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4
내가 믿었던 생각은 모두 내 눈에는 선하고 용맹하며 흠모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가져온 생각이었다. 대부분은 책에서 얻은 것이었다. 나는 어떤 생각을 관념적으로 '이해' 했다면 그 생각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 생각인 것처럼, '나 자신'인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여겼다. 당시 내 머릿속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으로, 내가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주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나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는 주장이라고 해서 반드시 진실은 아니며, 어떤 생각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면 그 권리를 획득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무렵 읽은 칼 융의 책은 이런 경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융은 '페르소나'라는 개념을 만들었는데, 페르소나는 '인격을 가장하는' 가면이며, 사람들은 이 페르소나가 진실하다고 믿는다고 주장했다.
“페르소나를 분석해서 가면을 벗겨 보면 개인적 요소라고 생각되던 것이 실제로는 집단적 요소임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페르소나는 집단정신의 가면일 뿐이다.
근본적으로 페르소나는 허구이다. 각자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지 개인과 사회가 타협한 결과이다. 우리는 이름을 택하고, 직함을 얻고, 역할을 수행하며, 어떠한 사람이 된다.
이 모든 것이 진짜 같아 보이지만, 본질적이고 개별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이는 부차적인 현실이자 타협안일 뿐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 과정에는 그 자신보다 타인이 더 많이 관여한다. 별칭 하자면, 페르소나는 겉모습이고 2차원적인 현실이다."(21-22쪽)
사람은 생리적으로 자연세계에서 출생하나, 문화세계에서 성장함으로써 자의식을 가진 개별적 주체로 독립한다. 그리고 이런 독립적 주체인 사회적 원자들이 계약을 맺어서 계약사회를 형성한다.
늑대 소년과 또래의 문명사회에서 자란 소년의 차이는 생물과 인간의 차이와 같다. 문명, 문화 속에서 아이는 소통의 도구인 언어를 습득하며 정보를 축적해 나간다.
아이가 배우는 언어는 문화의 소산이다. 언어에는 도구적 소통 이외에 가치나 규범이 내재하여 있는데 그것이 아이의 개인적 무의식을 형성하고, 이 아래에 집단적 무의식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심리학자가 바로 칼 융이다.
그러므로 피터슨이 자각한 것처럼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들 대부분이 주체적이고 의식적인 판단의 종합이 아니라, 개인적 무의식 배후의 집단적 무의식이 만들어낸 가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말재주가 뛰어났지만 그건 허상에 불과했다. 이 사실을 인정하기란 괴로웠다.
게다가 정말이지 끔찍한 악몽까지 꾸기 시작했다. 이전의 나는 비교적 평범한 꿈을 꾸는 편이었고, 또 시각적 상상력이 그다지 뛰어난 편도 아니었다. 어쨌든 마음을 온통 뒤흔들 만큼 끔찍한 악몽 때문에 잠자리에 들기가 무서웠다.
악몽은 현실처럼 생생했다. 꿈에서 벗어날 수도, 꿈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꿈은 대체로 핵전쟁과 종말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맴돌았다. 그게 당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악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 년이 넘도록 이런 끔찍한 종말론적 악몽을 일주일에 두세 번씩 꿨고, 이와 동시에 아무렇지 않게 대학에서 강의를 듣고 일을 했다. 내 머릿속에서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동시에 두 가지 '차원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영향을 받고 있던 것이다.
첫 번째는 내가 주위 사람들과 공유하는 차원으로, 거기에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하지만 두 번째 차원에서는 나만이 경험하는 것 같은 끔찍한 심상과 견디기 어려운 강렬한 감정에 시달렸다. 흔히 환상으로 치부될 만한 이 기이하고 주관적인 세계가 당시 내게는 현실 세계의 이면에 존재하는 듯이 느껴졌다.
도대체 현실이란 무엇인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점점 더 알 수 없었다. 현실은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가? 모든 것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를 알지 못한 채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23-25쪽)
현실은 주로 현상이다. 서구의 철학자들은 오랫동안 현상과 실재를 구분하고 변화하는 현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실재를 탐구해 왔다. 고대 희랍의 철학자를 이 실재를 원형 또는 원재료(arche)로 불렀다.
프로이트와 융은 현상과 실재의 이분법을 의식과 무의식의 이분법으로 대체한다. 융은 특히 인간의 집단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원형을 찾기 위해 꿈을 분석한다. 꿈은 개인의 무의식의 창고를 넘어서 인류의 집단 무의식의 원형들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융의 주장은 초기에는 그렇게 지지를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임상심리학자들의 관심은 환자가 가진 정신병적 장애를 치유하는데 목적이 있지 인류가 가진 집단 무의식의 원형적 이미지 예를 들면 신화나 종교에 내재한 의미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피터슨에게는 오히려 자신의 악몽을 해소하는데 프로이트가 아니라 융이 제시한 비교신화학적 탐구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제 이 책을 집필한 의도와 방향을 프롤로그에서 결론지을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