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사리아 Jun 13. 2022

하루살이

(짧은 단편)


<지영>

오늘 이태원 어때? 콜?


                                        오늘 물 좋아?


<지영>

태권 오빠들 온대, 콜? 빨리 말해.


                                        콜


태권 오빠가 온다면 오늘 고급 양주 마실 수 있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옷장을 열었다. 클럽에 어울릴 만한 가장 관능적인 옷을 물색했다. 등에 새겨진 날개 타투를 더욱 돋보이게 해 줄, 뒤가 한껏 파인 원피스를 골랐다.

 클럽은 제2의 나의 집이다. 귀를 때려 박는 시끄러운 음악. 알코올에 취해 흔들리는 사람들. 술과 담배, 향락이 뒤섞여 인생이 곧 쾌락임을 증명한다. 나는 나에게 딱 어울리는 그 쓰레기 같은 장소가 좋다. 만취한 누군가가 잔뜩 게워낸 토사물이 가득한 화장실은 마치 나 같아서 사랑스럽다.



“으... 골 깨지겠네... 어제 얼마나 마셨냐, 우리?”

막 잠에서 깬 지영이가 퉁퉁 부은 눈을 문지르며 물었다.

“글쎄... 언제 그런 거 생각하고 마셨냐? 우리가.”

클럽에서 나오면 늘 새벽이라 지영은 부모와 함께 사는 자기의 집으로 가는 대신 혼자 사는 내 원룸으로 온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얼큰한 해장국을 내어준다. 오늘도 지영에게 줄 얼큰 라면을 끓이며 답했다. 그리고 이어 물었다.

“오늘 바로 집에 갈 거야?”

“아니, 스터디 카페에 가야 해, 조별 과제해야 하는데.... 아, 그까짓 거 대충 하면 되는데 어떤 미친년이 한 마리 있어서 어찌나 땍땍거리는지. 지겨워서 가준다, 내가. 말 나온 김에 나 추리닝 좀 빌려줘.”

 다 번진 마스카라를 화장수로 닦으며 지영이 투덜거렸다.


 지영은 현재 대학생이다. 그것도 명문대생. 지영을 알게 된 건 자주 가던 클럽에서였다. 명문대생은 다 범생이일 거라는 내 편견을 확실히 깨준 존재다. 상스러운 말과 저렴한 몸짓이 특기인 그녀는 나와 같은 쓰레기였다.


 제대로 닦이지 않은 마스카라가 더 번져 판다 눈이 된 지영이 갑자기 뒤돌아 나를 보며 말했다.

“너도 같이 가자. 너 대학 생활 경험해보고 싶다며? 캠퍼스는 아니지만, 학생 기분 좀 느껴 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집과 연을 끊고 산 지 5년. 나는 대학에 가지 않고 검정고시도 치지 않았다. 중졸 학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닥치는 대로 하고 살았다. 패스트푸드점, 주유소, 식당, 편의점. 그리고 유흥업소까지.

 대학생들이 부럽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가끔 그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사교를 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었다. 내 주위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이 내일 없이 사는 하루살이 벌레들이다. 대학을 다니는 사람은 지영뿐이었다. 어느 날의 내가 술을 진탕 먹고 저런 개소리를 한 모양이다.


 오늘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시간이나 때우지 싶어 따라갔다. 그들을 동경한다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다. 나는 그런 저속한 감정 따위 가지지 않는다.

 

지영이 나를 데려간 곳은 신촌 거리에 있는 어느 스터디 카페였다. 10층 건물의 3층에 존재하는 가게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꺾으면 바로 보였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방이 즐비했다. 일자로 뻗은 복도를 조금 걸어 <Room 5>라고 적힌 곳의 문을 열었다. 큰 테이블이 방의 전부를 차지하는 심플한 공간에 그에 걸맞은 수수하고 재미없어 보이는 인간들 네 명이 각각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누가 봐도 명문대생다운, 한 마디로 범생 그 자체의 지루한 행색을 한 사람들이었다. 각 둘씩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관계로 나와 지영 역시 서로 마주 볼 수밖에 없었다.

 젠장, 테트리스도 아니고 셋, 하나로 나누었다면 나와 지영이 나란히 앉을 수 있었을 텐데. 처음 보는 사람 옆에 앉게 된 나는 그 불편함이 싫어 속으로 투덜거렸다.


“누구시죠?”

