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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Jun 29. 2022

시와 철학 5

상상력의 도상학(圖像學): 검은새를 보는 13가지 시각

검은새를 보는 열세 가지 시각


                           -윌리엄 스티븐스 

I 
눈 덮힌 스무 산 속에, 
단 하나 움직이는 것은 
검은새의 눈이었다. 

II 
나는 세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 속에 
검은새가 세마리 있는 나무처럼. 

III 
검은새는 가을바람에 선회했다. 
그것은 무언극의 작은 일부였다. 

IV 
남자와 여자는 
하나다. 
남자와 여자와 검은새는 
하나다. 

V 
나는 어느 것을 더 좋아해야 할지 모른다, 
굴절의 아름다움인지, 
암시의 아름다움인지, 
검은새의 노래인지 
그 직후인지. 

VI 
고드름이 긴 유리창을 채웠다 
원시적인 유리로. 
검은새의 그림자가 
그것을 가로질렀다, 이리 저리. 
그 기분은 
그림자 속에서 
풀 수 없는 원인을 찾았다. 

VII 
오 하담의 마른 사내들이여, 
그대들은 왜 황금새를 상상하는가? 
그대들은 검은새가 주변 
여인네들의 발치에서 
걷는 것을 보지 못하는가? 

VIII 
나는 고상한 액센트와 
명쾌하고 적절한 리듬을 안다, 
나는 또한 안다, 
내가 아는 것에 검은새가 
포함되어 있음을. 

IX 
검은새가 안보이게 날아갔을 때, 
그것은 많은 원 중 하나의 
가장자리를 표시했다. 

X 
푸른 빛 속에 날고 있는 
검은 새의 모습에, 
심지어 목청좋은 갈보들도 
날카롭게 외칠 것이다. 

XI 
그는 유리마차를 타고 
코네티컷으로 갔다. 
한 번은 두려움이 그를 꿰뚫었다, 
그가 자기 마차 그림자를 
검은새로 
잘못 보았을 때. 

XII 
강은 움직인다. 
검은새는 날고 있어야만 한다. 

XIII 
오후 내내 저녁이었다. 
눈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눈이 오려 했었다. 
삼나무 가지에 
검은새는 앉았다.



감성적 지각과 오성적 반성을 매개하는 능력이 바로 구상력 Einbildungscraft 즉 상상력이다. (칸트) 감성은 시공을 통해 주어진 현실을 이미지로 수용하며 오성은 그것을 자발적으로 개념화한다.


유학의 성학십도와 불가의 십우도가 일종의 깨달음의 도상학이라면 스티븐스의 이 시는 시적 상상력의 도상학이다. 13편의 도상학적 서술을 통해 구상력 특히 생산적 구상력(상상력)의 구조를 펼친다.



I 
눈 덮인 스무 산 속에, 
단 하나 움직이는 것은 
검은새의 눈이었다.


실재의 세계와 일차적으로 접촉하는 것은 감성 혹은 감성적 이미지이다. 감성은 일종의 사진과 같다. 그러나 포커스는 개념적 오성의 배후에 있는 시적 자아라는 통각(統覺)이다.


흰 눈으로 덮인 20세 산의 이미지와 선명하게 대조적인 검은새는 정과 동을 넘어서 눈이라는 선험적 통각(先驗的 統覺, transzendentale Apperzeption)의 지배 하에서 펼쳐지는 상상력의 시각을 상징한다.



II 
나는 세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 속에 
검은새가 세 마리 있는 나무처럼.


감성과 오성과 상상은 세 마음이다. 세 마리의 검은새는 이 세 마음의 나무에 앉아 있는 세 마리의 새이다. 검은새의 이미지, 검은새의 개념, 검은새의 상징이 그것들이다.



III 
검은새는 가을 바람에 선회했다. 
그것은 무언극의 작은 일부였다.


현상의 세계에는 파동이 인다. 이 파동은 감성을 촉발시키고, 오성을 자극하며, 상상을 발동시킨다. 그리하여 무의미의 실재가 의미의 세계로 변용된다. 자연이 인간화된다.



IV 
남자와 여자는 
하나다. 
남자와 여자와 검은새는 
하나다.


흑백사진 속에서 흑과 백은 하나의 단일한 이미지이다. 그것은 사진기의 렌즈로 투영된 검은색과 새의 도형과 사진사의 마음도 하나이다. 우뇌의 통합성이 이렇게 뇌의 상상력을 작동한다.


V 
나는 어느 것을 더 좋아해야 할지 모른다, 
굴절의 아름다움인지, 
암시의 아름다움인지, 
검은새의 노래인지 
그 직후인지.


