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부터 열, 다시 열하나

by 이고

하나부터 열, 다시 열하나


곧 겨울이 오겠지, 11월이니까


빨간 귓불에 동동거리며

날 반기는 작은 크리스마스트리

차가운 가죽장갑을 감싸는 너의 미소와

솜사탕 입김에서 봄이 길 것 같음을 느껴

시작이 반이랬지만 안타까워, 언제나 하나


눈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

걸음마다 뽀드득, 설렘이 밟혀서

주춤거리는 내 몸짓을 눈치챌까

남자답게를 곱씹는 쑥스러운 마음

여름이 기대돼, 아직 뜨겁진 못한 우리 둘


그 해, 겨울이 없었어, 마냥 따뜻했으니

하얀 함박 꽃밭 위, 힐 신은 발자국이

뭐가 그리 웃겨서 쓰러졌는지

네 웃음과 박수를 먹고 싶어 항상 연습

세트 무대 위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어


기대 자서 못 마시는 술이 좋았고

다섯 개나 되는 여행 어플들이 좋았고

비키니 보여준다 굶는 울상이 좋았고

뜨겁고 저린 팔을 빼지 못할 때에도

반쯤 열린 입술에 웃음 참던 새벽 여섯 시


하나부터 열


숫자는 같은데 갈수록 빨랐어

긴 봄과 짧은 여름 끝, 가을은

너무나 긴 겨울을 줄 것 같아

마른 잎이 떨어지듯 우리는 어느새

많은 것을 털어내고 있었고


하나밖에 없던 널, 지나간 사랑과 비교

너도 우리도 이렇게 되는 건가, 결국 한숨

하나둘 삭제하는 어플과 밑으로 꺼진 카톡방

등 돌려 누운 너의 어깨가 너무나 높아 보여

너도 내가 그럴까, 이젠 들리지 않는 숨소리

째깍대는 시계 소리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지


가끔, 네가 없는 삶을 생각하며

아무렇지 않을 것 같다는 무서운 생각을 할 때

너 또한 지나갈 인연이라며 위로를 할 때 여덟

내가 설렘을 찾았었는지, 사랑을 찾았는지

스스로 역겹다 자책을 할 때마다, 아홉

아직 옆에 있는 네가 너무 미안해서 열


우리는 첫 영하를 알리는 아침 날씨 방송과 같이

잘 챙겨라, 따뜻하게 지내야 된다며

그렁거리는 눈, 마스크로 표정을 숨기며 서로를 보냈다

따뜻하길 바라, 곧 겨울이 오겠지 11월이니까


하나부터 열, 지나고 다시 열하나

넌 나와 다른, 내게 너무 따뜻한 사람이라서

서리 낀 차창에 흐려지는 네 모습이 보여

하나부터 열, 뿌옇게 점점 잊히겠지


하나부터 열, 그리고 우린 다신 하나가 될 수 없어서

열을 달고, 나는 다시 열하나. 추억을 달고 혼자가 돼


곧 겨울이 오겠지, 11월이니까

열 그리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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