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는 처음이라,
한국인 교사
새로 오픈하는 국제학교라는 말만 들었지 무슨 재단이고 어떠한 커리큘럼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학교에 도착하였다. 알고 보니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스쿨 프로그램과 이념을 내세운 국제학교였다. 12명 정도로 구성된 초등학교 교장단과 교사들은 놀랍게도 뉴질랜드에서 직접 모집하여 데려온 뉴질랜드 공립 초등학교 교사들이었다. 국제학교는 일반 초등학교 규모였으며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곳으로 산과 강으로 둘러 쌓여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는 조용한 시골이었다.
학교 건물 입구에 도착하자, 지역 사투리가 섞인 말투로 다가온 밝은 한국인 선생님들이 먼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알고 보니 몇 안 되는 한국인 선생님으로 선정된 교사들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 그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들이었다. 모두들 영어교육 관련 학위를 가지고 있었고, 실력 있는 사람들이었다. 서울에서 온 나는 집에서 출퇴근하는 다른 한국인 교사들과 달리 외국인 교사들과 함께 기숙사에 머물게 되었다. 주방을 공유하는 시스템인 기숙사라 자주 마주친 만큼 그들과 친한 관계가 되었다. 다행히 학교에서는 점심과 저녁을 제공해 주었다. 아침 식사만 해결하면 되었는데, 빵과 버터가 주식인 그들 덕에 쌀 대신 빵을 자주 먹게 되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한국인은 나 혼자라서 내가 외국에 온 것인지 그들이 한국에 온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출입국 사무소에서 편지가 왔는데 무슨 말인지 읽어 주겠어?”
“신디, 이 편지는 신원 확인이 되어 외국인 등록증이 곧 나온다는 확인 편지야. 걱정 안 해도 돼”
“가져온 현금은 다 썼고, 월급날은 멀었는데, 외국계좌에서 돈을 바로 인출할 수 있는 ATM이 있을까?” 한참을 은행 직원과 통화하던 로빈이 통역해달라고 달려왔다. 나를 통해 이해한 은행 직원이 본점을 가면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기숙사에 머물면서 한국을 처음 온 그들의 눈과 입이 되어 통역을 해주거나 서류를 읽어주는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많은 일들을 도와주게 되었다. 또한 교사들 중 가족이 함께 온 경우가 많아 아이들이 아프거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시내로 가야 하였다. 하지만, 그 당시엔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한국인들이 많지 않아 외국인 선생님은 이런저런 사소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 이유로 퇴근 후 자유시간에는 그들과 나는 자연스레 함께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힘들었던 것은 영어 알파벳과 생김새가 매우 다른 한글이 문제였다. 외국인 교사들은 한국어로 의사소통할 수 없었기에 시내로 나가거나 장거리 여행 갈 때마다 길을 잃는 일이 허다했다.
그때는 타국에서 외국인들이 겪는 언어와 문화적 충격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지 못했다.
한국에서의 국제학교 안에서 나의 직책과 업무는 외국인 선생님을 도와 아이들을 지도하는 부담임이자 보조교사인 한국인 선생님 역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일반 직원수의 부족으로 전화 입학 상담, 하교 버스 안전 담당, 통역, 번역 등 각종 잡다한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 무엇보다 걱정되었던 것은 기숙사 집사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학교의 안전을 책임지는 직원과 관리인들이 퇴근한 후 저녁시간과 주말엔 기숙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내 업무가 되었다. 주말까지 외국인들 뒤치락거릴 생각에 근심이 생겼다. 하지만 놀랍게도 대부분의 뉴질랜드 교사들은 주중에만 나를 찾고 위급한 일이 아닌 이상 교장선생님과 상의를 먼저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정확히 구분하면서 내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한국재단의 국제학교인데, 나는 오히려 고용된 외국인 교사들의 배려 속에 내 일과 권리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교장 선생님은 이사장과 맞서 한국인 교사들과 외국인 교사들을 동등하게 대우하려고 노력하였고, 교사들을 교육 쪽 업무에만 전념시켜 교육의 질과 수준을 높이려 하였다. 예를 들면 교사들의 하교 버스 탑승이나 홍보쪽일을 줄이고 대신 교사들이 수업 준비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말이다.
국제학교에서 근무하기 전에 한국에서 다양한 직장을 다니면서 공통적으로 다가왔던 문제들이 한순간 나만의 능력 문제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시작하고 익숙해진다는 그 사회생활이 내게는 참 고되게만 느껴졌다. 퇴사를 하면서 나에 대한 정체성과 자신감은 뚝 떨어졌다. 새로 입사한 회사들은 늘 생각했던 불공평한 일들이 있었다. 눈치 보며 억지로 야근하기, 새벽부터 나와 사무실 청소하고 커피 만들어 두기, 주말에 출근하여 시간 보내기, 휴가 없이 여름을 보내기 등 말이다. 결국에는 사표를 내밀고 말았다.
나는 처음부터 고용 계약서에 적힌 대로 그 정도의 일만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결과를 보여주면 되는 것이었다. 남의 시선 따위를 신경 쓰며 그들의 시선에 나를 가둘 필요가 없었다. 그것이 나의 권리였다.
이렇게 깨닫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회에 길들여진 나는 ‘당연한 권리’를 찾는 내가 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스쿨이라?
스위스 제네바에 설립된 비영리 교육재단인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에서 1968년부터 운영하는 국제 공인 교육프로그램으로 미국, 일본, 에콰도르 등에서는 공교육 발전을 위해 도입하였으며,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더 나은 평화로운 세상을 실현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지식이 풍부하고 탐구심과 배려심을 지닌 인재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