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규 Mar 31. 2024

다시 읽는 에피쿠로스의 쾌락론 4

말과 심상, 감각, 물체와 허공

대요약집에서 에피쿠로스는 자연과학자들의 방식처럼 직접적으로 사물의 본성을 알아보기 위해 그것을 분해, 해체, 분석하는 실험을 행하지 않는다. 그는 마치 데카르트가 사유 속에 존재하는 본유관념과 외래관념을 구분하고, 외래관념에서 물체의 존재를 추론하는 과정과 비슷한 경로로 자연에 접근한다.


‘헤로도토스에게 보낸 서간’에서 그는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 근거해서 그것이 지성에서 생겨난 것인지, 외부 사물의 탐구와 관련한 것인지, 감각 인지와 상관없이 지성에서 나온 것인지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데카르트는 마음을 깊이 성찰한 다음, 마음 안에 본유 관념(선천적인 관념: 동일성, 완전성 등)과 외래 관념(후천적인 관념: 나무, 꽃 등)과 조작 관념(합성한 관념: 유니콘, 반수반인 등)을 구분하였다.


에피쿠로스는 감각 인지로부터 주어지는 심상(impression)에 주목하여 확실성의 근거를 찾으려고 한다. ‘이 장미는 붉다’는 인상은 장미란 식물로부터 유래한 심상을 판단으로 확정한 것이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부터는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유물론적 근거와 개별성 우선의 원리가 도출된다.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 생각하는 나) 역시 일차적으로는 그의 나이다.

‘우주는 물체와 허공이다.’ 물체들이 존재함은 감각 자체에 의해 어디든지 증명되고, 추론을 통해 불확실함을 증명하려면 반드시 감각에 근거해야 한다. 에피쿠로스의 이런 전제는 우주로 존재와 무로, 인식의 근원을 감각과 비감각으로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고대인에게 물체가 없는 빈 공간은 허공 혹은 무로 사유된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에 의하면 완전한 진공(vacuum)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아직 우리가 알 수 없는 암흑물질, 암흑에너지로 차있다. 현대철학자는 고대 철학자들처럼 무나 허공이나 진공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들뢰즈는 ‘자연은 ‘이다 est’가 아니라 ‘그리고 et’ 속에 표현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이런 것이고, 저것은 저런 것이다. 자연은 번갈아 뒤섞임 속에서, 유사성과 차이 속에서, 응축과 풀어짐 속에서, 부드러움과 거침 속에서 표현되는 것이다.


이런 사유 방식을 들뢰즈는 철학적 다원주의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것이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본질적인 다원주의와 비너스적 자연에 대한 찬가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들뢰즈는 이런 사유야말로 ‘자유의 사유’라고 말한다.


작가의 이전글 다시 읽는 에피쿠로스의 쾌락론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