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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May 01. 2024

다시 읽는 에피쿠로스의 쾌락론 9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마르크스 1

흔히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자 중에서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토스의 유물론과 원자론 그리고 결정론을 이어받은 철학자로 여겨진다. 신화시대, 신들의 시대에 가장 반기를 든 자연철학자는 데모크리토스이다.


그는 우주가 원자와 빈 공간(허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으며, 특별히 그것들에 탈레스처럼 신성을 부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원자의 운동은 신의 목적이 아니라 기계적이며, 결정론적 법칙에 의하여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은 원자가 아니라 그것의 모상 즉 일종의 가상이라 보았다.


여기에 이론적인 모순 혹은 이율배반이 존재하는데, 이 문제를 지적하면서 에피쿠로스와의 차이를 설명하며, 에피쿠로스의 철학에서 현대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정립한 철학자가 바로 카를 마르크스이다.


이제 우리는 그의 박사논문을 통해 에피쿠로스가 어떻게 세계사에 다시 관여하는지 살펴보자. 그러나 데모크리토스 역시 자연 이론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윤리학에서 쾌락주의의 원천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도 유념하기로 하자.


 “궁극의 목적은 쾌활함인데, 이것은 어떤 사람들이 잘못 배우고 받아들였듯이 쾌락과 같은 것이 아니라 쾌활함에 따라 잠잠하고 고요하게 영혼이 지내는 것이며 어떠한 두려움이나 미신 또는 다른 어떤 상태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안녕 (euesto)이라고도 불렀고 다른 여러 이름으로도 불렀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중에서

많은 논의가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에서 자연학이 동일하다는 점을 옹호한다. 원자들과 공허는 명확히 동일하다. 단지 세목의 몇몇 규정에서만, 자의적이고 따라서 중요하지 않은 차이가 지배하는 듯하다.


그런데도 기묘하고 해결할 수 없는 수수께끼가 있다.  두 철학자는, 사상(Gedanken)과 현실(Wirklichkeit)을 반영하는 모든 점에서 극단적으로 대립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것을 증명하려고 애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데모크리토스는 혼과 이성(Seele und Verstand)이 완전히 동일하다고 제시한다. 그 이유는 그에게는 현상이 진리(das Wahre)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형이상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데모크리토스는 어떤 것도 진리가 아니거나 진리가 우리에게 숨겨졌다고 주장한다."이와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두 구절이 모순적이지 않는가?


회의적이고 불확실하고 내적으로 모순적인 데모크리토스의 이런 관점은, 원자와 우리의 감각에 나타나는 세계의 관계가 규정됨으로써만, 훨씬 넓게 전개된다. 한편으로 감각적 현상은 결코 원자 자체에 귀착되지 않는다. 이것은 객관적 현상이 아니라 주관적 가상(Schein)이다. "진실한 원리는 원자와 공허이다. 다른 모든 것은 견해, 가상이다."


 단지 견해에 따라 차가움이 있고 견해에 따라 따스함이 있다. 하지만 진실에 따라 원자와 공허가 있다. 그러나 이 진실은 변화하기 쉽고 불안정한데, 현상이다. 그러나 이 현상이 진실이라는 주장은 모순이다.


데모크리토스는 감각적 현실을 주관적 가상으로 변화시킨다. 그러나 객관의 세계에서 쫓겨 난 이율배반(Antinomie)'은, 그 자신의 자의식 안에서만 존재한다.  데모크리토스는 따라서 이율배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에서 자연 철학의 차이, 카를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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