앗아 가겠는가

by 여온빛


그날 하늘은 어찌하여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는가

왜 그리 푸르렀는가

내게 일어난 일들을 다 보고도 그렇게 푸르렀는가


야속한 푸른 하늘아

잔인한 맑은 하늘아


세월아! 그간 네가 내 나라를 빼앗아갔어도,

내 남편을 총칼받이로 끌고 갔어도,

내 이웃을 거두어갔어도,

내 집을 앗아갔어도,

내 노래를 침묵으로 만들었어도,


견뎠다

견뎌냈어야만 했다


진달래보다 더 예쁜, 내 딸 순이

저 푸른 하늘보다 더 맑은, 내 딸 순이

종달새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를 하는, 내 딸 순이

내 마지막 희망이요

내 유일한 생명인 내 딸 순이가 있기에


이제 순이 엄니는 어찌 살꼬

그 맑디 맑은 청량한 하늘 아래

새솔바람이 귓가를 가만히 흔들고 가던 그날

유일한 희망이요

유일한 생명인 순이마저 빼앗기던 그날


순이 엄니는 어찌 살꼬

저 잔인한 하늘에 운명을 맡겨야 하나


원망의 눈으로 하늘을 쏘아보던 얼굴에

하늘의 하얀빛이 가만히 내려앉는다


순이 엄니 부서진 심장에서 나온 검은 칼날이 글씨 되어

한 자 한 자 꽂힌다

한 획 한 획 기억된다

한 점 한 점 생명의 씨앗이 된다

희망의 빛이 된, 순이가 다시 하나하나 살아난다


글씨만큼 많은 순이가 태어나

글씨만큼 많은 순이 엄니들의 마음을

안아주고 쓰다듬고 토닥토닥한다


눈물이 나면 같이 울고

웃음이 나면 같이 웃고

슬픔이 나면 같이 슬퍼하고

그 부서진 심장 안에 잃어버렸던

희망의 빛을 부활시킨다


목숨이요 인생이요 세상이요

사랑이요 온마음이요

쏟아낸 피와 땀이요

마지막까지 피어낸 기적 같은 꿈이요


거센 푹풍속에서도 꺾이지 않으려는 빛으로

다시 태어난 글쓴이의 희망, 순이를

누가 다시 빼앗아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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