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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Apr 26. 2024

다시 읽는 에피쿠로스의 쾌락론 8

죽음에 대하여 2

현대에서 ‘죽음’이란 주제를 다각도로 연구한 대표적 철학자는 예일대에서 1995년부터 ’DEATH’란 제목으로 교양강좌를 개설하여, 책으로 낸 셀리 케이건이다. 이 강좌는 ‘삶과 죽음과 영생에 관하여’ 란주제에 관한 14가지 물음을 철학적으로 논의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강좌(책) 9장의 제목은 ‘죽음은 나쁜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여기서 저자는 죽음이 나쁜 이유가 삶의 좋은 것들을 모조리 빼앗아가기 때문이라는 박탈 이론을 소개한다.  그러나 이 이론은 다음과 같은 에피쿠로스적 논증으로 반박될 수 있다.


A) 우리가 존재할 때 뭔가가 우리에게 나쁜 것이 될 수 있다. B) 죽고 나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C) 그러므로 죽음은 우리에게 나쁜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면 이제 비존재를 나쁜 것으로 주장하는 것만 남는다. 여기에 에피쿠로스 사상의 계승자 루크레티우스의 이론이 대두된다.—셀리 케이건의 ‘죽음’ 중에서

슬픔은 남은 자의 몫이다. 죽은 자에게는 즐거움도 슬픔도 없다.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보고, 자신의 시신이 홀로 땅에 매장되거나 화장되는 것을 추측한다. 초상을 치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죽음은 모든 것의 상실이고, 박탈이고, 나아가 사랑하는 자들과 이별을 미리 상상한다.


박탈이라는 용어는 좋은 것을 자기 뜻과 상관없이 빼앗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죽음은 좋은 것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운 것도 가져간다.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시한부 환자에게 존엄사는 오히려 인간적인 선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렁뱅이로 살아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처럼 극단적 예를 제외하고 생명은 무생명보다 충만하고 풍성한 에너지와 영감으로 가득 차있다. 시인은 돌과 바위보다는 꽃을, 사막보다는 오아시스를, 소멸보다는 탄생의 신비로움을 노래한다.

루크레티우스는 죽음이 나쁜 것이라는 주장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죽음에 대한 예상이 암울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혼란에 빠지고 만다"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루크레티우스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우울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죽음이 나쁜 것이라고 믿는다.


왜? 죽고 나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탈 이론이 설명하는 것처럼, 살아있다면 누릴 수 있는 삶의 모든 축복들을 죽고 나면 절대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루크레티우스 역시 이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내가 죽고 난 이후의 기간이 내가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시간은 아니다.  


살아있다면 그것만으로 삶의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었을 유일한 시간은 아니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또 다른' 시간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기간이다.  내가 죽고 나서도 영겁의 시간은 이어질 것이다. 이를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내가 존재하기 이전에도 영겁의 시간이 있었다.


루크레티우스는 이렇게 묻는다.  “죽음이 정말로 나쁜 것이라면, 내가 태어나기  전에 영겁의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우울해야 하지만, 그는 그것이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말한다. 그렇지 많은가?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에 영겁의 세월이 있었다는 사실에 우울해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죽은 이후에 비존재의 상태가 이어진다고 해서 우울해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루크레티우스는 결론 내리고, 우리 모두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셀리 케이건의 ‘죽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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