쾌와 불쾌의 판단 이성이 상상력과 더불어 작동한다. 시적 아름다움은 무목적적 합목적성이다. (칸트) 그러므로 시인은 미감의 발생이 감성적 실재에 근거한 지, 상상의 암시인지, 오성의 굴절에 기인한 지 철학자처럼 인지할 수 없다.


VI 
고드름이 긴 유리창을 채웠다 
원시적인 유리로. 
검은새의 그림자가 
그것을 가로질렀다, 이리저리. 
그 기분은 
그림자 속에서 
풀 수 없는 원인을 찾았다.


겨울과 흰 눈 그리고 유리와 그림자는 생명의 역동성을 동결시키고 파괴하는 마성적 세력(틸리히)이다. 역설적으로 그림자의 주인공인 검은새는 여전히 역동적이다.  생명의 역동성과 교감하는 것은 시인의 기분 곧 생체험이다. 이 생체험이 시적 상상력의 근원이다.(딜타이)



VII 
오 하담의 마른 사내들이여, 
그대들은 왜 황금새를 상상하는가? 
그대들은 검은새가 주변 
여인네들의 발치에서 
걷는 것을 보지 못하는가?


마른 사내로 상징되는 인간 존재의 결핍성은 황금새라는 영원과 풍요를 욕망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삶은 검은새 즉 죽음과 파괴를 동반하면서 살다가는 언젠가 대지의 여신 품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운명을 자각하기 어렵다.



VIII 
나는 고상한 액센트와 
명쾌하고 적절한 리듬을 안다, 
나는 또한 안다, 
내가 아는 것에 검은새가 
포함되어 있음을.


시인의 생산적 구상력 즉 창의성은 언어의 의미에 액센트와 리듬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 창조는 불멸적이지 않다. 그것은 깨어지기 쉬운 그릇이고, 찢어지기 쉬운 화폭에 새겨진 이미지들이다. 아는 것에는 망각이 동반된다.


IX 
검은새가 안보이게 날아갔을 때, 
그것은 많은 원 중 하나의 
가장자리를 표시했다.


사멸의 부정성이 예술적 이상에서 일순간 은폐되었다 하더라도 시인은 상상력의 기반이 실재의 가변성에 기초한 것임을 그리고 인간 존재의 무화 가능성에서 창발성이 시작된다는 것을 상기한다.  수많은 상상적 이미지들은 일종의 원이고 이 순환의 중심은 곧 실존의 유한성이다.(하이데거)



X 
푸른 빛 속에 날고 있는 
검은 새의 모습에, 
심지어 목청좋은 갈보들도 
날카롭게 외칠 것이다.


창공의 빛은 푸른 빛이다. 부정성과 유한성으로부터의 초월은 상상력의 기반이다. 검은새는 비상한다. 그러므로 모든 대지의 결정론자들 즉 갈보들은 초월을 경고할 것이다. 그 날개는 곧 이카루스처럼 녹아서 떨어질 것이라고.



XI 
그는 유리마차를 타고 
코네티컷으로 갔다. 
한 번은 두려움이 그를 꿰뚫었다, 
그가 자기 마차 그림자를 
검은새로 
잘못 보았을 때.


존재의 투명성을 안고 시인은 공간을 배회한다. 그 투명성은 연약함이기에 두려움이 엄습한다. (키에르케코르) 유리 같은 유한한 자유와 상상이 시간에 궤도를 달리는 인생이란 마차를 비상하는 검은새로 오인하게 한다. 인간의 자기 높임은 곧 유혹에 직면한다.(틸리히)


XII 
강은 움직인다. 
검은새는 날고 있어야만 한다.


모든 것은 흐른다. 존재는 흐름이다.(헤라클레이토스) 존재 안의 생명도 흐름이다. 인간의 삶도 흐름이다. 생체험은 흐름체험이고 시인은 흐름 안에서 함께 흐르며 모든 고정된 언어를 해방시킨다. 그러나 시인은 흐름과 더불어 홀로 날고 있는 존재자이다. (말라르메)



XIII 
오후 내내 저녁이었다. 
눈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눈이 오려 했었다. 
삼나무 가지에 
검은새는 앉았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 비상한다. (헤겔) 그러나 반대로 스티븐스의 검은새는 삼나무 가지에 앉았다. 산은 다시 산이고 물은 다시 물이다. 시는 즉물적(卽物的) 언어로 돌아가면실재와 통합된다. 상상력은 선험적 통각 안에서  위치를 찾는다.(칸트) 눈이 내리며 절대적 고요만 대지 위에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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