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규 Sep 13. 2022

시와 철학 7

심층의 철학: 지하철(地下鐵) 정거장에서

“지하철(地下鐵) 정거장에서

                     —에즈라 파운드

 

군중(群衆)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



‘군중 속에서’


20세기 파운드가 살던 유럽의 대도시에서 실질적인 군중은 도시의 거리의 대중교통에서 보다 효율적인 지하철로 이동한다. 도시의 거리를 지하철로 이동하는 사람들은 하이데거가 말한 세인(das Man) 이거나 혹은 마르크스가 명명한 쁘띠 부르주아(petite bourgeoisie)와 프롤레타리아, 학생 등이다.


결과적으로 다수의 군중은 자본주의의 물신숭배의 신화 속에서 평균적 일상성에서 조차 소외된 하부 그룹으로 몰락한다. 그들의 무의식적인 생존의 충동이 사회의 생산력이다. 이 생산력을 이용한 생산관계의 지배자는 자본가가 아니라 모든 생산재의 소비라는 잠재적 욕망이다.



‘유령처럼 나타나는’


군중은 본질적으로 대도시에서 지하철족이다. 그리고 동시에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거나 자가용을 모는 일반 시민으로 불려진다. 그러나 이들은 자본이나 화폐나 소지의 노예가 되어있다는 점에서 인격이 없는 유령이다.


데카르트가 사유하는 자아를 신체라는 ‘기계 속의 유령’으로 비유한 것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현대인에게도 적용된다. 인간은 소비사회에서 점점 신체-욕망 기계(들뢰즈) 안의 유령처럼 만족 없는 향락 때문에 분열하는 자아이다.



‘이 얼굴들’


현대인의 자화상은 바로 이 얼굴들이다. 일본 가부키 연극의 흰 분장과 검은 표식은 파운드의 이미지즘 시학에 하이쿠만큼이나 영향을 미친 듯하다.


유령과 같은 얼굴 이미지를 반영하는 다음 구절에 검은 가지에 핀 꽃잎들의 색조를 연상하는 것은 매우 쉽다. 가부키는 군국주의와 파시즘의 정치 미학으로 변형된다.


파운드가 파시즘을 옹호했던 아니든 간에 나치즘과 파시즘과 군국주의는 가장 단순한 이미지를 사용한 정치 이데올로기였고, 이것은 현대 소비사회의 광고 미학으로 발전한다.



‘까맣게 젖은’


왜 군중들은 까맣게 젖었을까? 모든 인간은 백지(tabla rasa)로 태어난다.(로크)  후천적 경험과 환경과 제도가 이 텅 빈 종이에 색깔을 입힌다. 선천적으로 평등한 인간이 후천적으로 불평등해진다.(루소)


프랑스 대혁명 이후 지하철에서 나온 군중들은 비록 백지는 아니지만 여러 색깔을 가져도 다수의 시민은 즉 대중 사회의 지하구조에  실존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검게 변색되고 구호회된다.


좌파와 우파의 정치적 균형은 파풀리즘화된 중도주의를 통해 글로벌 자본주의의 화폐경제로 통합되어 문명이 발생한 바로 그 시점의 사회구조 즉 3-10프로의 지배구조로 환원된다.



‘나뭇가지 위의’


도시의 상부구조가 구조화되어 있듯이 하부구조도 구조화되어 있다. 나무의 세로 길이는 뿌리의 세로 길이에 비례한다. 후기 자본주의의 정치적 평등은 경제적 불평등에 비례한다.


몽상적 시인은 자신의 환상의 출처인 무의식이 언어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사실(라깡)을 모르고 언어를 사용한다. 그렇지만 그가 사용한 상상력의 언어는 미래를 유혹한다.(바술라르) 후기구조주의는 파운드가 꿈꾼 몽상의 미래이다.



‘꽃잎들’


지하철로 빨려간 군중은 구조화된 심층의 구조들, 경제적 하부구조와 무의식적 심층구조와 실존적 소외 구조를 거쳐 그저 검은 가지에서 피어나는 꽃잎처럼 나타난다.


유럽의 경제적 중심이 베네치아에서 암스테르담을 거쳐 런던으로 이동하는 중에도 문화적 중심은 여전히 파리였다.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페티스트 시인인 보들레르가 파리의 우울을 노래하면서 파리의 이면을 묘사했다면 파시스트 시인인 파운드는 파리의 지하철에서 이면이 표면화된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유대계 철학자인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꽃잎이 떨어진 현대화된 파리를 조각들로 해체하고, 프랑스 철학자인 들뢰즈는 서구 문명의 이단자 니체의 도움을 받아 문화의 중심인 파리를 다시 복원한다.


하지만 근대에서 현대 유럽의 모든 흔적이 집산된 파리란 대도시의 실재를 가장 압축적으로 묘사한 언어는 바로 미국인 시인인 파운드의 ‘지하철 정거장에서’가 아닐까?



이전 06화 시와 철학 6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