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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May 08. 2024

다시 읽는 에피쿠로스의 쾌락론 11

고통과 평정심

에피쿠로스는 기록에 의하면 요로결석으로 인한 신체의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사색을 계속했으며, 마침내  육체의 고통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프로이트 역시 말년에 지나친 흡연으로 구강암에 걸려 죽어가면서도 수술 시에 마취를 거부하였는데, 오랫동안 무의식과 의식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고통을 주관과 분리된 객관적, 생리적 현상으로 여기면서 마치 통증을 정신적으로 극복하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독일의 의사 헤르베르게 플뤼게는 ’ 아픔에 대하여 ‘라는 책에서 몸과 병들을 철학적으로 고찰하는데, 만성통증을 가진 환자들이 주로 우울증에 빠질 수밖에 없는 시례들을 상세히 설명한다.


우리가 심신일원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만성통증은 마음의 질병 즉 두뇌 신경계의 교란을 가져와서 극심한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으로 연결되거나, 아니면 프로이트가 말한 ‘죽음의 충동’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될 것이다.

에피쿠로스가 남긴 다음의 말들을 보면 그가 육체의 고통을 극복하고 정신적 쾌락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 일임을 보여준다.


“모든 고통이 제거될 때, 쾌락들의 크기는 한계에 도달한다. 쾌락이 있는 곳에는 그 쾌락이 존재하는 동안에는 몸의 고통이 없거나 마음의 괴로움이 없거나 둘 모두가 없다.


고통은 육체에 지속해서 머물지 않는다. 극심한 고통은 가장 적은 시간 육체에 머물고, 쾌락을 뛰어넘는 육체적 고통도 여러 날 머물지 않는다. 게다가 만성적인 질병인 경우에는 육체적인 쾌락이 고통보다 더 커진다.


정의로운 사람은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난 삶을 살지만, 불의한 사람은 고통과 괴로움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간다.


일단 결핍으로 인한 고통이 제거되면, 육체적인 쾌락은 증가하지 않고, 단지 형태만 바뀐다. 반면에 정신적인 쾌락은 우리 지성이 쾌락과 정신에 가장 큰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 지 이해했을 때 그 한계에 도달한다. “—에피쿠로스 주요 가르침들

나사렛 예수는 로마 군인에게 포박되어 죽기 전까지극심한 신체적 고통을 경험한 것으로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망태에 싸여서 폭행을 당했으며, 거의 6시간가량 십자가에 못 박혀 내려오지 못하고 죽었다.


그가 십자가에서 남긴 일곱 말 중 하나는 “목이 마르다‘였다. 처음에는 로마 병사가 준 식초를 거부했으나 결국 삼키고 고함을 지르며 죽었다. 그의 죽음은 신의 죽음이 아니라 인간의 일반적 죽음이었다. 예수는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고 표현했다.


고타마 싯다르타 즉 석가모니 부처 역시 말년에 만성설사(이질)로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병사하게 된다. 그는 스스로 좌망(후에 불교의 선사들이 앉아서 죽음) 하지도 못했다.


과연 그들은 에피쿠로스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죽었을까? 아니면 지극히 사람다웠길래 제자들이 따랐지 않았을까? 그러나 후에 성인으로 추앙된 그들 중 한 명은 부활로, 다른 한 명은 열반이라는 영생을 획득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에피쿠로스는 죽고 사라졌다. 그는 시간 속에서만 영원을 살았다. 고통을 안고 살았지만 고통에 매이지 않았다. 이것이 그의 쾌락론의 진수이다. 어차피 고통은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정심에 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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