 네 명 중 가장 깐깐하게 생긴 여자가 나를 보며 물었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한치의 흩트림 없이, 포마드를 바른 듯 깔끔하게 올려 묶은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유행에 한참 떨어진 끝이 뾰족한 뿔테 안경은 마치 <B 사감과 러브레터>에 나오는 사감을 연상시켰다.


 지영이 과제를 마치고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같이 왔다며 양해해달라고 말했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미안한 구석이 전혀 없었다. 저 여자 엿 먹이고 싶어서 나를 데려왔구나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역시 쓰레기 같은 년. 차라리 처음부터 협조를 구하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게 가능한 애였으면 나와 어울리지 않겠지 라는 결론에 달하며 납득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여자는 뭔가 말하려다가 지영을 보고 이내 입을 다물었다. 아마 이전에도 숱한 마찰이 있었겠지. 지영에게 말해봤자 들을 애도 아니고 나와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이런 건가. 덕분에 나는 구석 자리에서 조용히 찌그러져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나를 제외한 다섯은 분주히 움직였다. 토론하기도 하고 언쟁하기도 하며 누가 어떤 파트를 얼마큼 진행하고 있는지 세세한 보고들이 이어졌다. 다섯이라 함은 지영 역시 포함인 것이다.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 같은 언어를 지영은 식은 죽 먹기처럼 후루룩 들이키며 나를 쳐다보았다. 이제껏 내가 알던 그녀가 아니었다.

 찰나, 지영이 깐깐한 여자만 엿 먹이려 했던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와 같이 다녀주기는 하지만 나는 급이 다른 사람이라는 걸 내게 알려주려는 거구나.


브라보! 나는 마음으로 손뼉을 쳤다. 이년, 내 생각보다 더 쓰레기였네.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구석에서 하품하며 앉아 있자니 좀이 쑤셨다. 대학생 생활이 궁금하다고 했지, 그들만의 리그를 보릿자루가 되어 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다. 담배나 한 대 피울까 싶어 일어나는 순간 깐깐한 여자가 날카롭게 말을 걸었다.

“가시는 건가요?”

“담배 피우러 가요. 지영, 너도 필래?”

여자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말했다.

“우리도 좀 쉬어 가며 해요. 너무 집중했더니 당이 떨어지네.”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나왔다. 누구는 책상에 볼을 대고 엎드리며 죽겠다고 웅얼거렸고 또 누구는 음료수를 먹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깐깐한 사감이 나를 째려봤지만 그래서 뭐?라는 눈빛을 쏘고 룸에서 나왔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적당히 담배 피울 장소가 있는지 둘러보았다. 건물 근처에는 모조리 금연 표기가 붙어 있었다.

_거지 같은 동네마저 짜증 나게 하네.

무슨 상관인가 싶어 금연 스티커가 붙어 있는 골목 입구에서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한 모금을 목으로 넘기자 지영이 다가와서 자기도 하나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손을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어 지영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 계집애는 줄곧 나를 뭐라고 생각한 걸까. 클럽에서 실컷 놀다가 동이 틀 새벽녘에 집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모텔이나 여관을 가야 하는데, 그건 돈이 아까웠나 보지. 그럼 나는 모텔비를 아끼기 위한 도구쯤이었던 건가.


아무리 내가 쓰레기 인생을 살고 있을지언정 누군가의 도구로 이용될 이유는 없다.


“미친년아, 너 간파당했어.”

나는 지영의 면전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던졌다.

“뭐?”

“꺼져, 간다. 연락하지 마라. 내 눈에 띄지도 말고. 다음에 만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담배를 땅에 짓이겨 끄고 어안이 벙벙해진 지영을 뒤로했다.

“야!!! 니 뭔데?! @##@$#$”

 지영의 고함과 욕설이 골목을 뚫고 지나갈 듯 울려 퍼졌다.

성질 고약한 건 너나 나나 마찬가지야.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주먹 쥔 오른손을 올려 가운뎃손가락을 곧게 폈다.


이거나 먹어라!


 내일도 없고 미래도 없고, 생각도 없고 돈도 없고 가족도 없고, 있는 거라곤 알량한 자존심과 쓰레기 같은 인생이라고 해도 감정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야, 이지영. 난 너를 꽤 좋아했고 친구라고 생각했다고. 이 나쁜 년아.




매거진의 이전글 예쁜 것을 사랑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